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관찰하라

지상강연

2007-02-13     관리자


정신과 치료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약을 써서 하는 치료가 있고, 또 상담치료 또는 정신치료라고 해서 대화를 통해서 그 사람의 문제를 알고 또 관계 속에서 치료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물론 정신과 의사인 만큼 기본적으로 약물치료를 하면서 정신치료를 오랫 동안 해 왔습니다. 아울러 불교의 지혜나 수행을 어떻게 정신치료에 활용하나 하는 문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습니다.
그 동안 고익진 교수님을 만나서 불교 공부를 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것이 많았지만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의 본질, 정신의 본질, 생각의 본질을 제 스스로 경험하면서 치료에 중요하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로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체험과 그 체험이 어떻게 우리의 정신적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과의 만남
제가 미얀마에 가서 수행하게 된 것은 불광출판사에서 나온 『바로 이번 생에』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미얀마의 우 빤디따 스님이 미국의 위빠사나 수행단체인 ‘I.M.S(Insight Meditation Society)’에서 3개월간 법문하신 내용을 잘 정리한 것인데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위빠사나를 좀우습게 알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관찰해서 어떻게 이 오묘한 불법을 깨닫겠나 하는 편견이 있었지요. 그런데 책을 자세히 읽어보니 제가 생각한 위빠사나가 아니에요. 그리고 부처님 말씀과 또 남방의 청정도론을 비롯한 주석서에 철저히 입각해서 제대로 하는 수행법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교에서 삼법인(三法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내 몸과 마음의 관찰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 저한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어려움에 봉착했었습니다. 1985년도에 고익진 교수님을 만나 3년 정도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인연이 좀 짧았습니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열심히 했죠.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자꾸 잘 안 되는 겁니다.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에 이 책을 보게 된 것입니다.
미얀마에 가서 수행한 분들에게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미얀마의 우 자나카 스님께 가라고 했습니다. 우 자나카 스님이 외국인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이고, 영어도 잘 하시고, 저와도 맞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관련 책 몇 권을 더 읽고 대략 ‘위빠사나 수행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2003년 7월에 우 자나카 스님이 계시는 참매 센터에 갔습니다. 갈 때 마음가짐은 그 동안 불교 공부를 조금 했고,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도 있지만 수행센터에 가서는 그 분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미얀마 수행센터의 하루
미얀마의 수행센터에는 대개 3개월 정도는 수행을 해야 출가를 시켜줍니다. 그런데 한 달이라고 하니 좀 난색을 표하는데 제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가까스로 단기 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비구계를 받고 수행을 시작하는데 두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한 가지는 시키는 대로 하겠다. 두 번째는 무엇이든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수행센터에서는 수행지도를 위해서 매일 인터뷰를 합니다. 일종의 수행점검이죠. 보통의 경우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하는데 저는 시간도 짧고 해서 매일 인터뷰를 받았습니다.
수행센터에서의 하루 일과를 잠시 소개하자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3시 30분에 수행홀로 내려가서 수행을 하고 5시 30분에 아침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수행을 계속하고 10시 30분에 점심을 먹습니다. 12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저녁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취침을 합니다.
수행홀에서 보행명상과 좌선을 번갈아가며 하면서 자신을 관찰하고, 수행홀에서 나와서는 밥을 먹으러 간다든지 샤워를 한다든지 빨래를 한다든지 또 휴식을 할 때에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그대로 관찰합니다. 그러다보면 하루종일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수행의 연속이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잘 때까지 계속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루 종일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수행점검을 받는데 자신이 수행한 것을 자세히 보고합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보행명상을 한 시간 했는데 한 시간 중 20분은 오른발 왼발을 천천히 관찰하면서 했는데 그때 무엇을 느꼈고, 생각이 일어날 때 잠깐 멈추어 서서 ‘생각이 일어났구나’하니 그 생각이 사라져서 다시 왼발 오른발을 천천히 관찰하면서 걸었다. 그리고 나머지 20분은 3단계 걷기를 했다….
우리가 걸을 때 그냥 걷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발을 들고, 가고, 놓고 이렇게 3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3단계 걷기를 천천히 관찰하면서 걸었고 그때 무엇을 느꼈다. 또 그때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 어떻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20분은 나의 의도를 챙기는 3단계 걷기인데 예를 들면 우리가 발을 들고 가고 내려놓을 때 그냥 들고, 가고, 내려놓아지지 않습니다. ‘내가 들어야지’하는 의도에 의해서, 혹은 무슨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도를 챙기면서 걸었는데 그때 무엇을 느꼈다는 식으로 보고를 합니다. 경행을 한 후에는 항상 좌선을 하였는데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만큼 했습니다. 좌선을 할 때는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합니다. 배가 나오면 ‘배가 나옴’하고 들어가면 ‘배가 들어감’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름을 붙이면 번거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실제 이름을 붙여보면 안정된 보호막처럼 거기만 딱 집중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이름을 붙여서 도움을 받지만 나중에 이름붙이는 것이 번거로워지면 이름을 떼면 됩니다. 그리고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고요히 관찰합니다. 이렇게 배를 관찰하는데 무슨 생각이 나면 ‘생각이 났다’하면 생각이 사라집니다. 이렇게 40~50분을 하니 발이 저려서 그 발 저림을 관찰하니! 발 저림이 없어지더라… 이런 식으로 보고를 합니다.
세 번째는 일상행위 관찰이라고 해서 예를 들면 밥 먹으면서 천천히 밥을 먹는 행위를 관찰합니다. 이처럼 샤워를 할 때, 용변을 볼 때 어떻게 챙기면서 했다…이렇게 보고를 하면 그에 따라 수행지도를 해주십니다.
좌선은 미세한 정신작용을 관찰하는 데 상당히 좋고, 삼매 경험에도 굉장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행명상은 몸과 마음의 관계를 잘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즉 몸이 어떤 속성을 가졌고, 또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의도를 알게 합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도 없이는 절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의도, 즉 우리의 마음이 몸을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
그리고 그것이 조금 더 확대되면 인과의 법칙을 깨닫게 됩니다. 이 보행명상을 통해서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절대로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는 것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을 만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떤 것이 있더라도 그 속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행명상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일상행위 관찰은 좌선과 보행명상에 있었던 일이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반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여러 가지 진리를 찾아가려면 하루에 30분, 혹은 1시간 가지고는 힘듭니다. 하루 종일 자기를 관찰해야지 그냥 잠깐만으로는 곤란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몸과 마음의 관찰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띠(sati)입니다. 빨리어로 하면 사띠이고 한문으로 하면 염(念)이고, 우리말로 하면 ‘마음챙김’입니다. 염이라는 말을 잘 보시면 현재 금(今)에 마음심(心)입니다. 마음이 현재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삿띠(sati)는 스므르띠(smrti)에서 온 것인데 ‘기억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항상 ‘마음챙김’을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모든 현상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현상이 없다가 일어났다가 그것이 사라지는 과정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찰하다 보면 우리에게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고, 또 좋아서 계속 유지하고 싶은 것도 결국은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모든 법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데 초점을 맞춘 수행법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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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006년 11월 26일 불광법회에서 강의한 전현수 원장님의 ‘현대정신건강과 위빠사나 수행 이야기’를 청정행 박순희 님이 녹취, 편집부에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