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심병(狂心病)에서 비롯된 광우병과 광신병

특별기고

2008-12-29     관리자

밀레니엄 세기말을 무사히 넘기나 싶었는데, 아직도 말세론은 수그러들 낌새조차 없이 치성한 가운데, 올 들어 유난히 광풍(狂風)의 회오리가 거세다. 미친 소 파동이 그렇고 독선적 맹신주의자의 미친 말 파동이 그렇다. 믿음이 자신의 내면 안에서 자리할 때는, 미치든 달치든 어느 누구도 거리낄 바 없는 절대 양심의 자유다. 영혼의 믿음 속에서 자기 믿음만이 최고 유일의 절대라고 믿는 건 신앙의 본질속성상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러나 그 믿음이 바깥으로 타자를 향해 드러날 때는, 인간 사회성의 본질상 제약(制約)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개인 절대자유의 공존(共存, 共尊)을 위해 평등의 원리가 들어서는 까닭이다. 그래서 황금률과 이른바 똘레랑스라는 관용이 동서고금 모든 윤리도덕 및 법규범의 최대공약수로 공통 기본원리가 된다. 그걸 사회의 약속(約束)이라고 한다.
종교신앙 조직도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자체 논리의 강화를 통해 존립의 독자성을 확보해 가려는 속성을 띠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특정 교리가 두드러지게 고양(高揚)하여 항진(亢進)할 수 있고, 구성원의 신앙심과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극단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적지 않다. 이 점에서 정치이데올로기와 흡사한 성격을 지니며, 그 광란의 폐단은 인류역사가 참담하게 증명하고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일부 특정종교인들의 ‘종교에 관한 언동’은 종교의 본질을 크게 벗어나 사회의 평화공존을 위협할 만한 위험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어느 종교를 믿는 나라는 다 잘살고, 어느 종교를 믿는 나라는 모두 못산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21세기 첨단과학시대 광명천지에 신앙이라는 미명으로 뻔뻔스럽게도 버젓이 지껄인다.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
그들이 말하는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경제적·군사적 강대국을 말하는가? ‘일본’은 유일한 예외라고 말하더라. 그럼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북경올림픽으로 강성대국의 기지개를 켠 중국은 어떤가? 우리나라도 그 종교가 이만큼 발전시켰는가? YS때 IMF도 그 당연한 성과인가? 분명한 건 세계 잘사는 선진국의 그 종교는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편협한 오만과 독선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다문화(多文化)를 껴안는 똘레랑스가 두드러진다고 하더라.
그리고 현장조사에 따르면, 경제상의 부와 행복지수는 그리 비례하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부탄은 오히려 행복지수가 최고수준이라고 하지 않은가? 요즘 흔히 말하는 ‘부동산 거품경제’뿐만 아니라, 물질경제 자체도 종교상으론 물거품이나 뜬구름 같은 덧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육신 생명’의 인생 자체를 한바탕 봄꿈처럼 허망한 놀음이라고 설파하는 게, 모든 종교의 공통 가르침이고 모든 성현과 철인들의 공통 깨달음일진대, 하물며 그 육신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인 물질경제야 오죽하겠는가?
근데도 정신상·영혼상 부유함을 추구해야 할 종교의 성직자란 자들이 돈과 물질경제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워, 잘사는 나라를 치켜세우고 종교간 갈등과 반목을 조장한단 말인가? 그 종교의 경전에 보면, 스승님은 자기를 따라오는 부자한테 “먼저 네가 가진 재산을 전부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셨다. “네 재산 전부 나한테 갖다 바쳐라. 내가 가난한 이들한테 나눠줄 테니.”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그뿐인가? 광야에서 40일간 악마의 시험을 받을 때, 빵과 명예와 권력의 유혹을 모두 단호히 물리치고 오로지 영혼의 생명을 내세웠다.
근데 말세의 일부 자칭 ‘누구 제자’라는 자들은 오로지 신도 수와 교세의 확장을 위해 경전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치닫고 있으니, 이게 정녕 말세의 징조란 말인가? 물론 그 ‘교주의 뽑힌 12제자(사도)’ 가운데는 돈을 밝히는 데 눈이 멀어 제 스승님까지 은전 몇 닢에 팔아넘긴 자도 있었다. 지금 ‘그 분의 이름’을 팔아 헌금이란 명목으로 황금을 긁어모아 ‘더 많이 더 높이’를 꾀해 세계적 조직과 부를 자랑하려는 극소수 ‘성직자’들도, 바로 ‘그 분을 팔아먹은 제자’의 정통 직계후예들이란 말인가? 그들 자신이 스스로 그런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 분을 팔아먹은 제자’는 곧바로 ‘피값’을 스스로 톡톡히 치렀음을 잘 기억하시겠지? 그래서 ‘그분’ 자신이 미리 예언을 남겨 놓으셨지 않은가? 말세가 되면 자칭 ‘재림자’와 ‘제자’가 득실거릴 테지만, ‘그 분’을 주인으로 믿는다고 외치는 것만으로 천당에 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이게 모두 사람 정신이 줏대 없이 지나치게 격앙하여 미치는 광란일 따름이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
‘광우병’도 사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자기네만 하늘(자연)의 선택을 받은 최고 제일의 절대적 존재라는 독선적 만물영장론에 우쭐하여, 다른 생명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여 빚어진 ‘물질상 먹거리’론의 당연한 결과다. 위의 ‘잘사는 나라’ 기준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잘 먹는 사람(삶)’ 기준을 물질상·육체상의 먹거리 맛과 영양으로 잡은 것이다. 누가 생명을 죽이는 데 더 용감하고 힘센가? 순전히 ‘무식이 용감’ 시합이다. 그 고기와 피를 먹고 힘을 더 불끈 쓰는 자가 힘있고 용감하여 다른 사람을 호령하는 비열한 야만적 권력투쟁에서 비롯했다. 영혼의 자비와 정신의 지혜는 나약하고 소심한 겁쟁이의 상징이요 대명사고, 심지어 노예근성의 다른 이름이다?
인구가 늘어나고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더 맛있는 먹거리를 더 싼값에 더 많이 팔아 돈 많이 벌고, 더 많이 사 먹어 부와 힘을 자랑하자는 쌍방의 경쟁열기가 내뿜은 시너지 효과가 극점에 이르러 마침내 광우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어디 소뿐이랴? 닭과 오리는 미쳐 조류독감으로 폐사하며, 사람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집단 생매장을 원한다고 날뛰지 않는가? 돼지는 미친 나머지 구제역(口蹄疫)에 걸려 집단 자살의 길을 택한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미니 애완동물들은 주인과 동침하며 동고동락하는 호강에 겨워 마침내 사스(SARS)를 퍼뜨렸다.
인간의 탐욕과 극성에 시달리다 못해 미친 ‘생명’이 어디 한둘이랴? 주위의 조연(助緣; 助演)들이 모두 미쳐 날뛰는 마당에, 그 한가운데 선 주인(主因; 主人)만 멀쩡할 수가 있겠는가? 실은 주인 격인 사람의 마음이 미치니 주위 생명도 감염 당한 셈이다. 영육(靈肉)이 함께 미치고 주객이 모두 미쳐 날뛰는 온통 ‘광란(狂亂)의 축제’ 한마당이다. 더 무엇을 바라고, 또 누구를 탓할 것인가? ‘광우병’이나 ‘광신병(狂信病)’이나 모두 사람의 마음이 미친 ‘광심병(狂心病)’에서 비롯할 따름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요, 만법유식(萬法唯識)인 걸!
그 종교경전에서 예언한 것처럼, 예전에 있었다는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불길 같은 ‘최후의 심판’이 장차 어느 순간 들이닥친다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자들이 살아남을까? 돌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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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_ 서울대 법학박사, 현재 전남대학교 법학과 부교수로 있다. 역저서로 『화두 놓고 염불하세(印光大師嘉言錄)』, 『단박에 윤회를 끊는 가르침』, 『운명을 뛰어넘는 길(了凡四訓)』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