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 전변설과 일체유심조

기초 튼튼, 불교교리 한 토막 12

2008-07-14     관리자

부처님 당시 인도에 펼쳐있는 사상을 크게 전변설(轉變說)과 적취설(積聚說)로 나눈다고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전변설은 가령 오늘날 하느님처럼 브라만이라는 절대자가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고, 적취설은 지·수·화·풍·영혼 등 여러 요소가 모여 세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 두 견해와 달리 연기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제, 삼법인, 오온 등은 연기법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가르침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법유식(萬法唯識)’ 역시 마찬가집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대해, 사람들은 보통 ‘마음먹기 나름이다’라고 이해합니다. 여기서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는 말은 모호한 뜻을 지닙니다. ‘마음먹은 대로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뜻인지, ‘마음먹은 대로 상황이 변화한다’는 뜻인지, ‘상황이 어떻든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된다’는 뜻인지, 사실 그때그때 적용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할 때는 이 모든 것을 포함시켜 이야기합니다. 그런 가운데 마음을 다스리면, 깨달음을 얻게 되면,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새로 만들어지는, 열리는,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신비주의적 생각도 마음 한쪽에 간직합니다.
‘일체유심조’, ‘만법유식’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 ‘모든 법은 오직 식(마음)이다’라고 풀이됩니다. 만약 ‘일체’나 ‘만법’을 ‘세상의 모든 것’, ‘삼라만상’, ‘모든 존재’라고 풀이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삼라만상, 모든 존재)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가 됩니다. 이때 ‘세상의 모든 것’, ‘삼라만상’, ‘모든 존재’는 무엇을 말하는가? 실제 산이나 강이나 바다 등을 말하는 것이라면, 마음이 실제 강이나 바다를 만든다는 말이 됩니다. 이 경우, 신(神)의 자리에 마음이 들어갔을 뿐 ‘신이 세상을 만드는 것(전변설)’과 같은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신이 만들면 안 되고 마음이 만들면 되는 것인가?
분명히 부처님께서는 전변설과 달리 연기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전변설과 일체유심조는 분명히 다른 내용입니다. 그런데, 앞과 같이 이해하면 어느덧 같은 내용이 됩니다. 용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같은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다른 내용일 수 있고, 다른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같은 내용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一切]’, ‘만법(萬法)’, ‘만든다’를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연기법이 기존의 사상과 차별이 있기에 연기법을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거듭 언급하지만, 필자는 연기법을 세상만물의 상관관계나, 사물과 사물의 상관관계로 보기보다는 마음 작용간의 상관관계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세상을 내가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세상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든(구성한) 세상을 내 마음이 보는 것입니다. 즉, 내가 대상(세상)을 보는 순간 먼저 알고 있었던 그 대상(세상)에 대한 내용이 함께 일어나 그 대상(세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세상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세상을 덧칠하여 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 밖에서 개가 짖는데, 우리는 개가 ‘멍멍’ 짖는다고 하지만, 미국인은 개가 ‘와우와우’ 짖는다고 합니다. 같은 개 짖는 소리인데, 우리는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실제 개가 어떻게 짖는지는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모르기보다는 그렇게 짖는다고 의심하지 않고 듣습니다. 우리는 그 개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개 짖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전도몽상(顚倒夢想)].
다른 예로서, 같은 산(山)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옵니다. 가령 돌산의 경우, 숯을 파는 사람과 석재를 파는 사람에게 다르게 보입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일화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즉, 내 마음이 내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이 만든 세상을 내 마음이 보는 것을 설명한 것이 연기법입니다. 따라서 (12연기에 따르면) 우리가 세상을 봄에는 무명(어리석음)과 업(이전 마음 작용으로 습득된 정보나 선입견 등)과 그리고 여러 가지 마음 작용이 서로 연관되어 일어나 세상을 세상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곡되게 본다는 것입니다.
이때 마음 작용과 그 드러난 것이 법(法)입니다. 즉, 법(法)은 막연한 ‘우주 만물’, ‘삼라만상’, ‘일체 존재’라기보다는 마음 작용으로 드러난, 내 마음 앞에 펼쳐진, 나에게 파악된 인식현상입니다. ‘일체유심조’, ‘만법유식’도 마음이 이 세상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작용으로 인해 인식된 현상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원효 스님이 처한 상황의 마음 작용에 따라 편안한 잠자리(또는 맛있는 물)로 여겨졌던 것이 무덤(또는 해골물)으로 보였던 것이지, 원효 스님이 실제 잠자리(토막) 그 자체를 만든 것도 아니고 무덤 그 자체를 만든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경찬 _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이다. 저서로 『불교입문』(공동 집필),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