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위법(有爲法), 분별 작용으로 드러난 현상

기초 튼튼, 불교교리 한 토막 16

2008-10-30     관리자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모든 유위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 환상, 거품, 그림자 같으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이슬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응당 이와 같이 관하여라.

『금강경』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게송입니다. 이 게송에서 우선 다른 말은 평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주어인 ‘유위법’은 생소합니다. 따라서 유위법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왜 ‘꿈, 환상, 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인지 이해가 됩니다.
유위법(有爲法)을 글자 그대로 ‘함이 있는 법’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함이 있는 법’이라는 번역 역시 와 닿지 않습니다. 보통 유위법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존재’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이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용어와 함께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조작이 진행된 것은 유위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위인 자연이라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또는 ‘운동’, ‘변화’, ‘무상’의 의미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모든 것’을 유위법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풀이는 다음과 같은 경전 말씀에 근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은 이른바 유위와 무위이다.
유위라는 것은 혹은 생겨나고 혹은 머물고 혹은 다르게 되고 혹은 사라지는 것이다.
무위라는 것은 생겨나지 않고 머물지 않고 다르게 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如此二法 謂有爲無爲 有爲者 若生若住若異若滅 無爲者不生不住不異不滅) 
                                                       - 『잡아함경』 제12권(293경)

정리해보자면, ‘유위법’을 ‘인간이 조작하여 만든 것’이나 ‘생주이멸하며 변화하는 세상 모든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하면 『잡아함경』에서 정의한 ‘무위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자못 당혹스럽습니다.
첫 번째, ‘인간이 조작하여 만든 것’을 유위법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조작하지 않은 ‘자연’은 무위법으로서 ‘생겨나지 않고 머물지 않고 다르게 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어야 하는데, 보통 ‘인간과 자연’이라고 할 때 그 자연은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생주이멸하며 변화하는 세상 모든 것’을 유위법으로 이해한다면, 보통 ‘제행무상’을 세상 어느 것도 항상한 것은 없다고 이해하는데, ‘생겨나지 않고 머물지 않는…’ 무위법은 무엇이며, 어떻게 있을 수 있습니까? [‘제행무상’에 대한 설명은 월간 「불광」(2008년 1월호)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저의 글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는 연기법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거듭 거듭 강조합니다. 저는 연기법을 바깥 대상과 바깥 대상의 관계성보다는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내 마음속에 왜 세상이 그렇게 드러나는가 하는 점에서 마음 작용과 마음 작용의 관계성에 중심을 둡니다.
먼저 글에서 언급한 예를 다시 듭니다. 나는 수건으로 사용했는데, 친구는 걸레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찻잔 받침대라고 보았는데, 보살은 과일 담는 접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효 스님은 ‘달콤한 물’로 마셨는데, 다음날 보니 해골에 담긴 ‘구역질 나는 물’이었습니다.
이렇듯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바로 그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으로 조작하여 이해한 모습일 뿐입니다. 만약 그것이 바로 그것이라면, 수건은 항상 수건이어야 하고, 찻잔받침대는 항상 찻잔받침대이어야 하고, 달콤한 물은 항상 달콤한 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의 마음 작용에 의해 ‘수건’으로, ‘걸레’로, ‘찻잔받침대’로, ‘접시’로, ‘달콤한 물’로, ‘구역질 나는 물’로, 그렇게 드러납니다.
즉, 지금 나에게 보이는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분별 작용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입니다. 이때 ‘마음의 분별 작용으로 드러난 현상’을 유위법이라고 합니다. 분별 작용으로 생겨나고 사라질 유위법이기에 ‘꿈과 같고 환상과 같아서’ 그것이라고 할 자성이 없습니다. 단지 마음 작용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여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앞에 있는 것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분별 작용에 의해 또 다시 나에게 드러나니 말입니다.
한편, 분별 망상이 끊어져 명명백백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현상을 무위법이라고 합니다. 『잡아함경』 제31권(890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무위법을 설명합니다.

무엇이 무위법인가?
이른바 탐욕을 영원히 다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영원히 다하여
일체번뇌를 영원히 다한 것을 무위법이라고 하느니라.
(云何無爲法 謂貪欲永盡 瞋 愚癡永盡 一切煩惱永盡 是無爲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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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경찬 _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이다. 저서로 『불교입문』(공동 집필),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