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의 어버이를 보았네

생명평화탁발순례 / 3만 리를 걷고 8만여 명을 만나다

2008-12-29     관리자
길을 나섭니다. 바람과 함께 나선 길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을 맞습니다. 저 눈과 비바람이 모두 내 생명의 어버이입니다.
사람을 얻으러 가는 길, 사람이 생명과 평화가 되기 위해 나선 길입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길에 서니 내가 보입니다. 내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나의 뒷모습입니다. 내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나의 앞모습입니다. 내가 웃으니 그대가 웃습니다. 그대가 평화로우니 내가 평화롭습니다. 그대가 있어 내가 있습니다.
이 밥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태양과 물과 공기와 흙이 나누어 준 생명에서 왔습니다. 그러니 밥 한 그릇이 어찌 가볍다 하겠습니까. 우리는 물과 공기를 얻어 쓰고, 빛과 어둠을 얻어 살아갑니다. 저 논밭과 산과 강과 바다가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준, 오래 된 부모입니다.
오로지 생명평화를 구하는 마음 한 자락이기에 세상 소리가 모두 가르침입니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잎과 열매를 내려놓습니다. 겨울이 되면 산은 크게 비웁니다. 비운다는 것, 내려놓는다는 것, 나눈다는 것, 높으신 이들이 쓰는 헛말인줄 알았는데, 자연 생명은 오래 전부터 크게 죽어 크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내 몸으로 배우고 익혀야 하는 ‘생명평화의 길’이었습니다.











사람들 모두 왜 이렇게 아플까요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평화로워질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모두 평화로워지고 싶다고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합니다. 이상합니다. 사람들은 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부터 생명평화 운동이 시작됩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아는 것, 지금의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순간순간을 깨어 아는 것입니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고, 과거는 과거이고, 미래는 미래일 뿐이라고 이 세계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순간 내 생명은 외로워집니다. 내 생명이 평화롭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땅에서 쫓겨나야 하는 주암마을 할머니들을 만났습니다. 제주도, 50여년 동안 버려진 무덤에 벌초를 하고 방사탑을 세웠습니다. 거제도에서 사회단체, 재향군인회, 종교계, 그리고 민관이 하나가 되어 생명평화민족화해위령제를 지냈습니다. 50년 만의 화해였습니다. 동두천 기지촌 여성 공동묘지 벌초를 하고 위령제를 지냈습니다. 노동조합 분들을 만났고 버스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들르기도 했습니다. 농민들의 농성장에서 며칠을 묵었습니다. 결혼이주여성들과 만나고 이주노동자들과 만났습니다. 이 땅의 구석구석 아물지 않는 상처들은 내가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역사였으며 현재였습니다.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나와 갯벌이라는 생명의 고리가 뒤틀리고 끊기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의지하여 존재합니다. 꽃은 꽃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고리를 당기면 모든 고리들이 저절로 같이 일어나는 우리가 어찌 둘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이 아프다는 것은 내가 아픈 것, 어찌 스스로의 아픔도 알아채지 못하는 혼미 속에 살아갑니까.

대립과 투쟁의 DNA를 생명평화의 DNA로 바꾸는 일
나를 길러준 어버이들을 모시지 않았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이 할퀴고 짓밟히고 찢기고 고통받고 있습니다. 네가 없는 것이 나에게 유익하고 네가 없이도 나는 잘 살 수 있다는 그릇된 이분법적 세계관을 뼈아프게 참회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이 변하지 않는다면 개발과 성장이 아무리 눈부시게 진행돼도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적게 갖고 적게 쓰는 것이 진보입니다. 품위 있는 삶이란 나를 낮추고, 나를 비우고, 내 것을 이웃과 나누며, 남을 존중하고, 다른 이를 배려하며, 이 세상 모든 분에게 고마워하며 사는 삶입니다. 이제는 함께 사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것은 수천 년에 걸쳐 내 뼈에 기억된 대립과 투쟁의 DNA를 생명평화의 DNA로 바꾸는 일입니다. 먹고 일하고 쉬는 우리 일상의 삶에서도 생명평화가 자라나도록 가꾸는 일입니다. 평화는 평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다른 길은 없습니다.
생명의 그물코를 망각한 채 자신만 잘났다고 그물코의 끈을 놓아버리는 무지와 착각 속에서는 서로를 죽음으로 이끌고 갈 뿐입니다. 우리 삶에서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이 무엇입니까. 참된 가치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묻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가치 의식과 삶의 방식을 확립하는 것이 생명평화의 길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나는 그대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공동체 생명임을 마음에 새기며 내가 먼저 등불이 되겠습니다. 공동체 생명들은 서로 의지하고 돕는 진리의 삶을 살 때 비로소 행복하게 되는 것임을 마음에 새기며 내가 먼저 등불이 되겠습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그 길을 바라봅니다. 당신이 길입니다. 당신이 내 목숨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모시고 섬겨야 하는 나.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순례길이 나에게 깊이 새겨준 새로운 기억입니다. 그 기억으로 오늘도 걸어갑니다. 내 생명은 평화와 행복을 원합니다. 세상의 생명평화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이.길.입.니.다.당.신.이.내.목.숨.입.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내 마음에 새깁니다.

세.상.의.평.화.를.원.한.다.면.내.가.먼.저.평.화.가.되.자.


생명평화탁발순례는 ...

2004년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생명평화를 주제로 종교·시민·사회 단체를 모아 생명평화결사를 만들어, 얻어 먹고, 얻어 자고, 얻어 쓰며 걷는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고 있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단장 도법 스님)의 하루 일과는 100대 서원 절명상으로 시작한다. 생명평화 서원을 담은 100가지 메시지를 듣고 음미하며 서로 마주 보고 절을 한다. 그 다음에는 묵언 속에 15km 내외를 걷고, 다시 100대 서원 절명상을 한다. 저녁에는 그 지역의 대중을 만나 생명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까지 제주도·경상도·전라도·충청도·강원도·경기도·인천 등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지역현안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생명평화적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9월 5일부터 마지막 구간인 서울순례를 100일 동안 진행 중이며, 오는 12월 13일 5년간의 순례를 회향할 예정이다. 그 동안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은 3만리를 걷고 8만여 명을 만나 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