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법문 : 보살계본사기 해설 (14)

원효대사 법문

2008-06-11     심재열

[10] 나를 추키고 남을 헐뜯지 말라[자찬훼타계(自讚毁他戒)]

① 계문(戒文)

   앞에서 우리는 제6중계인 4부중의 허물을 들추어 말하지 말라는 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 7중계는, 나를 추키지 말고 남을 헐뜯지 말라는 계이다. 두 계의 내용을 살펴보면 혼동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예부터 이에 대한 여러 주석가들의 해설이 있어 왔다.
   당나라 때의 유명한 선지식으로 현수(賢首)대사가 있다. 신라의 의상(義湘)대사와 함께 지엄 (智儼)화상에게 화엄학을 함께 배우고, 의상 대사는 우리나라의 화엄종의 개조(開祖)가 되고 현수대사는 중국 화엄종의 제3조가 된 당대 제일의 대선지식이었다.
   현수대사는 이 6중계와 7중계에 대해「제6중계는 단순한 과오, 실수를 뜻하지만 이 7중계는 과오를 넘어 서서 헐뜯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계는 계의 이름이 가리키고 있듯이「자신을 칭찬하는 것과 남을 헐뜯는 것」의 두 가지 내용이 합해짐으로써 성립되는 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원효대사는「스스로 칭찬하는 것」이나「남을 헐뜯는 것」, 그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이 계에 해당하지 않음을 밝히고 그것은 전계 곧 제6중계에 해당하거나 아니면 경구죄(輕垢罪)로 결죄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 글은 계문을 먼저 소개한 뒤에 밝히기로 한다.
  『만일 불자가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으며, 또한 남을 시켜서 스스로를 칭찬하게하고 남을 헐뜯어서「남을 헐뜯는 인」과「헐뜯는 연」과「남을 헐뜯는 법」과「남을 헐뜯는 업」을 지으랴.
   보살이 마땅히 일체중생을 대신하여 헐뜯음과 욕됨을 받아서 나쁜 것은 자기에게 돌리고 좋은 일은 남에게 베풀 것이거늘 만약 자기의 덕만 드날리고 남의 잘한 일은 숨겨서 남으로 하여금 헐뜯음을 받게 하면 이것은 보살의 바라이죄니라.』

② 다섯 가지 뜻

   원효대사는 이 계문을 다섯 가지 경우로 분석하여 그 뜻을 밝혀 주고 있으며, 이 계는 일곱 대중이 다 같이 지키는 계이고 대승 소승이 한가지로 배우는 계라고 했다. 또 이 계는 헐뜯는다는 점에서는 앞의 계와 같다는 것이다.
   원효대사가 밝힌 다섯 가지 경우의 뜻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무런 이익을 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으면서 오직 자신만을 칭찬했을 뿐 남을 헐뜯지는 않았다면 이것은 아주 가벼운 경구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 아무런 이익을 바라지 않고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았으면서 오직 남만을 헐뜯었다면 이것도 경구죄에는 해당하지만 중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5전 이하의 이익을 생각해서 남을 헐뜯고 자신을 칭찬하고 했다면 이것은 앞의 두 경우보다는 그 죄가 무겁겠지만 그러나 역시 경구죄를 범한 것이고 중계를 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원효대사의 해석에 따르면 앞의 세 경우는 이 7중계를 범하는 바라이죄에 해당하는 범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넷째, 5전 이상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었다면 바로 이 7중계를 범한 것이 된다고 했고, 또한 다섯째, 5전 이상의 이익을 위해 여러 가지 음모를 하고 꾀를 내어 거듭 나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는 경우에는 앞의 6중계와 이 7중계를 겸해서 2중으로 범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원효대사의 이상과 같은 해설을 통해서 보면 이익을 전제로 하여 남을 헐뜯고 자신은 칭찬하고 하는 데 대한 제계(制戒)가 이 7중계라면, 앞에서 설명한 제6중계는 단순히 남의 허물을 들추어 교단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남을 함정에 빠뜨리어 많은 사람들의 신심을 떨어뜨리게 하는데 대한 계였다는 점에 그 차이를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③ 5전의 근거

   원효대사가 이 중계를 범하는 기준을 5전 이상의 이익을 바라고 한 범계에 둔 것은 지지론(地持論)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은 원효대사 자신이 이 사기(私記) 가운데 문답형식의 기술을 통해 그렇게 밝히고 있음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지지론은 보살지지론(菩薩地持論), 보살계경(菩薩戒經)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 삼취정계(三聚淨戒)에 대해 언급돼 있으며, 7중의 비구계 · 비구니계 · 정학녀계(正學女戒=식차마니계) · 사미계 · 사미니계 · 신사계(信士戒) · 신녀계(信女戒)가 열거되어 있다. 또한 보살의 바라제목차로서 4바라이, 42범사(犯事)를 교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지론의 4바라이 곧 4중계에서는, 보살계에서 7중계로 들고 있는 이 자찬훼타(自讚毁他)를 제1중계로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지지론에서는 이 자찬훼타계를 그만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원효대사는 바로 이런 점에 유의하여 이 7중계를 해석함에 있어 지지론에 의거 5전 이상의 이익을 위해 남을 헐뜯고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 이 7중계의 바른 뜻이라고 밝혀 둔 점은 역시 원효대사의 해박한 식견에 의한 명주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④ 여섯 가지 조건

   원효대사는 이 7중계를 범하는데 여섯 가지 조건이 있음을 들고 있다. 이 여섯 가지 조건이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가벼운 경구죄를 범한 것으로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 죄도 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여섯 가지 법계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같은 일곱 대중 곧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 · 식차마니 · 사미 · 사미니 앞에서 저지를 자찬훼타거나 같은 대승의 불법을 배우는 2승네의 비구 비구니의 앞에서 저지른 자찬훼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보살계를 받지 않은 이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그럴 수도 있고 설사 그것이 헐뜯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수양의 덕이 모자라는 잘못은 될 수 있지만 중계를 범하는 잘못은 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둘째는, 같은 불법을 함께 배우는 도반과 비유하여 아무는 어떻게 잘못하고 나는 이렇게 훌륭하다고 하는 비교해서 말하려는 생각이 있어야 죄가 된다는 것이다. 불법을 수행하지 않는 속인과 견주어 자신의 훌륭함을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법을 찬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그것은 꼭 큰 죄라고 할 수 없겠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어떤 이익을 위해 그것을 도모하고자 하는 번뇌의 다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아무와 또는 대중과 견주어 나는 이렇게 훌륭하다고 하는 뜻을 설명하는 사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말한 바의 내용이 자찬훼타의 뜻에 명백하게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는, 말을 듣는 상대자가 분명하게 자찬훼타의 내용을 알아들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여섯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으면 보살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크게 어긴 10중 바라이죄에 해당하여 교단으로부터 축출돼야 한다는 뜻이다.

⑤ 죄성판결(罪性判決)의 네 가지 기준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는 이 계를 범하는데 있어서도 몇 가지 예외의 경우가 있고 또 죄성(罪性)을 판결하는데 있어서도 범계의 내용에 따라 중죄인가 경죄인가를 가려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원효대사는 다섯 가지 경우와 또는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 풀어 주고 있다. 네 가지 죄성판결의 경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찬훼타의 범계를 했으면서도 오직 복이 될 뿐 조금도 죄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중생의 근기를 사무친 보살이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할 방편으로 하는 자찬훼타의 경우가 그것이다.
   둘째는, 복도 되지 않고 죄도 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제 정신이 아닌 정신이상 상태에서 저지를 자찬훼타의 경우를 말한다.
   셋째, 다만 죄가 가벼울 뿐 무겁지 않은 경우이니, 5전 이하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이 계를 저지른 경우로서 경구죄에 해당한다.
   넷째는, 오직 죄가 무겁고 가볍지 않은 경우이니 5전 이상의 이익을 위해 이 계를 범한 경우로서 이 7중계를 세우게 된 제계(制戒)의 의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이 7중계는 원효대사가 보살지지론에 의거하여 밝힌 바에 따라 어떤 이익을 목적으로 하여, 특히 5전(인도고대의 화폐단위) 이상의 이익을 위해 동학(同學)을 헐뜯고 자신을 칭찬하는 잘못을 막기 위한 중계라 하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