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사랑, 배신, 그리고…

자비의 손길

2008-09-09     관리자

“예전 고생했던 세월을 돌아보면, 끝이 안 보이는 것 같네요.”
넋두리처럼 뱉어내는 송무진(62세) 씨의 인생 역정을 들어보면,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이 겹쳐져 더욱 애처로움이 밀려든다.
전남 담양의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채 두 돌이 되기도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린 시절은 배고팠던 기억밖에 없다. 진저리가 쳐지도록 늘 배가 고팠다. 가난이 너무 싫어 열다섯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객지로 떠돌기 시작했다.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가난은 풀리지 않는 족쇄와 같았다.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기술을 배우기도 했고, 장사꾼들을 따라 전국을 돌며 잡동사니를 팔러 다니기도 했다. 배를 타고 고기를 잡다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여러 번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힘겹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봉제공장에 화장품을 팔러갔다가, 첫눈에 반하게 된 여공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게 됐다. 곧 첫딸까지 얻게 되었고, 한 가정을 이룬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장사가 영 시원치 않았다. 다리미, 라디오 등 가전제품에도 손을 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둘째까지 임신하게 되자, 먹고 살 길이 아득했다. 일거리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차에 좋은 기회가 왔다. 당시는 70년대 후반 중동 건설 붐이 일던 때였다. 송무진 씨는 어려서부터 노동판에서 잔뼈가 굵은 터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중동행을 택했다. 3차례에 걸쳐 출국하여 무려 5년 동안, 4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의 뜨거운 태양에 맞서 일을 했다. 밥보다 모래를 더 많이 씹으며 새벽부터 자정까지, 한 달에 열흘은 철야를 했다.
그 사이 셋째 딸도 태어났고, 당시 집 두 채 값 이상은 족히 벌었다. 그러나 부푼 꿈을 안고 돌아온 집에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송무진 씨가 자세한 얘기는 꺼려했지만, 아내가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실로 인해 모든 돈을 탕진해버린 것이다.
“제가 박복한 탓이겠지요. 이후로 아내와 이혼을 하고, 어린 세 딸을 키우며 죽기살기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번번이 제 뜻과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더라구요. 이 못난 애비의 삶이 자식들에게도 유전되는지, 홀아버지 밑에서 아이들이 안정을 못 찾고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고된 노동 일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밤 8시가 되었다. 저녁을 먹으면 곯아떨어지기 일쑤라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었다. 큰딸이 가출을 하고, 작은딸이 자퇴를 하기도 했다. 간신히 아이들을 설득하고 달래며 가정의 울타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3년 전, 송무진 씨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다. 동료들과 간만에 술 한 잔 했는데, 그만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에 걸려 면허가 취소되었다. 그렇게 1년간 자숙하며 운전을 삼갔다. 그러던 중 취소 기간이 끝나는 3일을 앞두고 멀리 일을 나가게 되었다. 고민 끝에 새벽에 차를 몰고 나가다, 좌회전 하는 차를 보지 못하고 충돌사고를 내고 말았다. 무면허 상태라 보험처리도 안 되는데, 더욱 큰 일은 상대 차량 운전자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 일로 8개월간 교도소에 있으면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결혼자금으로 마련해둔 돈(5천만원)과 사놓고 이사를 앞두고 있던 아파트(1억 2천만원) 등 전 재산을 모두 합의금으로 드렸습니다.”
지난 해 9월 출소한 송무진 씨는 이미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급기야 지난 1월 급성 괴사성 췌장염으로 쓰러져 3번의 수술을 받았다. 췌장을 드러내고 위와 소장을 절제하였다. 100일간 금식을 하며 73kg이던 몸무게도 47kg으로 빠졌다.
“평생 병원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었는데…. 감기가 웬만해도 현장에 나가 일해버리면, 감기가 스스로 떨어져나갔지요. 그나저나 딸들 얼굴 보기도 미안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통 자신이 없습니다.”
송무진 씨는 현재 대장을 바깥으로 빼놓은 채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동안 청구된 병원비는 2,000만원에 이릅니다. 지인에게 500만원을 빌리고 딸들이 조금씩 모아둔 돈을 내놓아, 남은 금액은 800만원입니다. 큰딸(31세)은 얼마 전까지 가게를 운영했으나 실패하여, 현재 일자리를 구하며 아버지의 병간호를 맡아하고 있습니다. 둘째딸(29세)은 아버지의 사고와 발병으로 인해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헤어지는 아픔까지 겪었고, 피부미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나 일이 없어 힘든 상황입니다. 막내딸(26세)은 이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으로 낮에는 경리직으로 일하며(월급 80만원), 밤에는 야간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송무진 씨는 퇴원하면 아파트 경비직이라도 해서 딸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하지만, 병이 나을 기약이 없습니다. 비록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며 세 딸을 키워온 송무진 씨에게 불자 여러분의 작은 관심과 정성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