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마음에 달님·별님·사람님을 모시나이다

금강 스님이 들려주는 절집 이야기 11 / 산사음악회

2008-12-29     관리자

[풍경 하나] - 소리꾼 정기열 할아버지
“마을에서 그냥 소리하는 사람인디 미황사 금강 스님이 소리가 하도 좋다고 항께 여기까정 나와 부렀소. 소리 한 대목 하고 내려 갈라요.”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삭풍(寒露朔風) 요란해도 제 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黃菊丹楓)도 어떠헌고 … …

정기열 할아버지는 미황사 전속 가수이다. 음악회 1회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무대에 올랐으며 초파일에 하는 어르신노래자랑에도 매년 찬조 출연하신다. 귀동냥으로 배운 가락에 나이 들어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소리는 소박한 음악회 무대에 맞춤하다. 한 해 두 해 미황사의 음악회가 거듭되어질수록 소리가 좋아지더니 어느새 해남고을에 판소리 대표주자가 되셨다. 미황사에는 할아버지의 팬클럽이 만들어질 정도가 되었다.

[풍경 둘] - 광수전자

광수전자 박광수 사장님은 읍내에서 오랫동안 전파사를 하는 신심 깊은 신도이다. 음악회는 음향과 조명이 생명인지라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다. 마이크 없이 생음악을 그대로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인원이 많다보니 생음악을 최대한 살리는 좋은 음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음향을 갖추려면 적잖은 돈이 드는 터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광수전자를 찾아 상의를 했다. 노래방 기기에 가까운 스피커와 조명이랄 것도 없는 롱 핀 하나를 갖춘 소박한 음향기기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사장님은 장비를 늘리더니 실력까지 일취월장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지역 축제가 많고 행사도 많아지면서 광수전자 없는 잔치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풍경 셋] - 손에 손 잡고 강강술래

강강술래와 해남 들노래가 지역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재임에도 무대 위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역민들도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를 쉽게 접할 수 없었다. 거기에서 착안하여 강강술래 팀을 음악회 무대에 올리기로 하였다. 반응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네 사람이 앞소리를 매기고, 수십 명이 씨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하는 들노래가 미황사 난장에서 펼쳐지니 산사는 금세 흥겨운 가을 들녘이 되었다. 거기에다 손에 손 잡고, 소리꾼과 관객이 한데 어우러지는 강강술래 무대는 음악회를 뜨거운 절정의 순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엇에 홀린 듯 신명에 취한 모습은 가히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에 견줄 만큼 매혹적이었다. 지역의 음악을 발굴하고 발표하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내심 갖게 했다.

모두가 만들고 모두가 즐기는 작은 음악회

금산사에 살고 있는 일감 스님이 행사를 돕기 위해 찾아왔다가 절 아랫마을에서 마을 방송 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모양이다. 절 행사에 참석하라고 마을 방송을 하는 곳이 다 있다며 신기해한다. 모든 마을이 행사 전에 두세 번씩 방송한다는 걸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시골에는 청년들이 사오십대이다. 그들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도맡아서 한다. 절도 마을에 속해있으니 도와달라고 정중히 요청한다. 그리고 조상대대로 절의 주인은 지역민들이고 앞으로도 후손들의 것이니 여러분이 주인이라며 떠넘기니(?) 초파일 등줄 치는 것부터 음악회 무대며, 피아노 옮기는 일까지 모두 그들 손에서 진행이 된다. 청년들의 부인들은 며칠 전부터 비빔밥 준비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설거지 마무리까지 주인처럼 도맡아 한다.
2000년 11월 11일은 미황사 산사음악회가 시작된 날이다. 무슨 거창한 뜻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고 가을 산사의 밤 풍광이 좋아 혼자 보기 아까워 벌인 일이었다. 절 주변 분들과 아는 지인들을 불러 남도 소리 한 대목 같이 듣고, 시회를 여는 자리를 만들자는 소박한 뜻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내 뜻을 아는 지인들이 소문을 내다보니 규모가 커졌다. 마당에 멍석 깔고 하려던 것이 무대를 만들어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춘 음악회가 된 것이다.
음악회를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은 홈페이지에 세세하게 공개한다. 작은 것이라도 공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참석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준비부터 진행까지 모두가 만들고 모두가 즐기는 음악회라 할 수 있다.

대중공양(2,000명)
밥 4가마: 100만원
무김치: 50만원
콩나물: 40만원
고사리: 50만원
......

이렇게 홈페이지에 올리면 앞 다퉈 공양에 참여하겠다는 문의가 들어온다.

햅쌀 8가마, 햅찹쌀 2가마: 박동심(우근리)
무 30개: 김상식(산정리)
고추장 10만원: 담공거사(상도선원)
참기름 15병(50만원): 이향연화(서울)
오이 10만원: 윤영종(인천)
......


직접 농사짓는 신도는 쌀을 내놓고 미황사와 인연 있는 이들은 그들 나름의 방법을 찾아 도와주려 애쓴다. 간혹 서로 보시하겠다고 다투는 경우도 있다.
붉은 단풍과 청량한 바람, 밝은 달과 보석처럼 빛나는 별빛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가 산사음악회이다.

우리네 마음에 사람을 모시나이다.
우리네 마음에 향기로움을 모시나이다.
우리네 마음에 달님 별님 사람님을 모시나이다.
따뜻하고 순결한 마음 오롯이 하나로 모아
마음에 마음에 불 밝히니
저 달님에게서, 저 별님에게서, 저 사람님에게서
향기가 나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네.

음악회 마지막 순서에 읊는 발원문처럼 깊어가는 이 가을 모두들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길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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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 _ 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해인사에서 행자생활과 강원생활을 하였으며, 중앙승가대학교와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백양사에서 서옹 큰스님의 참사람운동과 무차선회를 진행했다. 1994년 종단개혁 때는 범종단개혁추진회 공동대표를 맡아 일을 했다. 2000년부터 미황사 주지 소임을 맡아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선수행 프로그램인 ‘참사람의 향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산중사찰의 모델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