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울 때 자유로워진다

자기계발과 선(禪) 9 / 휴(休) 테크

2008-10-30     관리자

심신이 균형잡힌 삶은 휴식과 재충전으로 가능


바닷가나 계곡, 산사에서 지친 심신에 활력을 준 여름 휴가철이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굳이 휴가기간이 아니더라도 요즘 직장인들은 ‘주 5일 근무제’의 시행으로 인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황금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지내야 정말 잘 보내는 것일까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충분한 휴식은 보다 활기찬 직장생활을 위한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잘 쉬는 것도 하나의 자기계발의 요소로 자리잡아서 『휴(休)테크 성공학』과 같은 전문서적들도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라고 행복해지기 위해 일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너무 열심히 일하느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기만 한다. 그러다보니 불현듯 삶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우울증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동시에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 대한 열망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몸과 마음이 균형잡힌 여유로운 삶은 충분한 휴식과 정신의 재충전을 통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게으르지 않고 느리게 산다는 것』과 같은 책들은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다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을 놓칠 수 있다고 말하며, 느리게 살면서 순간을 즐기는 여유와 영혼을 관리할 시간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느리게 산다’는 것은 모든 일을 천천히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삶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게으르게 하지 않되 ‘단순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정신의 휴식, 자유와 창조성의 원천

실제로 “영혼까지도 휴식이 필요하기에, 잠을 자는 것이다.”라고 하는 『탈무드』를 따르는 유대인들은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휴테크’를 통해 예술, 과학, 경제 등 각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내고 있다.
알다시피, 유대인의 노동은 안식일을 정확히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주일을 일했으면 안식일에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환자도 고쳐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기고 안식일에 환자를 고친 예수가 유대인에게 배척당한 사건은 유명하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6년을 일했으면 7년째는 안식년으로 쉬어야 한다. 경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경작하지 않은 땅에서 자연스럽게 난 과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안식년만 있었던 게 아니다. 7년씩 7번을 지나고 50년째 되는 해는 ‘희년(year of jubilee)’이라 했다. 희년에는 인간의 모든 관습도 쉬어야 했다. 죄인들은 풀어줘야 했고, 모든 계약관계는 무효가 되어 새로 시작돼야 했다.
유대인의 노동관이 이처럼 휴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다른 민족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창의적 민족이 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쉼’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체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또한 육체적, 정신적인 과도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다 보니, 직장이란 생활의 터전에서 잠시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참선의 효능은 심신의 안정과 여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하나의 쉼터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참선을 하게 되면 신경기능이 조절되고 정상화되어서 심신이 안정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마음이 차분해지고 느긋해지며 원만해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꾸준히 참선을 하다 보면 의지가 강해지고, 정신이 안정되고 집중력이 생기게 되어 일상생활 속에서 일할 때도 능률이 오르게 된다. 참선을 하면서 부수적으로 단전호흡을 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왕성해져서 건강이 증진되고 면역력이 강화되며, 창조력과 지적능력이 계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러한 참선의 효능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참선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미망 속에 헤매는 ‘거짓 나’로부터 벗어나 본래부터 완전한 ‘참 나’를 깨달아 진리와 하나가 됨으로써,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 일체 중생을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참된 휴식은 망상과 분별심을 쉬는(休)것

“여유로울 때 자유로워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유로운 마음에 대 자유인이 되는 선(禪)의 도리가 담겨져 있다. 본래 선은 ‘망상과 분별심을 쉬는[休]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가르침이 이것이다.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 조사와 육조혜능 스님의 가르침 중에 “모든 인연을 한꺼번에 쉬어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屛息諸緣 一念不生].”고 한 가르침이 이것이다. 제 3조인 승찬 스님은 『신심명』 첫 구절에서 “도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시비분별을 싫어할 뿐이다[至道無難 唯嫌揀擇].”고 했으며, 근대 고승인 허운(1840~1959) 대사는 ‘쉼이 곧 깨달음[歇卽菩提]’이라고까지 단언했으니, 쉼이 곧 깨달음의 처음과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비우고 쉬는 일이 왜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현대의 고승인 경봉(1892~1982) 스님이 나무토막에 붓으로 글씨를 써서 시자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것을 변소에 갖다 걸어라.”
경봉 스님이 내민 팻말에는 각각 ‘휴급소(休急所: 바쁜 마음 쉬는 곳)’와 ‘해우소(解憂所: 근심 내려 놓는 곳)’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스님은 휴급소는 소변 보는 곳에, 해우소는 큰일 보는 데 내걸라고 했다. 근심 걱정 버리고 가라는 이 해우소라는 말을 절집에 등장시킨 사람이 바로 경봉 스님이었던 것이다. 스님은 “일상생활이 그대로 불법(佛法)이고 도(道)다. 밥하고 옷 만들고 농사 짓고 장사하는 데 도가 있다. 하루 한 시간은 자기 ‘주인공’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선사들은 선 공부를 제대로 하면 휴식과 일이 둘 아니게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마음을 쉬는 것은 결국 무심(無心)을 체득하여 평상심을 생활 속에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일할 수 있는 여유와 한가함을 선사들은 다양한 말과 행동을 통해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직장이나 가정, 산사에서는 물론 ‘행주좌와 어묵동정’ 시에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그 놈[自性]’을 확인해 가는 참선의 여정은 참된 휴테크의 원조라고 해도 지나친 견강부회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