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의 믿음

살아있는 명법문

2008-07-29     관리자


안녕하세요. 어제는 서울 도심에서 제등행렬이 있었는데, 우리 절에서도 몇 분 다녀오셨지요. ‘부처님 오신 날’봉축을 앞두고 오늘부터 7일 정진기도에 들어갑니다.
어제까지 절 전체를 대청소하였습니다. 사실 1년에 한두 번은 소제 법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모두 깨끗이 청소를 하는 것이 성인의 탄생을 맞이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오늘부터 정진기도를 하는 것도, 부처님 오신 뜻을 기리고 우리도 부처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건이 되는 불자님들은 새벽기도에 동참하시기를 권합니다. 봉축 기간 동안 내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하십시다.

항상 믿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기도는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 오늘 법문은 이것을 주제로 하겠습니다. 기도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럼 무엇을 믿음이라 할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일반적으로 말하는(특히 신을 섬기는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그 안에 빠져 모든 것을 거들떠보지 않는 맹목적 믿음을 불교는 경계합니다.

우선 ‘믿음’에 관한 『화엄경』의 말씀을 함께 들어봅시다. (독송)

믿음은 도의 근본, 공덕의 어머니로서
모든 착한 법(善法)을 길러내며
모든 의심의 그물 끊고 애욕의 물결 벗어나게 하여
위없는 열반의 도를 열어 보이네

믿음은 때가 없애고 마음을 견고케 하며
교만을 없애어 공경의 근본 되며
보배 창고의 제일가는 법이며
청정한 손이 되어 모든 행을 받네

믿음은 보시 잘해 인색치 않게 하고
믿음은 환희롭게 불법에 들게 하며
믿음은 지혜 공덕 증장케 하며
믿음은 여래 지위에 이르게 하네 
  -『화엄경』 「현수보살품」 중에서

여기에서 선법(善法)이라는 것은 빨리(pali)어로 ‘쿠살라 담마(Kusala Dhamma)’라고 합니다. ‘쿠살라’는 형용사로서 ‘좋고 예지 있고 균형 잡힌’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스킬풀(skillful)’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하며, 믿음의 씨앗이 선법입니다. ‘착함’이 그냥 단순히 착한 것에만 그치면 안 되고, 지혜와 예지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하듯이 믿음은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는 행동으로, 증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기서 이해란 맹목적 믿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이라도 무조건 경에 쓰여 있으니 믿으라는 게 아니라, 다 스스로 이해해서 합리적으로 납득이 되니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의 완성 - 논리적·합리적 이해와 실천

최근 저는 『위 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유마와 수자타의 대화’ 시리즈 제1권)라는 책에 추천사를 써주었습니다. 이 책을 쓰신 분은 원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하나님을 믿다가 어느날 『대승기신론소』를 읽고 종교적 회심을 하여 불자가 된 분입니다. 원효 스님의 『대승기신론소』는 어려운 내용인데, 그 책을 앉은 자리에서 세 번 읽었다고 합니다.
이 위 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라는 책 내용에서 감동적이었던 것은, ‘믿음’에 대한 진지한 탐구입니다. 이 분은 진리의 관점에서 사색해보아 기독교 교리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되어,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뒤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 많은 반향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 불교 책을 보면서 기독교 교리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여 글을 올렸고, 수백 명이 그 분의 글을 읽고 공감하였습니다.
이 분이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면서 부모님께 남긴 글도 있습니다. 행여 자신이 개종했기 때문에 일찍 죽는다고 생각하지 마시라고 합니다. 자신은 자신의 업으로 인해 병에 걸린 것이며, 마음 편히 달게 죽음을 맞이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분이 타계한 후 인터넷 동호인들이 유고를 모아 『유마와 수자타』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그 후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도피안사에서 새로운 제목으로 책을 다시 내게 되어 제가 추천사를 쓴 것입니다. 종교를 진지하게 믿으려는 사람에게 청량함을 안겨줄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 내용을 보면, 앞으로 과학이 발달할수록 살아남을 수 있는 종교가 불교라고 합니다. 100년 후 인류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는데, 지금의 속도로 과학 발달이 진행되면 100년 후 인간이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게 되며, 1,000년 후에는 은하계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믿음 천국, 불신 지옥’ 식의 단순 논리를 갖고는 인지(認知)가 발달한 21세기 인류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책 『The God Delusion(신이라는 망상)』을 쓴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이기도 함)가 전에 제가 영국에 있을 때 패널 토론에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이 토론에서 ‘앞으로 종교와 과학 어느 쪽이 세계를 이끌어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던져졌는데, 처음에 ‘종교’라 답했던 패널들의 다수가 나중에 ‘과학’ 쪽으로 답을 바꾼 것이 기억납니다.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에 대한 반박으로 최근 『스스로 있는 신』이라는 책이 나왔다고 하지요. 영국의 목사가 쓴 책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끝이 없는 논쟁입니다.
불교에서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불교의 믿음은 논리적, 합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입니다. 이해만 갖고는 안 되며, 행동, 실천을 통해 스스로 증득되었을 때 믿음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때[垢]가 없을 때 믿음이 성숙됩니다. 때를 제거하는 데에 믿음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 때 관욕식(灌浴式)을 하지요. 아기부처님을 목욕시켜드리는 의식입니다. 이때 부처님 법신을 목욕시켜드린다는 마음으로, 우리의 신(身)·구(口)·의(意)를 깨끗이 맑히는 것입니다. 이번 정진 기도 기간 내내 절 입구에 들어서면 아기부처님께 관욕을 시켜드리게 해놓았습니다. 물을 떠서 세 번에 나누어 부어드리며 마음속으로 탐·진·치 삼독을 씻어내는 발원을 하십시오.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기도를 하면서 관욕의례를 하는 것입니다.
위의 경전 말씀에 나오듯이, 믿음이 충실한 사람은 잘 베풉니다. 그런데 불교는 타종교에 비하여 실천에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에서 어두운 곳을 돕는 좋은 일들은 거의가 다 기독교인들이 도맡아 하는 듯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불자들도 분발해서 믿음으로 충만한 기도를 다짐하면서, 초파일 봉축 기간을 그러한 기도로 채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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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산 스님 _ 1972년 백양사에서 출가한 이래 봉암사와 백양사 운문선원 등에서 간화선 수행을 하였으며, 인도와 미얀마에서 초기불교 선수행을 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선학과를 졸업한 후,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 문헌을 연구하여 인도 뿌나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동양학부에서 ‘남방불교의 찰나설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종단 내외의 각종 학술활동에 주력하고 있고, 백운암 상도선원(서울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학교 인근)의 선원장으로서 도심사찰에 적합한 21세기형 사찰운영시스템과 신행생활의 바른 정립을 위하여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