오롯이 살아 있는 청정한 승가의 전통

세계의 수행처 / 미얀마 파욱 국제명상선원

2009-03-03     관리자

▲ 파욱 스님

필자는 지금부터 5년 전에 수행자로서 참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다. 10년 가까이 지켜오던 수행에 대한 신념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무너지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 시기에 어리석게 공부를 해온 자신을 반성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학과를 다니고 있었다.
이때 즈음에 책을 구하러 조계사 근처에 갔다가 우연히 길가에서 10년 만에 한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인데 서로 시간이 없어 나중에 그 스님께서 사시는 절에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얼마가 지난 후에 필자는 그 스님을 찾아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파욱 선원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나설 때는 파욱 사야도가 쓰신 『Knowing and seeing』의 번역본인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라는 책도 한 권 받았다.
이때에 필자는 부처님 가르침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를 공부해보려고 했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초기경전부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어 본 후에 초기경전에 따라 수행하는 파욱 선원에 가는 것이 큰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가리라 생각했지만 나중에 후회를 할 것 같아 서둘러 학교를 정리하고 미얀마로 향하게 되었다. 미얀마에 도착한 후에 현지 가이드의 도움으로 미얀마 수도인 양곤에서 약 300km 떨어진 도시 몰라민(Malamyine)의 파욱이라는 마을에 위치해 있는 ‘파욱 국제명상선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수행공동체

파욱 선원은 파욱 큰스님의 법력으로 세워진 선원이다. 파욱 큰스님은 1934년 미얀마 양곤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마을에서 탄생하셨다. 큰스님께서 10세 되시던 해인 1944년 마을에 있는 작은 절에서 출가를 하셨으며, 그 후 10년 동안 여러 스승 밑에서 팔리어 경전을 공부하시면서 초보 학자로서의 역량을 축적하셨다.
▲ 파욱 선원 전경

20세가 되신 1954년 비구계를 받으신 큰스님께서는 1956년 담마차리야(Dhammacariya) 시험을 통과하셨다. 이 시험은 불교 팔리 연구의 학사에 해당하는 시험으로 이 시험에 통과하면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 후 8년 동안 미얀마 전역을 돌아다니시면서 유명한 스승들로부터 불법을 배우셨으며, 1964년 숲속 수행의 중요성을 인식하시고는 ‘숲속 안거’를 시작하셨다.
큰스님은 20년 가까이 숲속 안거를 중요한 수행으로 삼으셨는데, 이 기간 동안 매우 간소한 생활을 하시면서 명상수행과 팔리경전의 연구에 모든 시간을 바치셨다. 1981년에는 파욱 선원의 선원장이 되셨지만, 사원의 운영을 총괄하시는 중에도 대나무로 된 오두막에서 주로 명상하시면서 은둔하셨다. 이곳에 1983년 이후로 많은 스님들과 재가신도들이 큰스님에게 몰려와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함께 정진하였으며, 1990년대 초기에는 외국인 명상가들도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큰스님의 명성이 꾸준히 높아지자, 소수의 제자들이 함께 수행했던 이곳은 약 300개의 토굴이 생길 정도로 점차 그 규모가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비구들과 남자 수행자들이 생활하는 현재의 ‘위쪽 선원(Upper Monastery)’이 되었으며, 아래쪽에 있던 원래의 소규모 사원은 비구니스님과 여자 수행자들이 생활하는 현재의 ‘아래 선원(Lower Monastery)’으로 정착되었다.
파욱 선원은 현재 100명 정도의 외국인 비구들과 300여 명에 달하는 미얀마 비구스님들, 400여 명의 비구니스님, 재가신도들이 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대규모의 수행도량이다. 이런 파욱 선원에서 필자는 3년여 수행을 하면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팔정도 수행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생활 속에서 수행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만한 것도 참으로 많이 배웠다. 이 중에서 수행자들이 한 번쯤 마음에 새겨 보면 좋을 만한 것을 몇 가지만 소개해 볼까 한다.

“계율을 스승으로 삼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라”

필자가 첫 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승가의 전통이 잘 살아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승가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승가에서 계율은 세속에서의 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법이 없다면 세상은 무정부 상태가 되듯이 승가에서도 계율이 무너지면 승가를 통제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승가가 청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 계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파욱 선원에서는 모든 상황 판단을 율장에 따라서 하기 때문에 800여 명의 대중이 살아가면서도 잡음 하나 일어나지 않고 조화롭게 승가가 운영이 되고 있었다. 승가가 화합하여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계율이 파욱 선원에서는 율장에서 제시하는 그대로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필자는 출가한 후에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수행을 하던 대만 비구스님이 “계율은 비구의 삶이다.”라고 한 말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계율에 관한 부분은 우리나라의 승가에서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 비구계를 줄 수 있는 시마(sima)홀. 평소에는 명상을 하는 곳으로, 2층은 스님들만 쓸 수 있고, 1층은 남자 재가자들도 쓸 수 있다.
필자가 이후에도 세계의 여러 수행단체를 다녀 보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수행단체는 청정한 계율을 바탕으로 승가가 잘 유지되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는 부처님 가르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어떤 스님이 경전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법문을 하게 되면 외도로 취급 받을 정도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요시한다. 미얀마 스님들은 부처님 말씀을 변형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 수행자들이 사는 작은집 꾸띠(cuti). 파욱에는 이런 꾸띠들이 500여 개(위쪽 선원 300여 개, 아래 선원 200여 개) 정도 있다.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 라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깨달음만을 강조하면서 정작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생각해볼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앞의 두 가지 이야기에서 “계율을 스승으로 삼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라.”고 제자들에게 남기신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되새겨본다.
마지막으로 파욱 큰스님의 아름다운 퇴진이었다. 파욱 선원에서 수행을 하던 중 2006년 11월 8일, 도량이 웅성웅성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스님이 필자에게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파욱 큰스님이 파욱 선원에 대한 모든 권리를 승가 원로위원회에 넘기고 선원을 떠난다는 사실이었다.
파욱 큰스님은 파욱 선원에서 25년 동안 제자들을 지도하시면서 소규모의 도량을 800여 대중이 살 수 있는 대 도량으로 성장시키셨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한 산중의 방장과도 같은 어른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수행으로 마무리하시겠다고 제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파욱 선원을 떠나시겠다고 선언하셨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다행히도 파욱 큰스님이 떠나시기 전날 밤에 큰스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밤이었다. 이루기 힘든 일을 이루어 놓으시고도 그것을 하나의 미련도 없이 버리시고 다시 수행자로서 회향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날 밤에 필자는 참으로 훌륭한 스승님에게 수행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 깊은 기쁨을 느꼈다. 나도 마지막이 아름다운 수행자가 되기를 발원해보았다.
이상으로 파욱 선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파욱 선원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해보았다. 우리나라에도 파욱 선원과 같이 부처님의 계율과 법에 따라 생활하는 수행공동체인 국제적인 명상센터가 탄생하기를 기원하며, 다음 호에서는 파욱 선원의 수행 내용과 수행법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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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묵 스님 _ 1996년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 중 해인사 백련암에서 원택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범어사 강원을 졸업하고,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으며, 2003년 KBS 부처님오신날 특집극 ‘선객’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5년 미얀마 파욱 선원에서 3년간 수행하였으며, 2008년 플럼빌리지 등 유럽과 미국에 있는 불교수행단체에서 수행하였다. 현재 제따와나 초기불교 지도스님으로 활동하며, 모든 존재들이 고통을 벗어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