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와 달라이 라마

미국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2009-03-03     관리자

달라이 오바마와 오바마 라마


독일이 붙여준 버락 오바마의 별명은 ‘달라이 오바마’이다. 독일의 한 유력 일간지는 지난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베를린 방문을 보도하며 “Der Dalai Obama”라는 헤드라인으로 버락 오바마의 인기를 표현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는 유럽에서 매케인 후보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는데, 특히 독일에서는 매케인 지지자가 6%였던 데 반해 오바마는 독일국민 67%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지지도는 독일의 국내 정치지도자는 엄도조차 낼 수 없는 수치라고 한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오로지 달라이 라마만이 누리고 있는 인기라는 점에서 이 신문은 오바마를 ‘달라이 오바마’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표현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달라이 라마의 압도적 인기에 대한 국민적 합의라는 사실이다.
한편 미국에서도 오바마의 지지자들은 오바마를 달라이 라마와 연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던 것 같다. 티셔츠 및 판촉용품 주문제작 판매 사이트인 ‘shop.cafepress.com’을 검색하면 “My Dalai Lama's Barack Obama(나의 달라이 라마는 버락 오바마입니다)”라는 배지(badge)가 6.9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평화와 비폭력 그리고 현자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어필한다면, 배지에 인쇄된 이러한 구절은 미국민들이 버락 오바마로부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표현 역시 달라이 라마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달라이 라마는 또한 버락 오바마의 선거에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면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활용’되었다. 오바마의 지지자로 템플 대학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크리스 드류는 오바마의 이름이 반대자들에 의해 악의에 찬 농담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해, 오바마와 달라이 라마를 합성한 ‘오바마 라마(Obama Llama)’라는 인형을 제작하여 판매수익을 선거운동 후원금으로 사용하였다. 제작자 크리스 드류에 따르면, “달라이 라마가 평화와 지혜를 상징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두 사람을 연계시킴으로써 오바마가 추구하는 희망의 정치를 부각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라마(Llama)는 민주당의 상징동물인 당나귀와 유사한 생김새로, 오바마의 함박미소와 갈색 피부색을 표현한 라마(Llama)라는 동물에 달라이 라마의 칭호에서 라마(Lama)를 차용하여 만들어진 인형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없는 지원의 상징이 된 이 인형은 CNN, 시카고 트리뷴, 그리고 여러 로컬 미디어의 보도로 선거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도덕적 용기와 일관된 신념

오바마와 달라이 라마가 본의 아니게 타인들에 의해 이름도 합성되고 상품화도 되었다면, 당사자들은 실제로 어떠한 인연을 맺어 왔는지 알아보았다. 오바마와 달라이 라마의 관계가 궁금해진 것은 미국 대선 다음날인 미국인 불자로부터 받은 이메일 첨부파일이 동기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와 오바마가 다정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보내준 분에게 어디서 구한 사진이냐고 물었더니, 그 분도 아는 사람에게 이메일로 받았다며 출처를 모른다고 했다. 해서 하루 종일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사진의 출처는 오바마-바이든 공식 선거캠프 홈페이지(www.obamaforamerica.com)였다. 특이한 것은, 이 사이트에 게시된 많은 오바마의 사진들 가운데, 누군가와 단 둘이 나란히 찍은 사진은 이 사진 한 장뿐이라는 사실이다. 촬영일은 2005년 11월 17일. 이 날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은 달라이 라마와 함께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브리핑에 참석했었다.
‘티베트를 위한 국제 캠페인[International Campaign for Tibet(이하 ICT)]’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티벳을 지지하는 ‘뚜렷한 기록’을 남겨 왔다. 상원의원 시절 오바마는 중국 최고권력자 후진타오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이 라마 혹은 그의 사절단과 대화를 통해 티벳의 상황을 해결하라고 촉구해 왔다. 오바마는 ICT가 보낸 질의서에서 “중국정부는 지금이야말로 달라이 라마와 직접 대화를 해야 할 때이며, 그가 티벳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하여 티벳의 종교적·언어적·문화적 유산과 정체성이 보존되고 보호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은 2007년 10월 달라이 라마에게 ‘연방의회 금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수여하도록 투표하기로 하였다. 이 메달은 미 의회의 의결을 거쳐 수여자를 결정하는 미국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달라이 라마의 메달 수여에 표를 던진 까닭에 대하여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은 “달라이 라마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도덕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이며, 그의 삶을 겸손과 도덕적 용기 그리고 인간의 자비가 가진 구원의 힘에 대한 신념 속에서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오바마는 지난 3월 14일 티벳인 시위자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유혈 진압에 대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중국이 사태 호전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도 개막식에 참석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부시 대통령은 개막식에 참석했다). 달라이 라마가 건강 문제로 입원을 했을 때는 직접 전화를 걸어 병문안도 했다.
▲ 지난 7월 오바마 후보가 달라이 라마에게 보낸 편지
달라이 라마에 대한 오바마의 태도는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지난 7월 오바마 후보가 콜로라도에 방문 중인 달라이 라마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Your Holiness(성하)”라는 극존칭으로 편지를 시작한 오바마는 “성하와 저의 서로 다른 여행 일정으로 인하여, 성하의 이번 미주방문 기간 동안 만나 뵙지 못하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하여 이 중요한 시기에 성하와 성하의 사명, 그리고 티벳인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존경과 성원을 다시 한 번 보내드리자 합니다.”라며 아쉬움과 존경을 표현했다.
이 편지가 작성된 것이 7월 24일, 그리고 이때는 오바마 후보가 유럽을 순방 중이었는데, 바로 다음날인 7월 25일 오바마 후보의 경쟁자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달라이 라마와 만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런 일정을 알고 있던 오바마는, “이 편지와 함께 성하와 매케인 상원의원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티벳인들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지원이 광범위하며 당파를 초월해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알려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오바마가 승리한 다음날인 11월 5일, 이번에는 달라이 라마가 메시지를 보냈다. 축하의 메시지이다.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저는 미국민들이 미국의 다양성과 이상을 반영하는 대통령을 선출하였다는 사실에 고무되었습니다. … 미국의 대선은 항상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기회의 균등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위대한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 나는 또한 귀하께서 기나긴 캠페인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던 굳은 의지와 도덕적 용기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친절한 마음과 일관성에 찬사를 보냅니다. …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귀하께서는 엄청난 어려움과 임무가 앞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적 필요 충족을 위해 투쟁하는 수백만 명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많은 기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항상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일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