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

약보다 나은 우리 먹거리 18 / 연재를 마치며

2008-12-29     관리자
음식에 관심을 갖고 주변에 잔소리를 하다 보니, 그럼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우리 주위의 먹을거리는 점점 다양해지고, 언제 어디서 무엇이 맛있더라 하는 식의 TV, 신문의 기사가 넘쳐나고 보니 먹을거리에 대한 선택은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맛있는 것이라고 모두 입으로 넣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식도락(食道樂)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먹는 도[食道]에서 찾는 즐거움’이다. 즉 음식의 취사선택에는 반드시 도(道)가 있다는 것인데, 그 도를 혀끝의 감각에만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먹는 음식으로 내 몸을 만들어 운영하고, 그 몸에서 정신이 일어나 하루하루의 생각과 마음이 오간다. 결국 반듯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동물성 단백질의 환상에서 벗어나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생겨날 때 빅뱅이라고 하는 큰 폭발이 있은 후, 무거운 것은 아래로 내려와 땅을 이루고 가벼운 것은 위로 떠 하늘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몸에도 반드시 하늘과 땅이 있으니 그것이 정신과 몸이다. 우리의 몸을 두고 작은 우주[小宇宙]라고 한다면 음식은 이 우주를 만드는 재료이다. 그러므로 가볍고 맑은 것은 위로 가는 성질이 있고,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음식도 마찬가지여서 가볍고 맑은 것은 정신을 맑게 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무겁고 탁한 것은 몸을 만든다. 음양(陰陽)의 이치와도 비슷하다.
따라서 음식의 경중(輕重)과 청탁(淸濁)을 가려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신을 많이 쓰는 학생이나 직장인이라면 경청(輕淸)한 음식을 더 많이 먹어야 하고, 몸을 주로 쓰는 사람이라면 중탁(重濁)한 것을 취해도 무방하다. 채소와 육류 가운데에서는 채소가 물론 경청한 것에 속하는 것이며 단백질, 지방이 많은 음식은 중탁하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육류 위주의 무겁고 탁한 음식을 주로 섭취하고 있다면,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기운이 잘 돌아가지 않아 병이 생기기 쉬운 체질이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우리 주변에서 취할 수 있는 것 중에서는 콩나물과 동치미 같은 것이 가장 몸과 마음을 가볍고 맑게 하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같은 콩(메주)을 재료로 사용한 장(醬)이라도, 물에 우러나온 간장이 경청한 것이라면 가라앉아 된 된장은 중탁이다. 그러므로 간장은 머리에 작용하고, 된장은 몸에 작용한다는 정도의 공식이다.
한편 곡류 중에서도 쌀이나 찹쌀은 무겁고, 보리쌀은 가볍고 맑다. 약초나 산나물 중에서도 고산에서 오랜 기간 자란 산삼이나 산도라지는 가볍고 조직이 성기며, 야산이나 인가에서 재배한 것들은 무겁고 영양분이 충분하다. 고산의 약초는 머리를 맑게 하며, 재배한 약초는 몸에 주로 작용한다. 아이들의 머리를 좋게 하고, 학교 성적을 높이려면 고단백 동물성 식품이 능사가 아니라 맑고 가벼운 콩나물국, 보리밥, 잘 숙성된 간장 등이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섬유소 음식을 가까이 하자
고기 및 육류보다는 채식을 강조하면, 그래도 가족을 잘 먹이려면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소는 고기 먹고 힘쓰는가’라고 대답하며 웃는다.
굳이 피한다 해도 육식을 안 할 수 없는 것이 요즘 식생활이고,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학교 급식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 좋은 음식을 먹자는 것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 옛날보다 아이들의 영양은 좋아졌지만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고,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희귀한 병에는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환경이 전만 못해졌고, 아이들의 시간이 너무 없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섬근질의 섭취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아버지께서 가끔 이야기하시길 당신 소싯적엔 신설동 거쳐 종로로 해서 성북동까지 동네 아이들과 매일매일 마라톤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때 드셨던 음식에 고기, 생선이 언감생심이었겠는가. 쌀도 귀해 보리밥이 보통이었을 것이고 여기에 김치, 동치미, 된장국과 같이 섬유소가 풍부한 식단이 주를 이뤘을 것이다. 그때보다 더 잘 먹는 요즘 애들보고 그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다니라고만 해도 난리가 날 일이다.
우리는 섬유소를 소화 흡수가 어려워 장내 배변을 좋게 하는 물질로만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섬유소는 우리 몸의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근골은 섬유질 형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치 실로 꼬아 천을 만들듯 서너 개의 실과 같이 생긴 근육질들이 서로 꼬아져 근육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 몸 속의 근육은 단순히 팔다리 힘만 쓰는 것이 아니라 위장, 소장과 대장, 심장과 같이 중요한 장기를 움직이는 데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실과 같이 생긴 우리 몸 속의 섬근질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섬근질(섬유질)을 많이 섭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실[絲]이 삭지 않도록 산성식품을 피하고 알카리성 환경으로 잘 보존해야 한다.

단 맛과의 전쟁을 시작하자
모든 음식에는 고유의 맛이 있다. 달고[甘], 짜고[鹹], 맵고[辛], 시고[酸], 쓴[苦] 다섯 가지 맛을 균형있게 섭취하는 것이 음식이 지닌 기운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즘 식단은 너무나 한 곳으로만 치우쳐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단맛이다. 어디 가서 무엇을 먹거나 너무 달다. 흔히 단맛이라고 한다면 설탕이나 꿀을 생각하고 음식에 설탕을 넣었네 안 넣었네 하지만 단맛은 도처에 있다.
우선 곡물은 당분이다. 쌀, 보리, 감자, 고구마, 밀과 같은 음식은 이미 당분에 속한다. 이것으로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만드는 음식, 단 감주나 술을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이미 당분이다(그러니 술은 당분 중에서도 가장 나쁜 비활동성 당분이다). 충분히 주식을 섭취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분 섭취는 충분하다. 또 과일은 십년 전과 비교해보자면 당도가 무척 높아져서 특별히 고르지 않아도 달지 않은 과일이 없다. 무가당 주스는 이미 설탕이 들어간 과즙 이상의 당분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각종 음료수, 후식, 간식에 들어간 설탕과 당분은 빼고라도 설탕이 가미된 음식들은 소위 감칠맛(!)을 유도하여 우리의 혀와 입맛을 완전히 바꿔 놓고 말았다. 당분 중독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생기는 것이므로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이상의 피해를 가져온다.
과도하게 섭취한 당분은 우리 몸에서 모두 에너지로 바뀌지 못하고 지방으로 축적되고 결국 그 지방이 쌓여 우리 몸 속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단순하게 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간에 쌓인 지방은 지방간으로, 내장에 쌓인 지방은 내장지방으로, 과도한 열량은 당뇨병으로, 또한 우리 몸에 각종 염증과 종양을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결국 인위적인 식재료가 아닌 음식의 원래 맛에 충실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루 맛과 성질의 균형을 맞춘 식단은 건강의 지름길이다.
바른 몸과 마음의 건강한 삶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희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받은 내 밥상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다른 생명에서부터 얻어지는 내 생명을 생각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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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_ 문학박사(불교미술사 전공), 한국전통문화학교 강사로서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통의학과 학문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공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