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면...

만남, 인터뷰 / 철원 지장산 도연암 도연 스님

2008-12-29     관리자
강원도 철원군민의 축제인 태봉제에서 한 스님이 두루미(학)가 그려진 연을 띄우기 위해 바람의 방향을 가늠한다. 좀처럼 바람을 타지 못하고 연신 땅으로 곤두박질하던 연이 마침내 가을 하늘 높이 비상하자, 비로소 스님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진다. 이 스님이 바로 철원 지장산 아래 컨테이너에서 새들을 벗 삼아 홀로 사는 도연 스님이다.
이 날 스님은 철원의 상징인 두루미를 알리고 보호하기 위해 태봉제에 참여했다. 네 시간여 동안 쉬지 않고 사람들에게 두루미를 그려주며, 각자 소망하는 글귀 한 마디씩을 곁들여준다. 스님과 함께 새를 탐조하며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새 박사’ 윤무부 박사도 참여하여 두루미를 비롯한 새의 소중함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다. 이들의 새 사랑은 사진을 찍으면서도 드러난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 김치도 치즈도 아닌, ‘까~치’ 하며 소탈한 웃음을 보여준다.
“윤무부 박사님이 지난 해 겨울 무주구천동에서 3일간 텐트를 치고 새 탐조를 하다가 그만 뇌경색으로 쓰러져 오른쪽 손발이 마비되었어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새를 보호하고 알리는 일에는 먼 길도 마다않고 달려와 도움을 주십니다. 새는 지표생물로서, 새가 살 수 없는 곳은 인간도 살 수 없습니다. 철원은 환경이 덜 오염되고 낙곡이 많은 데다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는 DMZ가 있어 새들이 살기에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두루미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1급 조류로서 전 세계에 1,500여 마리밖에 없는데, 겨울이면 모두 한반도로 날아듭니다. 두루미는 십장생의 하나로 오래 살고 가족 단위로 무리 지어서 생활하며 부부가 한 번 만나면 헤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무병장수와 가정의 화목함을 부르는 길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자유, 자유, 자유
도연 스님의 별명은 어디에 계신지 정처를 알 수 없는 스님이라고 하여 ‘오리무중’,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신다고 하여 ‘번개 스님’이다. 10여 년 전, 걸림 없이 살기 위해 자유를 찾아 떠나온 곳이 철원이었다.
어느 겨울 날 텅빈 철원 평야에 나가보니, 갑자기 어디선가 수만 마리 새들이 힘찬 날개짓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스님은 진정한 자유와 환희로움을 느꼈다. 바로 저 새들에게서 수행자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번식 때 외에는 둥지마저 버리고 깃털만으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에서, 진정한 무소유와 자유로움을 깨닫게 되었다. 새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어 카메라를 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새들의 움직임을 탐조하게 되고 환경 감시활동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덧 생태사진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추운 겨울, 새들을 탐조하며 카메라에 담는 일은 어느 수행보다 혹독했다.
“새들의 생태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새들 가까이 가야 합니다. 오후 4시 새들이 잠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먼저 위장텐트를 치고 들어가, 새들이 날아가는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한겨울이면 이곳 날씨가 영하 28도까지 떨어지는데, 그때 잠들면 저체온으로 얼어죽습니다. 아무 것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다보면 마치 새와 일체가 된 듯한 경이로운 체험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잠이 몰려오면 천수경을 욉니다. 한 번 외는데 40분이 걸리는데, 마음을 집중하여 몇 번 거듭하여 외다보면 시간도 잘 가고 잠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토록 목숨을 걸고 새 사진 찍기에 몰입했던 스님은 2년 전 돌연 카메라를 놓아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의 천적은 맹수가 아닌 사람이며, 그 중에서도 바로 자신과 같은 사진가들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아름다운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이 강하게 꿈틀거렸다. 그러다보니 새들의 공간에 침입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생태환경을 무너뜨리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성능 좋은 카메라 장비를 처분하고, 수만 컷에 달하는 슬라이드는 남을 줘버렸다. 대신 스님은 붓을 들었다.
“학창시절 그림 공부를 조금 해서, 얼추 그리는 흉내는 낼 수 있었지요. 새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그림으로 남기다보니 그림 솜씨도 늘더군요. 그래서 새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그림 보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두루미 그림에 사람들이 소망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선물로 줬더니 모두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겁니다. 이후로 새와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거나 환경보호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두루미 그림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세상 속으로 페달을 밟다
나는 지장산 야트막한 숲에 있는 두 평 컨테이너에서 홀로 살며, 새벽 기도와 명상으로 아침을 열고 물 긷기와 뒷산 오르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계곡에 내려가 깨끗이 머리 면도를 하거나 빨래를 하는 것은 나의 초발심을 점검하는 중요하고 엄숙한 의식이다.
- 도연 스님 홈페이지 ‘비밀의 정원(www.hellonetizen.com)’ 메인화면 중에서

새들은 붉은색과 흰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군인들을 보고는 도망을 가지 않는 것이다. 스님은 이에 착안하여 사진을 찍을 때도 위장군복을 입었으며, 자신의 자가용인 트럭도 얼룩덜룩한 국방색으로 도색을 하였다. 스님이 운전하는 그 위장트럭을 타고 컨테이너 토굴 도연암으로 향했다.
도연암 입구에는 나무로 낮게 만들어놓은 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일주문이란다. 고개를 숙이고 겸허한 하심(下心)의 마음을 간직하며 드나들라는 의미에서 높이를 낮추었다. 일주문을 들어가면 여느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요사채로 쓰이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 좌측으로 비닐하우스 법당이 자리하고 있다. 법당 안에는 일반적인 탱화 대신 지장산 노을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떼 사진을 걸어놓았다.
스님이 ‘비밀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도연암 마당과 숲에는 생명의 신비로움이 감지된다. 자작나무, 누리장나무, 붉나무 등 흔히 보기 힘든 나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고, 나무마다 작고 예쁜 새집이 걸려있다. 또한 노랗고 붉은 가을꽃들이 숲길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비밀의 정원은 스님이 직접 돌밭을 다듬고 흙을 덮은 후, 나무와 화초를 심어 정성껏 가꾼 결과물이다. 초파일에도 등 공양 대신 나무 공양을 받아 숲을 풍요롭게 채우고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땅 속에서 푸른 새싹, 노란 꽃이 나오는 것만 봐도 환희롭지요. 비밀의 정원은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어야 해요. 그곳에서 열심히 꿈을 키우고 수행하며 나를 뒤돌아보면 분명 환희심이 넘쳐나게 됩니다.”
스님은 요즘 자전거에, 속칭 ‘꽂혔다’. 생태환경지킴이로서 자전거 순례를 하며 길 위에서 보내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법당에 고이 모셔진 자전거에 침낭과 1인용 텐트를 실어놓고 언제든 떠날 준비가 완료되어 있다. 일단 자전거 페달을 밝으면 마치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가듯 철원평야에서 부산까지, 한강에서 낙동강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보살이고, 그냥 스쳐지나쳤던 것들을 보게 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루라도 자동차에서 내려보세요. 내 힘과 동력으로 움직여 어디를 갔을 때의 숭고함과 경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가부좌로 오래 앉아 있는 스님들에게는 건강에 더없이 좋습니다. 심폐기능이 좋아져 호흡이 길어집니다. 염불을 해보면 단박에 알 수 있지요. 스님들이 건강미가 넘쳐흘러야 신도들도 기를 받아갈 것 아닙니까. 하하하.”
도연 스님은 가난하다. 그리고 당당하다. 간혹 생활비를 벌기 위해 트럭 운전을 하기도 한다. 만원 지하철에서 땀 냄새, 입 냄새, 방귀 냄새에 시달리며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도를 닦는 사람들이라며, 언제나 세상 속으로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틈틈이 컴팩트 디카(일명 똑딱이)로 자신이 만난 사람과 새와 꽃들을 찍으며 홈페이지에 올려 세상과 소통하고, 그것을 모아 책(『그래, 차는 마셨는가』)으로 엮어내기도 한다. 실의에 빠진 사람들은 이 가난한 스님을 보고 희망과 용기와 위안을 얻는다.
“요즘 자살도 많고 살기가 참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실체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요. 허상을 보고 애걸복걸하며, 분을 못 이기고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불교 8만4천 법문을 다 알아야 한다는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발원, 그 본질을 잊지 않고 살면 됩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면, 그러면 됐습니다. 대통령이 욕도 많이 먹는데, 대통령이 아닌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국민이 뽑은, 국민에 걸맞는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내 잘못인데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조금만 덜 갖고, 조금만 아래를 보며 걷고, 조금만 덜 좋은 것을 쓰면, 그리고 그것이 남을 위하여 쓰여지면 그만큼 고통이 줄어들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도연암의 저녁 어스름, 어둠과 함께 풀벌레소리와 새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함께 동행했던 윤무부 박사가 “저 소리는 방울벌레고, 이 소리는 직박구리야. 다 내 친구들이지.” 하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