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작은 곳에서 온다

만남, 인터뷰 / 부산 관음사 주지 지현 스님

2008-12-29     관리자
관음사에 도착하고 보니 절 마당에는 이미 설핏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두워지려면 시간이 좀 남아 있었지만 해는 이미 산 저편으로 넘어 간 터였다. 그 이른 저녁 그림자 속에서 어느 스님이 마당 한 편을 조용히 쓸고 있었다. 그 모습을 힐끗 보고 종무소에 들어가서 지현 스님을 만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낯선 이의 말을 들은 종무소의 사람 하나가 유리문 너머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마당을 쓸고 있는 바로 그 스님이었다. 누군가가 스님을 부르자 그는 비로소 비질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하던 비질 만큼이나 조용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이는 어느 고적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삼배를 하기 위해 앉기를 머뭇거리고 있으니 그냥 앉으라고 한다. 차상을 마주하고 앉아 처음 본 것은 물같이 담담한 그의 눈빛이었다. “절집에서 밥만 축내고 살지 제가 뭐 하는 게 있나요.” 찻잔을 든 채 희미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 부산 관음사 지현 스님이다.

【 어린이 포교, 보다 나은 미래로 가는 길 】
지현 스님은 지나온 이력이 녹록하지 않고, 현재 갖고 있는 직함도 많다. 그래서 스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몇 마디 말로 간단하게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스님이 살아온 행적을 정리해 보면 승가에 대한 관심과 대중에 대한 관심이라는 두 줄기로 얼추 모아진다.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을 지낸 이력, 그리고 송광사 율주, 행자 교육원 교수사, 조계종 고시위원과 같은 현재의 직함들은 승가에 대한 관심에 해당한다.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을 대표이사, 사단법인 동련 대표이사와 같은 직함들은 대중에 대한 관심에 해당한다.
스님이 하고 있는 여러 일 가운데 어린이 포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본다. 어린이 포교 사업에 나서게 된 계기를 묻자 특별히 대단한 뜻이 있어서 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뭐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냐는 듯, 그저 덤덤한 표정만 짓고 있는 그를 재촉해서 겨우 얻어낸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 세대보다는 다음 세대가 더 잘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은 간단했지만 어린이 포교에 대한 스님의 관심은 뿌리가 깊다. 1989년, 지금 머물고 있는 관음사의 주지로 취임하자마자 그는 ‘단이슬 어린이회’를 설립해서 어린이 법회를 시작했다. 2005년부터는 어린이 불자 육성을 통해 불국정토 구현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설립된 사단법인 동련의 대표이사를 맡아 현재까지 일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어린이 포교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보니 이런 저런 아쉬운 점들도 눈에 들어오곤 한다.
▲ 사단법인 동련이 주최한 행사에서 한 어린이가 그린 부처님 그림. 어린이의 마음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했다.
“불교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다들 취업 준비에만 바쁘니 돈이 되는 것도 아닌 불교 공부에 신경 쓸 여유가 없긴 하겠지요. 그러다 보니 어린이 불교 지도자를 할 만한 사람들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또 요즘 보면 어린이 포교에 있어서 레크리에이션이 너무 강조되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어린이 불교 지도자는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어린이에게 접근하기 이전에 교리적인 이해는 물론, 수행이나 신앙을 통한 자기 수양의 경험 또한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본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어떻게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스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어린이 포교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동련 설립 이후 어린이 포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고 후원금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은 동련은 작년에 대한불교진흥원이 수여하는 제5회 대원상 단체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자신이 해 온 일들을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 법도 하건만 스님에게는 그 모든 일들이 그저 빚 갚음일 뿐이다. “저는 부처님 법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법을 펴는 데 동참하지 않을 수 없지요.”

【 수행의 자리에서 세상을 응시하다 】
스님은 6.25 사변 직후의 스산하던 시절에 태어났다. 아버지께서 불경을 많이 읽으셨고 본인 역시 방학 때면 절에서 지내기도 하는, 불교와 친숙한 환경에서 살았다. 그래서인지 출가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도 담담할 뿐이다.
“농사짓는 것도 별 장래성이 없어 보이고 해서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이틀을 걸어 찾아간 속리산 중사자암에서 행자 생활을 했지요. 그냥 고향 찾아간다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을 뿐 특별히 출가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율원을 졸업했고, 현재도 송광사 율주인 스님은 나날의 생활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를 무척 중시한다. 승가가 진정으로 존경 받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무릇 출가자라면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자고, 어떻게 길을 걸어갈 것인가와 같은, 생활 전반의 소소한 것들부터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불교 공부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부처님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 전체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일 수 있지요. ‘부처님께서 보고 계신다,’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계신다’라고 생각하면 삶을 좀 더 바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스님의 관심이 한 몸의 수행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와 어린이 포교에 열심인 스님의 삶이 세상과 함께하고자 하는 스님의 의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뜻을 알아 모시는 사람들 때문에 스님은 본의 아니게 감투를 쓴 적도 있다.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에서 다음 회장을 추대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마침 그날 스님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링겔을 맞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회장으로 뽑혀 버렸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스님은 “다음번엔 경선하자”는 말로 억울함(?)을 토로했다지만 실은 그게 다 순리대로 돌아간 일은 아니었을까.
“종교는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모범답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범답안도 사람들이 인정해야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종교라고 해서 이상적인 말만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본질에 입각한 현실천착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지요.”

【 밋밋함에 담긴 뜻 】
하지만 스님이라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출가자로서 세상에 대해 느끼는 괴리감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욕망의 충족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런 허망한 집착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큰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한 만큼 사람들도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닙니다. 위정자들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람은 그런 식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망이란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스님은 무소유까지는 힘들더라도 소욕지족(少欲知足) 정도는 실천해 보자고 이야기한다. 조금 덜 쓰고 조금 덜 누리고 살면서 그 남는 물질들을 어려운 이들과 나누다 보면 반드시 훨씬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스님은 믿고 있다.
“우선 삼귀의와 오계를 잘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발전을 위한 발전, 욕망을 위한 욕망을 추구하다 보니 세상에는 자살, 이혼과 같은 것들이 무서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내년에는 이런 현상이 한층 심해질 것 같아서 걱정스럽습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길이, 또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사는 길이 삼귀의와 오계 속에 있습니다.”
관음사를 떠날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어린이 포교와 관련된 인상적인 기억으로는 어떤 것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재미없고 밋밋하게 살다 보니 그저 다 스쳐지나갈 뿐 별로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였다. 어쩌면 스님은 거창한 어떤 일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말할 거리가 안 된다 싶은 작은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주지로서 손수 절 마당을 쓰는 것 같은 일 말이다. 문득 스님이 했던 말 가운데 한 마디가 머리에 떠올랐다.
“삶의 작은 부분 하나라도 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사단법인 동련이 주최한 행사에서 한 어린이가 그린 부처님 그림. 어린이의 마음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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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 스님 _ 부산 관음사 주지.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쌍계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했으며, 해인사 승가대학과 해인율원을 졸업했다. 송광사 재무국장과 해인사 승가대학 학감을 거쳐 부산 관음사 주지로 있으며, 현재 송광사 율주, 조계종 고시위원, 조계종 교재 편찬위원장, 행자 교육원 교수사, 관음선행장학회 대표이사,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을 대표이사, 사단법인 동련 대표이사를 함께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