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금어(金魚) 그는 환쟁이인가(下)

특별 기고

2008-06-12     김만근

     [3] 무엇보다 신심(信心)으로

   필자가 불화, 즉 탱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신자였고, 임종하실 때 기왕 화가가 되려면 당신 뜻에 합치되는 불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말씀에서였다.
   그래서 필자는 불교에 관한 그림, 연꽃, 참선 삼매경의 스님, 열반에 들어가신 석가모니, 보살, 만다라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틈틈이 서울 근교의 사찰은 물론 경기도 수원의 용주사, 강화 전등사, 광주 봉은사, 경북 동화사, 영천 은혜사 등을 찾아 소장된 탱화를 유심히 살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불교사와 신심이 부족한 일부 화상들이 성의 없이 그려 놓은 탱화들이 엄숙한 법당에 제멋대로 놓여 있었다.
   고려시대의 탱화, 그것은 고뇌와 번민에 찬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모습 그대로였었다. 그런데 내가 가본 절의 탱화에는 다정다감하고 자상하여야 할 부처님의 모습에 괴기가 서려 있고, 뭇 중생들을 노려보며 힐책하는 듯한 표정이 있음을 여럿 목격하였다.
   물론 부처님의 모습은 인도, 버마, 태국, 일본 등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우리나라의 부처님은 가장 인자하며 은은한 모습이다. 특히 그 웃는 듯 마는 듯한 오묘한 입술에 그 신비가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가 세기의 걸작이라지만, 우리 탱화 속의 부처님의 입술과 눈웃음에는 결코 비길 바 못될 것이다.
  『금어는 한 마디로 부처님의 자식이기 때문에, 마음의 맑기가 명경지수와 같고 부처님을 받드는 마음이 하늘에 닿도록 높고 깊어야 한다. 참된 불제자가 아닌 금어는 한갓 환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일찍이 금어로서 일세를 떨쳤던 석초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부처님과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부처님을 그릴 수가 없다. 신장탱화, 칠성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 등도 그릴 수가 없다. 그림은 있으되 혼이 들어 있지 않으면 사진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탱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불교의 교리를 익혀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가장 힘든 것이 부처님의 눈웃음을 그리는 일이었다. 필자는 이때 옛 선배가 한 말,『인자하게 웃고 계시는 네 마음속의 부처를 그려라』하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낀 것은, 내가 마음이 슬플 때면 부처님도 슬퍼하시고 내가 기쁠 때는 부처님도 기뻐하신다는 것이었다. 중생의 백팔 번뇌를 모두 잊어버리고 완전히 자신을 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탱화에는 금어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다. 대표적인 탱화로 손꼽히는 전남 강진 무위사의 극락전 탱화나, 여천 흥국사의 괘불 탱화, 선암사의 탱화에도 금어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무위사의 탱화에는,「십이년 병신 삼월초 길화상」이라고 먹으로 글씨가 씌어져 있고 흥국사와 선암사 탱화에도「조선 인조 2년」이라고만 적혀 있다.
   금어들은 탱화 밑에 빨갛게 단을 칠하고 먹으로 글씨를 쓴다. 이것을「단월 묵서」라고 한다.
   그 글에는 탱화를 만든 때와 그 동기와 시주자의 이름과 탱화를 모신 것만 적을 뿐이다.
   금어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기를 꺼려하는 것은, 그들의 공을 내세우는 것보다 부처님의 제자됨을 더욱 기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심이 깊지 않고 기술만 앞선다면 결코 훌륭한 탱화가 될 수 없다. 탱화 그리는 솜씨는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돌아다녀 보니, 큰 절에도 뜨내기들 즉 환쟁이들이 그린 탱화가 많았다.
   좋은 탱화로서 또 하나 갖추어야 할 것은 속화의 냄새가 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속세를 떠난 종교적이고 엄숙한 맛이 없으면 그림으로서의 시각적인 면은 있을지 모르나 탱화로서의 가치는 상실된다.
   믿음이 깊지 못하고 붓끝의 기술만 앞선다면 속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테면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 동산을 한국의 동산, 흔히 시골에서 보는 소나무가 울창한 야산으로 그렸다든가, 마야부인을 이웃 아주머니처럼 그렸다면 안 될 일인 것이다.
   또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명상에 잠긴 때 나타나는 마군을 이상한 도깨비처럼 묘사한다든가 하는 점도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교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실수이다.

     [4] 탱화는 모든 불자의 것

   탱화를 그릴 때에는 금기가 있다. 물론 이것은 전해 내려오는 전통에 의한 것이지만, 신심을 북돋고 부처님과 한마음 한 몸이 되어 훌륭한 탱화를 조성하기 위한 기원에서이다.
   탱화를 그리기 열흘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날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아내와는 딴 방을 쓴다. 탱화를 그리는 동안에는 몸과 마음을 더욱 정결히 해야 한다.
   탱화를 그리는 날에는 잡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금토를 뿌리고 금줄을 치며, 덕이 높은 여러 법사와 금어, 종두, 공가, 별좌, 도감, 화주, 시주들이 줄줄이 늘어앉은 자리에서 신장 불공을 올린 다음에야 붓을 들게 된다.
   새벽마다 목욕을 해야 하며, 여자와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추한 것을 보아서도 안된다. 이 기간에는 밤마다 부처님의 꿈을 꾸기 위해 열심히 부처님의 얼굴만 머릿속에 떠 올린다.
   필자는 순금사의 탱화를 그리면서 3개월간 10여 차례 부처님 꿈을 꾸었다.
   탱화는 결코 매매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자신이 그렸다고 해서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절의 재산이 될 수도 없다.
   재산형성 이전에 부처님의 뜻을 섬기는 수많은 불신자들의 마음에 평정과 번뇌를 잊을 수 있는 마음을 주어야 된다. 따라서 온갖 정성을 들인 이러한 탱화는 모든 불신자들의 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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