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바람직한 위상 정립

연중특별기획 - 이 시대를 진단한다 / 종교편향과 한국불교의 위상

2008-10-30     관리자

지난 8월 27일 서울 시청 앞 광장 야단의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대회’ 이후, 이에 대한 각종 언론 보도 등으로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저간의 경과를 되새겨 보아야 하고 제기된 의제들에 대하여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차제에 ‘종교편향’과 아울러 ‘한국불교의 위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지난 세기말부터 10여 년간 각종 종교단체의 임원으로서 국내외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 많은 상황을 겪으며, 한국불교의 위상에 대한 아쉬움을 느껴왔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회를 나눠보려 한다.
종교적 유엔을 표방하는 종교연합(URI)의 창립 목적은 “일상적 종교간 협력을 영구히 증진시키고, 종교로 말미암은 폭력을 종식시키며, 지구와 모든 생명체들을 위한 평화와 정의 및 치유의 문화를 조성하려는 데 있다”고 그 헌장은 명시한다. 지금도 중동의 분쟁이 보여주는 것처럼, 한 뿌리에서 나온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사이에서도 정치사회적 종교편향과 독선으로 야기되는 갈등과 폐해가 얼마나 큰지 두루 알고 있다. 종교간 문제의 해결방법은 각 종교 전통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공동선을 위해 서로 협력하여 공존공영 내지 화합상생의 평화문화를 이루는 데 있다. 이 일은 이 시대 모든 종교지도자들의 의무이고 사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히 불교인들이 솔선수범해야 할 줄 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 한국불교의 위상을 국내와 국제적 분야로 나누어 보자.

한국불교의 국내외적 위상

어느 종교학자가 분석한 한국의 종교상황을 통해, 한국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요지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문화적 측면을 수평적으로 보면, 불교가 그 중심에 자리하고 기독교가 주변에 처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정치사회적 측면을 입체적으로 보면, 기독교가 상층부위에 있고 불교가 그 하층부에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두 종교 모두 외래종교이다. 불교는 전래이후 1,60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국의 고·중세 문화창달에 기여하며 완전히 토착화되어 정서적으로 민족문화 지평의 중심에 있다. 반면에 천주교는 200여 년, 개신교는 100여 년의 기간에 한국의 근대문화 발전에 기여하였지만 아직도 토착화되지 않아, 현대 내지 외래문화로서 민족문화의 중심에 진입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 경제적 지도자들, 특히 근래 국회의원이나 장차관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 등 막강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분포를 감안할 때, 그리스도교인에 비해 불교인들의 사회적 위상은 질과 양 모두 취약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반 신도들의 숫자도 객관적 통계에 의하면, 천주교(11%)와 개신교(17%)를 나누어 볼 경우는 불교(23%)가 제일 많지만, 천주교와 개신교를 그리스도교로 합산할 경우 불교보다 많은 것이 현실이다.
세속적 경쟁논리로 보면, 본능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상위의 영향력으로 주변부의 문화적 위상까지 중심부로 옮기려 하고, 불교는 하위의 중심부에서 사회적 영향력 증대를 위해 정·재계 내의 위상을 높이려 할 것이다. 모두 중심과 상부를 차지하여 그 사회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려 하기 때문이다. 근래에 신자 수가 감소하는 경향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끼는 기독교계 인사들이 비정상적인 자구책을 시도하며 무리수를 쓰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 보고 불교계는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겠다.
한국불교의 국제적 위상은 세계불교계 내부와 범세계종교계로 나누어 살펴보자.
불교국으로서의 상좌부전통을 지켜온 동남아시아는 나라마다 자국의 특성을 유지해 오고 있는 상황이라 한국불교가 들어가 현지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근래 자연재해지역이나 빈민가에 현지인을 위한 구호나 복지활동 등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한국불교가 기성 불교국에 진입하여 활동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필요성도 없었고 또한 그러한 시도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이나 유럽 및 호주 등 서양문화권에 진출한 한국사원들이 있지만, 티벳과 중국 및 일본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불교국들의 활동과 비교해 보면, 한국교포들을 제외한 현지민들에 대한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실정이다.
동서양을 망라한 세계불교도 우의회(WFB) 등 각종 국제불교행사나 대사회적 불교활동도 한국이라는 국가위상에 걸맞는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세계종교의회(PWR)나 종교연합(URI),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등 세계종교들이 함께하는 회합이나 활동에서도 다른 종교계나 다른 나라 불교계보다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부진하다. 한마디로 불교계를 포함한 세계종교계에서 한국불교계는 국제적 감각과 정보능력 및 참여의식이 부족하고 관련 인력과 재력 및 지도능력은 다른 나라들에 비교하면 그 위상은 주변부 내지 최하위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불교의 위상이 제대로 서기 위하여…

불교계가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회 내지 세계의 종교적 수요와 기대에 부응하고 제 역할을 하며 그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고 희망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존중되고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귀의처가 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불교인 대중 각자가 자기분야에서 사회적 저력을 키우는 것이 전제되어야겠지만, 국가 사회의 역량 활용을 향도하는 정책 결정과 여론형성을 주도할 지도층 인사로서의 지위와 업무 확보가 필요하다. 불교계가 지난 세월 시의 적절한 사회적 감각과 관심이 없어 필요한 인재양성과 포교에 소홀하여 다른 종교계가 세력을 확장하도록 방치한 결과 그전에 가졌던 위상을 저버렸음을 반성해야 한다.
일본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에 불교가 건재하고 그리스도교의 세력이 미약한 것을 보면, 한국은 불교가 제 위상을 지키지 못한 예외적 경우임이 분명하다. 국내 불교의 저력이 충분해야 국제 불교계 및 세계종교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과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 국내외의 불교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인력과 재력의 확보 즉 인재교육과 활동지원을 해야 함이 명백하다. 현실은 과거의 부실 결과라는 인식과 그에 대한 후회로만 개선되지 않고, 바람직한 미래의 위상정립을 위해 늦었지만 치밀하게 계획하고 전심전력으로 매진해야 할 줄 안다.
종교인은 속성상 자기가 속한 종교가 절대적으로 최선이라고 믿기 십상이다. 특정 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며, 이들 가운데 극단주의자들은 독선을 넘어 배타적이고 그 행태는 매우 오만하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광신자들은 건전한 상식 밖의 행위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도덕불감증이 있다. 공직자로서 자질이 부족한 인물이 공권력을 종교편향적으로 행사하면 그 공동체의 폐해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자질 부족의 인물이 공직자로 선출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이 어떠한 술수로 되었다 하더라도 망동할 수 없도록 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불교인들이 건전한 비판적 안목을 갖춘 민주시민으로서 사회 정치의식을 갖고 주권을 올바로 행사할 수 있도록 법회를 통해 육성되어야겠으며, 필요한 입법과 행정조치를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모든 주장과 행동은 합리적이며 불교적 품격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다른 종교인들을 포함한 일반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 평화 상생의 정토실현이 되고 불교의 위상이 제대로 설 것이다. 불교인들이 주인의식과 요익중생의 보살 원력으로 분발하여 제 도리를 다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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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월 스님 _ 1968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수선안거 이후 제방선원에서 1980년까지 참선정진했다. 이후 동국대 승가학과와 서강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학 대학원 종교학과와 버클리대학 불교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한국종교연합 창립회장, 조계종국제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종교연합(URI) 세계위원회 이사,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이사,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집행위원,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동국대 정각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동국대 선학과(경주) 주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