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수행과 뇌과학, 그리고 심리학과 정신치료

불교와 과학 / 뇌과학

2008-10-30     관리자

이번 호에서는 뇌과학과 불교의 만남을 심리학과 정신치료 영역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서양 심리학과 불교의 만남은 스리랑카의 다르마파라(Dharmapala) 스님이, 심리학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이자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버드대학의 윌리엄 제임스(1842~1910)의 강의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다르마파라가 승려임을 알아본 윌리엄 제임스가 불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라고 청했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윌리엄 제임스는 불교가 바로 지금부터 앞으로 25년간 우리 모두가 공부하게 될 심리학이라고 단언했다(Fields, 1992) .
그러나 윌리엄 제임스의 예언과는 달리 불교에 대한 심리학의 관심과 체계적 연구는 1950년 이전까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행동주의 심리학(1913)이 출현하면서, 창시자인 존 와슨(John Watson)이 객관적으로 측정가능한 인간행동만을 심리학의 연구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내면을 성찰하는 명상적 방법에 의해서 연구되었던 인간의 마음은 심리학의 연구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자연히 마음을 중심으로 한 불교가 설 자리는 없었다.

심리학, 정신치료의 발달과 불교

한편 윌리엄 제임스와는 달리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도명상수행이 자아중심적인 유아기로의 병리적 퇴행을 초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반면에 칼 융(Carl Jung)은 1927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된 『티벳 사자의 서(Bardo Th?dol, Tibetan Book of the Dead)』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읽을 정도로 크게 감명받고 나서, 티벳불교와 선불교에 관한 수필도 쓰고 불교와 도교 교재의 번역서에 서문도 썼다. 또한 당시 알려진 선사들과의 논의에도 여러 차례 참석할 정도로 동양적 직관과 정신성을 존중했다. 그러면서도 융은 명상수행법이 서양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위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등 역시 부정적 견해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대에 병리적 측면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정신분석과 인간을 너무 기계적으로 취급하는 행동주의 심리학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인본주의 심리학(Humanist psychology)은 불교를 중심으로 한 동양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일어난 초자아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은 불교와 아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교과과정에서 명상수행과 실제 체험을 강조한다.
한편 심리치료 영역에서도 1950년 중반에 시작된 알버트 엘리스(Albert Ellis)의 ‘합리적 정서적 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 REBT)’, 1979년 존 카밧진에 의해서 개발된 ‘자각을 바탕으로 하는 스트레스 감소(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 ‘자각을 바탕으로 한 인지치료(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MBCT)’, 최근에 등장한 ‘자각과 수용(Mindfulness and Acceptance)’ 또는 ‘수용과 의무이행 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 등은 모두 불교와 서양 심리치료의 만남에서 비롯된 성과들이다.
1997년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에 의해서 시작된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은 그동안 정신병리나 질병에 초점을 두어온 심리치료의 관심을 정신건강과 웰빙에로의 전향을 주장하는데, 이 또한 불교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심리치료가 도입한 자각(Mindfulness) 훈련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 MAAS(Mindful Attention Awareness Scale, 2003), KIMS(Kentucky Inventory of Mindfulness Skill, 2004), FMI(Freiburg Mindfulness Inventory, 2006)와 같은 자기보고 측정법을 고안했다.

불교수행과 뇌과학의 역할

그럼 이제 이와 같이 서양 심리학과 정신치료가 불교와 만나면서 변화 발전해온 과정들 속에서 뇌과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자.
첫째, 앞에서 보았듯이 행동주의 심리학이 인간의 마음, 정서 등을 심리학의 연구대상에서 제외했는데 그 이유가 명상과 같은 내성법은 주관적 관찰이기 때문에 개인마다 달라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뇌과학 분야의 연구들이 명상수행 동안 뇌파를 측정하거나 뇌사진을 찍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명상수행의 효과를 증명함으로써 마음, 정서에 대한 심리학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뇌과학은 불교수행법이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을 배양하는 효과적 방법이라는 사실을 뇌신경 작용과 관련해서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병리 현상에 초점을 두어왔던 심리치료가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에로 관심을 전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뇌과학은 여러 가지 중독증이나 도박증 등 마음이 뭔가를 갈망하고 집착할 때 뇌 부위의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의 활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갈망과 집착을 내려놓기 위해 고안된 여러 가지 불교수행법들은 당연히 중독증 치료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증명하느냐다. 바로 뇌과학이 불교수행자와 일반인의 뇌 활동을 비교하거나, 명상수행의 깊이에 따라서 변화하는 뇌신경 활동을 MRI 등을 통해서 측정함으로써 과학적 입증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또 자각훈련이 심리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자각능력과 관계된 뇌 영역 부위의 신경활동에 대한 MRI 영상을 통해서 입증했다.
이들 가운데는 MAAS가 자각과 관련된 뇌 영역의 신경활동을 예언한다는 연구논문들도 있다(Creswell et al, 2006). 이들 연구는 뇌의 우측 아미그달라(Amygdala) 부위와 전두엽 피질 영역이 우리 인간의 감정, 정서와 관련되어 있는데 자각수행력이 높은 사람들, 즉 MAAS 점수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전두엽 피질과 아미그달라의 작용을 조절하는 능력(전두엽 피질의 작용은 증가시키고 아미그달라의 반응은 억제하는 방식으로)이 훨씬 더 우수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불교수행이 서양에 미친 영향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참고적으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서양 심리학의 이론, 그리고 정신치료 기법의 발달사에서 보면, 불교가 뇌과학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불교는 심리학과 정신치료에 다양한 형태로 접목되고 통합되어 트랜스퍼스널 심리학과 같은 심리학의 새 패러다임을 열어왔고, 다양한 치료기법을 개발해 왔으며, 그러한 성장을 배경으로 불교와 뇌과학의 만남 또한 가능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명상수행과 심리치료를 주제로 한 논문이나 연구서적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 생각이지만 불교와 뇌과학의 만남을 시작으로 심리학과 정신치료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예를 들어서 1990년도 이전까지 자각훈련과 관련된 연구가 80편이 채 안 된 것에 비해서 1990년 이후부터 2006년 사이에는 무려 600여 편의 연구가 나왔다(Brown, Ryan et al, 2007). 그리고 불교와 뇌과학의 만남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불교의 명상수행이 도움이 된다는 주장의 논문들도 있었지만 특정의 증상이나 병리에는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는 논문들도 눈에 띄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는 명상수행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나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논문이나 저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처럼 서양 심리학과 정신치료의 발달사에서 보면, 불교가 완전히 서양의 심리학과 정신치료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심리학과 정신치료에 종사하는 다수는 불교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불교의 명상수행이 해를 거듭할수록 서양의 과학뿐만이 아니라 예술,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유신론과 무신론 등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기독교적 이분법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서서히,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일체제법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한 몸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상생의 사상과 가치를 구현하는 데 갈수록 그 역할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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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 스님 _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운문사 명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현재 미국 보스톤 서운사에 머물며, 불교수행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최근 ITP(Institute of Transpersonal Psychology)로부터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문화와 불교를 통한 정신적·신체적 웰빙 사상과 문화예술을 영어권에 알리기 위해 ‘한국문화와 선(Korean Culture and Zen)’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서 현재 자료의 발굴, 수집과 영역 준비작업 중이다. 저서에 『현대심리학으로 풀어본 유식삼십송』, 『현대심리학으로 풀어본 대승기신론』, 『마음의 치료』, 『한영불교사전』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