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불교잡지의 기능과 역할

시론(時論)

2008-06-12     공종원

   불교잡지의 탄생은 필요의 산물이다. 불교도 하나의 종교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종교적 형태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교화와 봉사라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 지탱된다고 한다. 사람들의 고통을 해소해 주고 절망에서 구원해 주며, 욕망과 기대를 조절하고 순화하고 혹은 채워 주는 데서 종교는 큰 몫을 다 하고 있다. 그 종교의 역할이 바로 교화와 봉사로 집약되는 것이다.
   교화는 물론 교리를 바탕으로 교역자가 담당하여 그것은 주로 교회나 사찰이라는 성스러운 장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오늘의 교화는 그런 한계가 반드시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이 주조를 이루는 현대사회에서 종교라고 유독 옛날의 방식으로 교화와 봉사에 나설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 교화의 대표적 기능은 매스 미디어가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사실을 인식한 가톨릭교회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매스컴 선도대책을 협의하고 회칙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문 · 방송 · 잡지 등 매스 미디어에 대한 기능은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교회나 교단이 미디어를 운영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나 교단이 일반 미디어들을 어떻게 대하며 교회나 교단에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가 하는 일이다. 이것은 교단의 능력과 역량에 달린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교단이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교단이 직접 운영하는 미디어의 경우는 비교적 충분히 교회나 사찰과 교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용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경우엔 아직 매스컴 선도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하고 여건도 좋지 않아서 기대만큼 기능하지는 못하고 있다. 종단이나 사찰이 소유한 방송은 아직 없으며 일간신문도 없다. 다만 조계종은 한 개의 주간신문을 발간하고 있으며 한 사찰이 한 개 월간신문을 낼 뿐이다.
   다행이랄까 불교잡지는 비교적 활발해서 미디어 활용 면에서 조금 나은 사정이다.「불광」을 비롯해서「법륜」「법시」「불교」와「여성불교」등이 매달 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잡지는 그 크기나 체제 · 내용면에서 서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같은 불교잡지이니만치 그건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잡지마다 대상층을 달리하면 자연 내용면에서도 차이가 있을 법한데 잡지마다의 특성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개중에 내용이나 편집기술상 아직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불교신도계층의 수준을 개탄하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물론 불교잡지는 불교의 신도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만큼 그 신도들의 의식수준과 신앙 형태를 무시한다거나 배제하고 성립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도들의 요구에 영합하여 비본질적인 불교의 모습을 지나치게 광고하고 이를 조장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불교의 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하며, 결코 비합리적인 영험설화나 미신취향으로 불교의 본질을 오해시키는데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불교잡지의 사명은 일차적으로 불교의 홍보에 있다는 의미에서도 불교의 본질과 동떨어진 내용과 편집은 극력 피하는 게 원칙이다.
   그것은 또 불교잡지 가운데서도 꼭 전문 연구지에만 한정된 요청은 아니다. 불교종합지도 마찬가지 정신으로 편집되어야 마땅하다.
   너무 지나친 욕심이 될는지는 몰라도, 불교신자들의 수준을 높이는 선도적 사명을 다한다는 의미에서도 불교잡지의 역할은 재인식되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불교잡지들도 이제 재분발해야 할 단계에 왔다는 생각도 든다.
   우선 잡지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 설정부터 쇄신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우리 불교잡지들의 그간 변모상을 보더라도 과거보다는 훨씬 세련된 감각을 보이고 있고 또 편집내용면에서도 뚜렷한 방향 아래 문제를 추출하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곤 하지만 아직 바람직한 불교잡지의 면모를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우선 잡지도 발행하는 주체가 범불교 교단적 성격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지금 나오고 있는 불교지들의 성격을 보면, 그들은 각기 한 종단의 종단지의 성격을 띠지 않으면 한 종단신도단체의 대변지, 혹은 한 사찰을 기반으로 한 교화지로 대변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행주체의 특수한 목적이나 편집 의도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이 보통이며, 때에 따라서는 지극히 제한된 소수의 신앙태도나 종교관이 지나치게 편협한 형태를 띠고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범불교교단적 의미의 불교종합지의 출현이다.
   불교연구전문지도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 불교종합지만이라도 충실한 내용의 것이 나와야겠다. 불교종합지엔 본격적 연구논문은 안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논문들이 게재되어야 할 것이다. 또 고급독자들을 위한 보다 충실한 내용의 글들이 많이 실릴 수 있어야겠다.
   불교 경전에 관한 해설과 연구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불교문제의 현실적 적용에 관한 새로운 시각들도 많이 나와야겠다. 뿐더러 불교의례에 관한 일반적 상식에서부터 불교미술 · 불교문학 · 불교음악에 관한 다양한 접근도 있어야겠다.
   특히 낯선 해외 각국의 불교를 단순한 관광적 차원이 아니라 학문적 차원으로 소개하는데도 힘써야겠다.
   우리의 불교적 전통을 잘 알고 그것을 살리자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고승 등의 불교행적을 되돌아보고 우리 불교의 유적을 소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해외불교의 모습과 전통을 보급하는 노력도 게을리 해선 안 되겠다. 우리의 특수한 현실적 여건은 공산권 연구에 제약을 가지고 있지만 해외자료를 통해서라도 우리의 안목을 넓히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불교잡지는 또 독자의 교양과 취미생활에도 기여해야 한다. 불교인의 신앙자세에 교양이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현실 생활에 적합한 취미, 오락의 영역을 무시하지 않고도 이루어진다.
   일본의 불교잡지「대법륜(大法輪)」에선 절 음식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사찰사유의 음식의 특성을 소개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일본불교의 음식문화 보존이라는 측면과 사찰관광의 한 측면을 안내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기획인 것처럼 보였다.
   또, 최근 우리 국내 인기 연예인의 한 사람이 스님과의 대담 속에서 털어 놓은 그의 생활의 애환과 생활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비록 나이 어린 대중가수에 불과했지만 상당한 수련과 연찬을 거친 노성한 인품을 느끼게 하는 데가 있어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결국 불교잡지는 하나의 전문잡지이긴 하지만 불교를 전파하고, 불교를 연구하며, 불교를 생활하는 현대인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꼭 불교인만이 아니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교적 생활 자세와 불교사상 불교문화의 향기를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하여야겠다.
   아울러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불교잡지의 출현도 기대된다.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