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내 마음의 법구

2008-12-29     관리자

우리 부부는 결혼해서 단칸 셋방살이로 시작했다. 서울 도봉구 창동 어느 집 부엌방을 얻어 아내는 장사하며 내 뒷바라지를 했고, 나는 드라마 센터에서 국립극단으로 그리고 영화와 TV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들과 딸도 커서 연극한다며 내 뒤를 따라오고, 셋방도 전세에서 13평 아파트로, 다시 33평에서 50평으로 넓어졌고, 자동차도 생겼다.
조금 여유가 생기자 아내가 친구 몇 사람과 동업으로 찻집을 낸다고 좋아했다. “이 찻집이 잘만 되면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연극만 하며 살게 해 줄게.”라며 신나게 동분서주 개업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안색이 나빠지더니, 집에 법원출두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어찌된 일인가 물었더니, 체인점 사장에게 사기를 당해 고소했노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 돈, 당신이 소극장 만든다는 꿈 하나로 밤 잠 못 자고 스트레스 받으며 일해 한푼 두푼 모은 돈인데…. 그 돈이 어떤 돈인데….” 하며 절규한다. 나도 한동안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문득 아내가 더 안쓰러웠다. “여보, 그만두자. 그 돈 내가 영화, TV 출연하며 고생해서 번 돈이지? 만약 내가 영화나 TV 출연 안 했다 치자. 그럼 그 돈은 없었을 거 아냐. 애초에 없는 돈이라 생각하자. 돈은 다시 벌면 되는 거지만 당신은 돈으로 살 수 없어. 그러니 그 돈은 잊자.” 하며 아내를 위로했다.
내가 TV ‘원효 대사’에서 원효 대사로 출연했을 때 한 장면이 생각난다. 원효가 당나라로 도를 구하러 가던 중 무덤이 많은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자다가 목이 말라 일어나 어둠 속에서 물을 찾던 중 어느 구덩이에서 물을 얻어먹었더니 시원하기 비길 데 없었다. 날이 밝아 아침에 깨어본 즉 해골박에 있는 물이었다. 속이 메스꺼워 구토질을 하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마음이 나면 여러 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여러 가지 법이 없어진다 하더니, 마음이 없으면 해골도 없는 것이로구나. 부처님 말씀에 삼계가 마음뿐이라 하셨으니 어찌 나를 속였으랴!’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아이들이 극단을 꾸며 연극을 만들겠다고 해서 집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주었다. 3년이 흘렀다. 몇 편의 연극을 하고 상도 받으며 성장해갔다. 그러나 여전히 빚에 쪼들리고 있었다. 애들도 학교 강의를 나간다, TV 출연을 한다며 빚을 갚느라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죄송해요. 열심히 노력해서 꼭 빚을 갚아드릴게요.” 하며 미안해한다. 나도 마음은 쓰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도 애들이 그만큼 컸고 제 갈 길로 들어섰으니 다행 아닌가. ‘억만금을 줘도 못 살 너희들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고 마음을 바꿔 생각하니 편하다. 애들도 있는 자리에서 더욱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득, 활산성수(活山性壽) 큰스님의 법어가 떠오른다.
“세상(世上)은 비고(非苦)요, 망심(妄心)은 자고(自苦)로다.”
세상이 고(苦)가 아니고, 사람 마음이 스스로 고(苦)로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자기 마음으로 근심을 내서 끙끙 앓는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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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송 _ 1941년 인천 출생. 드라마 센터에서 유치진, 오사량, 이해양 등 우리나라 1세대 연극대가들에게 연기수업을 받았다. 연극과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며 뛰어난 연기력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 영화평론가상, 대한민국 연극제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한국연극예술상 최우수 연극인상, 동아연극상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안양대학교 및 공주영상대학교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