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천지 꽃무릇 바다에 돌거북으로 빠지다

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 함평 모악산 용천사

2008-12-29     관리자

▲ 사천왕문 앞 꽃무릇 밭. 동서남북에서 각각 비파와 여의주와 칼과 탑을 든 사천왕이 퉁방울눈을 부릅뜬 채 60만 평의 꽃무릇 화엄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
용천(龍泉). 용이 솟아오른 샘의 절을 찾아 함평 모악산(母岳山, 해발 347m)에 간다. 빨강, 노랑 그리고 창천(蒼天). 용천사(龍泉寺) 푸른 하늘 도화지에 단풍 빛이 깊이 물들었다.
이런 가을날에 약이 되는 채근담 한 구절.
“석화(石火) 같은 인생, 영화를 누리면 얼마나 누릴 것이며 달팽이 뿔 위에서 힘을 겨룬들 그 힘이 얼마나 될 것인가?”
이럴 땐 부처님의 보약 한 첩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이 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이 작은 몸 안에 모든 가르침이 다 있다. 그 안에 고통이, 고통의 원인이, 그리고 그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이 다 들어있다.”
항하의 모래알 같은 내 몸 안에 모든 가르침이 다 들어 있다니, 고통과 고통의 원인과 그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의 연혁(沿革)이 함께 살고 있다니, 그러고 보니 내 몸의 내지(內地)는 항상 우주였구나. 저절로 화엄이었구나. 화엄 바다였구나.
그것도 모르고 나는 노상 석화 같은 내 몸의 바깥에서 고통과 고통의 원인을 찾았다. 달팽이 뿔 같은 내 욕망의 그물 위에서 부와 귀(貴)와 명예와 자유와 평화를 한꺼번에 움켜쥐려고 몸부림쳤다.

용천사를 전국적으로 알린 꽃무릇 축제
용천사 60만 평 붉은 꽃무릇 밭에 서면 내 외지(外地)의 그 모든 것이 정말 부질없는 석화임을 깨닫는다. 60만 평 그 화염(火焰)의 꽃밭에 서면 내 몸 바깥의 그 모든 것이 정말 달팽이 뿔임을 깨닫는다.
그런 까닭에 용천사 사천왕은 동서남북에서 각각 비파와 여의주와 칼과 탑을 든 채 퉁방울눈을 더 크게 부릅뜨고 산문(山門) 밖 화엄 바다를 내다보고 있다. 꽃무릇 화염 바다에서 금붕어처럼 헤엄치고 있는 선남자선여인들의 속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
▲ 우리나라 최대의 꽃무릇 밭인 용천사 꽃무릇. 꽃무릇은 석산, 용조화, 산오독, 야산, 산두초, 바퀴잎 상사화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천사 창건 연대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으로 알려졌다. 인도승 마라난타에 의해 영광 불갑사와 함께 개창됐다고 한다. 그러나 용천사 일대에 거대한 꽃무릇밭이 조성된 건 언제 적 일인지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지난 2000년 이 절 주지로 부임한 혜용(惠勇) 스님이 사찰 주변의 드넓은 꽃무릇 밭에 착안, 꽃무릇 축제를 엶으로써 잊혀져가는 용천사를 전국적으로 알린 것이다.
인도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꽃무릇이 영광 불갑사와 고창 선운사 등 절집 주변에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석산, 용조화, 산오독, 오독, 산두초, 야산, 붉은 상사화, 바퀴잎 상사화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꽃무릇의 화려한 화엄 빛은 탱화를 만들 때 주요 색소와 방부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흉년에는 토란처럼 삶아먹는 구황식물이었다는 점도 한몫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늘로 승천한 돌거북들
용천사의 관람 포인트는 먼저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석등(전라남도 유형문화재 84호)이다. 쑥돌(화강암)로 된 8각의 간주석 위에 4각의 화사석(火舍石)을 얹고 네 면에 둥근 화창(火窓)을 낸 2.38m의 이 석등은 조선시대 4각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 용천사의 관람 포인트 1호는 석등이다. 대웅전 왼편에 있는 석등은 용천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석등의 화창을 환히 밝히고 있는 꽃무릇들.
▲ 꽃무릇 불빛 환한 석등의 화창을 향해 기어오르는 돌거북의 모습이 우리들의 바쁜 마음살림을 다스려주듯 느리면서도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석등 받침석 두 귀퉁이에서 꽃무릇 불빛 환한 화창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두 마리의 돌거북은 이 석등의 압권이다.
그 돌거북의 살아 움직이는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돌덩이 같은 내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당초에는 네 귀퉁이에서 한 마리씩 모두 네 마리의 돌거북이 화창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두 마리가 깨져 나가고 없다. 필시 꽃무릇 불빛을 타고 화엄 세상으로 먼저 승천했으리라.
용천사의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는 대웅전 돌계단 오른쪽 옆에 있는 작은 샘이다.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용천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용천(龍泉, 용이 승천한 샘)이다. 용천사에 가면 이 용천의 물을 반드시 한 잔씩 맛보고 와야 한다. 2m 깊이에서 샘솟는 이 용천수는 마시는 순간 우리 몸에 시원한 용의 비늘을 달아주기 때문이다.
▲ 용천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용천을 혜용 스님이 들여다보고 있다. 용천사는 대웅전 앞의 이 용천에서 용이 승천해 용천사라 했다 한다.

용천과 함께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대웅전 돌계단 난간이다. 석등과 함께 용천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대웅전 돌계단 난간은 여느 절집의 경우 대부분 용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과는 달리 연꽃 문양이 마음의 꽃처럼 처절하도록 아름답게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 용천사에 가면 절대로 놓치고 와선 안 될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가 있다. 면장갑을 끼고 끊임없이 머슴허리를 놀리고 있는 혜용 주지스님이다.
그러고 보니 용천사에 가면 절대로 놓치고 와선 안 될 포인트가 또 하나 있다. 면장갑을 끼고 끊임없는 초식으로 머슴허리를 놀리고 있는 혜용 주지스님이다. 6.25전쟁 때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와 빨치산의 최후 격전지로 완전 소실된 용천사를 전국적으로 알리고, 옛 모습을 따라 지금처럼 복원 불사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 이 혜용 주지스님의 머슴허리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온화한 마음으로 성냄을 이기라
착한 일로 악을 이기라
베푸는 일로써 인색함을 이기라
진실로써 거짓을 이기라

전쟁터에서 싸워
백만 인을 이기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다.

부처님의 또 다른 보약 한 첩을 내주는 혜용 스님의 맑은 미소와 작은 풍채는 석등의 돌거북처럼 정갈하고 소박했다. 작고, 낮고, 하찮은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스님의 평소 지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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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_ 1986년 서울신문에 시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각각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수렵도』, 『퍽 환한 하늘』 ,『아무도 너의 깊이를 모른다』 등과 동화책으로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발가락이 꼬물꼬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