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시뜨락

2007-02-14     관리자


시간

간신키치 다까하시/옮긴 이·정영희


호수의 산들바람처럼
시간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모든 생각이 그의 마음을 떠났다.

어느 날 아침 해가 산 뒤편에서
협박하듯 떠올랐다,
기대를 저버리듯 나무를 그슬리며.

활짝 깨어난 그는 담뱃대에 불붙이곤
해를 들이마시는 자세를 취했다.
시간이 비처럼 과일처럼 쏟아져 내렸다.

흘낏 돌아보다가 그는 과거로 나아가는
배를 보았다. 한 손으로
영원의 돛대를 움켜잡고

그는 우주를 눈에 담았다.


Time


Time like a lake breeze
Touched his face.
All thought left his mind.

One morning the sun, menacing,
Rose from behind a mountain,
Singeing-like hope-the trees.

Fully awakened, he lit his pipe
And assumed the sun-inhaling pose:
Time poured down-like rain, like fruit.

He glanced back and saw a ship
Moving toward the past. In one hand
He gripped the sail of eternity,

And stuffed the universe into his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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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미국의 시인 루시앙 스트뤽(Lucien Stryk)의 도움으로 영어로 번역된 일본 선사 신끼쉬 다까하쉬의 선시이다. 공안(公案) 해석에 주력한 이론적인 선이 발달한 일본의 선사답게 다까하쉬는 다음의 공안을 읽고 영감을 받아 이 시를 썼다.

“주목하십시오!” 여름이 다 갈 즈음 Suigan이 대중에게 나가 말했다.
“여름 내내 여러 형제들에게 설법해왔습니다. 자, 보시오! Suigan에게
눈썹이 있습니까?”
Hofuko가 말했다. “도둑질하는 자에게는 속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Chokei가 말했다. “눈썹은 자랍니다.”
Unmon이 대답했다. “장애입니다.”

이 시에서 해는 시간을 가리킨다. 이는 해시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해를 들이마신 후 화자는 시간의 세계를 넘어서서 생각을 떠난 무심(無心), 아무 것에도 걸릴 것 없는 절대초월의 참 마음의 세계로 들어선다. 위협적인 해의 세계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시간의 세계이지만 절대적인 깨달음의 경지는 상대성의 시간과 자아를 초월하여 과거에 대한 망념과 생각 분별에서 생기는 온갖 번뇌를 여읜 텅 빈 상태(the Void)의 절대 진리의 세계이다. 사물의 표면현상을 보는 거짓된 봄[觀]이 아니라 사물의 본래성품을 보는 진실된 봄을 터득한 화자는 영원으로 나가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
이 시에는 세계의 4대 구성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다 나타나 있고, 불과 시간의 심상이 알맞게 쓰여졌다. 호수의 산들바람은 ‘날려버린다’는 니르바다(nirvana)의 어원에 알맞게 사용되어 있는 열반을 뜻하는 심상이다.

신끼쉬 다까하쉬(Shinkichi Takahashi, 1901~1987) |일본 쉬꼬꾸의 한 어촌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저술가로 살다가, 허무주의에 빠져 방황하던 중 한 선사의 도움으로 선의 길로 들어섰다. 엄청난 금욕적 수행으로 미쳐버린 그는 3년간 집에 갇혀 지내면서 많은 시를 썼다. 그 후 쉬잔 아쉬까가 스님(Master Shizan Ashikaga)의 가르침 아래서 17년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1970년 시집 『잔상(Afterimages)』을 일본과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출판하여 선의 세계와 현실 자연세계를 오가는 선시로 큰 호응을 얻었다. 시집으로 『제비의 승리』 등이 있다.

정영희 |위덕대 영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