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강, 3천 리 길을 걸었습니다

생명평화 순례 103일 여정을 회향하며

2008-07-14     관리자

민족의 젖줄인 생명의 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한강 하구인 김포 애기봉전망대에서부터 출발해 남한강, 달천(달래강)을 거슬러 오르고 백두대간인 문경새재를 넘어 영강과 낙동강을 따라가며 1,500리 봄 마중을 나갔습니다. 이어 영산강과 금강 등 4대 강을 마저 걷고 다시 남한강과 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 마침내 103일(2월 12일~5월 24일) 동안 장장 3천리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첫날 밤부터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 온몸이 꽁꽁 얼고 말았습니다. 천막을 치고 한 마리 애벌레처럼 침낭 속으로 몸을 밀어 넣어보지만 혹한의 강바람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남몰래 소리 내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려 해도 이빨이 딱딱 부딪쳐 쉽지가 않았습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기 이전에 내 몸 하나 제대로 추스르는 것마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살아있음의 징표인 체온 36.5도의 성스러움과 그 간절한 그리움을 되새기며 밤을 지새우는 동안 내 몸에서 빠져나간 습기가 얼어 침낭 바깥에는 성에가 끼고 천막마저 얼음코팅으로 뻣뻣해졌습니다.
그러나 얼고 또 어는 것이 어찌 나 혼자뿐이었겠는지요. 강물도 꽁꽁 얼어 밤새 쩌렁 쩌렁 울고 있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라는 유령 혹은 마구니의 유혹에 빠져 위기에 처한 강을 따라 걸으며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종교인 순례단 또한 소리 없는 대성통곡을 해야만 했습니다.
날마다 15km 정도씩 유장한 강물의 속도로 천천히 걸으며, ‘새만금 삼보일배’로 무릎 관절이 많이 상한 수경 스님의 무릎 속도에 맞추며 하루 종일 참회의 기도를 했습니다. 고단한 순례의 길 위에서 부활절을 맞았으며, 4대 강을 모시는 길 위에서 다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했습니다.


생명의 강 순례자가 아닌 순교자 될 것

걷다가 맑은 강물을 만날 때는 우리 순례단의 온몸에도 생기가 돌았고, 골재 채취 등으로 내장이 파헤쳐지거나 각종 폐수로 시커멓게 죽어가는 낙동강과 마주칠 때는 꼭 그만큼 온몸이 아팠으며, 남몰래 자주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강을 따라 걸으면 걸을수록 대운하라는 유령의 실체는 드러나고, 마침내 생명의 강으로 다시 기력을 되찾아가는 민족의 젖줄을 확연하게 보았으
니 너무나 고맙고도 눈물겨웠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한반도 대운하’는 희망이 아니라 죽음의 기나긴 장례 행렬인 ‘한반도 대운구(大運柩)’라는 재앙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죽어가는 4대 강의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철새와 물고기들도 죽어가는 강을 떠난 지 오래고, 그 누구도 썩은 냄새 풍기는 봄날의 강변에 나가지 않았으며, 병든 강물 또한 온몸으로 죽어가
면서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우주적 파괴자’ 혹은 ‘만물의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 인간들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체 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고, 생명과 평화의 길은 결국 공염불일 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생명의 의지처인 강과 산과 바다를 모시고 되살리는 마음으로 온 국민과 함께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해 봅니다. 이제부터는 그저 강을 따라 걸으며 아파하고 슬퍼하며 참회를 하는 순례자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생명의 강을 지키는 순교자로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다 되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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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 _ 시인, 지리산에 10여 년간 살며 생명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최근 산문집 『지리산 편지』,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를 펴냈다. 현재 순천대와 실상사 작은학교 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총괄팀장을 맡아 생명평화순례를 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