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2001-08-15     관리자

[깨달음이란?]

깨달음은 크게 '내가 밝아 지는 것'과' 이 세계가 밝아 지는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오도견성했다는 것은 내가 밝아지는 것에 해당됩니다. 아득한 옛부터 덮혀 있던 무명의 어둠을 비로소 오늘 내가 거둔 것이지요.

그런데 나만 밝아 져서는 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도 해는 동(東)에서 뜨고 서(西)로 지며, 봄은 오고 가을은 가며 밝은 달은 동구 밖에서 아이들과 한가로이 술래잡기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밝아지더라도 나 혼자 밝음에 머무르고 있으면 이 세상은 하나도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망나니짓 하던 사람은 오늘도 동네 사람을 못살게 굴며, 강아지는 복날 오늘도 가마솥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밝아진 다음엔 반드시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나만 밝음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밝음을 전하러 내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깨달음이 남에게도 이어져 온 세상이 깨달음으로 하얗게 덮혀야 하는 것입니다. 무량수 부처님이 온 법계를 밝히듯, 우리도 그렇게 부처님 나라를 밝히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법계에 이어지는 나의 깨달음, 그것은 바로 만행이요, 자비행입니다. 우리는 행을 통하여 비로소 세상을 밝히며, 남과 하나가 되고 남에게 나의 깨달음을 이을 수 있게 됩니다.

부처님의 양대 특성인 '지혜와 자비' 중에서 지혜가 '나의 깨달음'을 말한다면, 자비는 '일체 법계가 밝아지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나에게만 머문다면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온 법계의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자비의 실천으로 비로소 완성된다고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이 설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명상, 참선 등의 수행은 대부분 내가 밝아지는데 우선을 둔 수행법입니다(*註;나와 남이 동시에 밝아지는 불교의 수행법으로 대표적인 것은 화엄의 '보현행원수행법'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수행으로 내가 좀 밝아졌다 하더라도 이게 끝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인 셈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 공부에 안주하는 경향이 없쟎아 있습니다.

조그만 소식이 와서 스스로 좀 밝아지면 그것이 다인 줄 알고 자기 세계에만 머무는 것입니다. 조그만 나의 깨달음에 안주하여 더 이상 나아 갈 생각을 않고, 도처에 신음하는 이웃들을 외면한 채 오도송을 읊고 산 속에 앉아 이제는 화석같이 되어 버린 옛 선지식의 흉내나 내며 대장부 할 일을 끝냈다는 구름 잡는 말씀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밝아지고 나면 압니다. 지금 내가 눈을 떴다, 밝아졌다, 하지만 사실은 무량겁 이전부터 나는 본래 밝았던 존재인 것을! 그리고 내가 무량겁 이전부터 광명 그 자체였듯, 일견 어둠에 가득 덮힌 듯 보이는 이 세상도 나와 똑같이 무량겁 이전부터 광명 속에 휩싸인 것을! 일체 중생이 본래 밝음 그 자체인 것을! 밝아진 나나 밝지 못한 저 중생이나 본질에 있어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는 것을! 그런데 중생들이 본래 밝은 이 모습을 스스로 눈을 감고 세상은 어둡다, 길이 안 보인다, 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인 것을! 따라서 내가 할 일은 밝음의 자랑이 아니라 어서 저 중생 부처님들을 잘 섬기고 공양하는 것임을!...

이런 연유로 부처님은 성도 후 45 년을 길거리에서 무명 중생과 똑같이 울고 웃으며 보내신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는 막막하기 그지없는 저 절대적 어둠 앞에, 부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며 일체 중생을 섬기고 공양하며 당신의 밝음을 온 중생에게 전하신 것입니다. 어둠은 어둠으로 사라지지 않고, 밝음 앞에 어둠은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불자님들!
방안에 홀로 앉아 뜬구름같은 깨달음의 소식에 취하지 마시고, 드넓은 저 법계에 모두 나가 우리 모두 손 잡고 일체 중생의 좋은 벗이 되어 다함없는 성불의 노래 같이 불러 봅시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나무 아미타불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