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산은 아무나 가나! _ 2

바람처럼 구름처럼

2008-06-01     관리자

▲ 에베레스트 고속도로 - 사람과 소가 비껴간다.
돈 주고 사서 하는 힘든 고생, 그리고… _
히말라야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드디어 8일간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행의 일과는 대략 다음과 같다. 아침 6시, 셰르파(Sherpa, 길잡이) 둘이 뜨거운 차를 들고 와서 우리를 깨운다. 그러나 깨우기 전에 벌써 우리는 일어나 있다. 너무 추워서 누워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난방이라고는 밤에 자러 들어가기 전에 보온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서 밤새도록 껴안고 자는 것이 전부이다.
세수는 찬물로 대강 하고 아침(토스트, 계란, 죽, 걸쭉한 국, 밥 등이 교대로 제공됨)을 먹고 7시쯤 걷기 시작하여 12시까지 걷는다. 점심(밥, 야채 커리, 감자, 국수 등)을 먹고 1시 반경 다시 출발하여 저녁 5시경까지 걸어서 산장에 도착하면 방을 배정받는다. 저녁은 6시경. 역시 점심때와 비슷한 메뉴. 저녁을 끝내면 갈 곳이 세 군데 있는데 하나는 캄캄하고 추운 바깥, 둘은 떠들썩하고 추운 식당, 셋은 어두컴컴하고 추운 방이다.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눈 덮인 산을 바라보리라던 기대는 펴 보지도 못하고 버린다.
그래도 우리는 집 안에라도 있지만 산장 근처에는 천막을 친 사람들도 많다. 시린 손을 움켜쥐고 천막을 치고 침낭을 펴고 식사를 마련한다. 식당 천막에는 밤늦게까지 불이 켜있다. 그들은 우리보다도 일찍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천막을 접고 꽁꽁 언 몸을 뜨거운 차로 녹인다.
옛날 옛적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 의해 만들어진 길은 좁고 험하다. 먼지에 목이 칼칼하고 땀은 흘러서 눈앞을 가리지만 건강한 몸으로 걷는다는 기쁨에 잠겨 걷다가도 문득문득, 왜 이렇게 힘든 고생을 많은 돈을 주고 사서 하는지, 의아심이 들고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미쳐도 이렇게 미친 사람이 있나!
집에서 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탄수화물투성이 식사, 딱딱한 침대, 신발을 벗으면 땀에 찌든 발바닥은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리고 온 몸이 땀으로 끈적거리지만 샤워는커녕 얼굴을 씻을 따뜻한 물을 달라는 것도 눈치 보이는 곳. 영하 12도까지 내려가는 밤을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는 보온 물통을 껴안고 냄새나는 침낭 속에서 쪼그리고 새우는 괴로움. 돈을 줄 테니 하라고 하면 십리 밖으로 도망칠 이 고생을, 뭣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돈을 주고 사서 하는 것일까.
그러나 추워서 웅크리고 새벽이 오기만을 고대하다가 날이 훤히 밝기 무섭게 털고 일어나, 순한 눈을 껌벅거리며 서있는 죠페(야크와 소의 교배잡종) 세 마리와 서리 내린 하얀 들판과 눈안개 피어오르는 산을 둘러보노라면, 간밤의 고생은 씻은 듯 사라지고 또다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힘이 솟는다. 그래서 등산화 끈을 매는 손이 바쁘고 배낭을 메고 나서는 마음은 떳떳하고 즐겁다. 오른발 떼어서 앞에 놓고 왼발 떼어서 앞에 놓고,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그저 걷는 일이 있을 뿐이다.

▲ 히말라야 산장에서 보는 쾅대 산. 6,000미터 이하라 하여 잘 언급도 되지 않지만 그 위용이 뛰어나다.
원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산의 축복 _
티앙보체(Thyangboche) 사원은 산행 4일째 되는 날 도착했다. 3,867미터 산정에 오색찬란한 색깔로 단장한 이 사원 앞뜰에 서면 에베레스트, 아마 다블람, 로체 등의 산봉우리가 보이고 우리는 며칠째 웅크리고 자느라 저린 어깨를 활짝 펴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산을 보는 기쁨에 젖는다. 아무 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고 저렇게 아름답고 의젓한 모습으로 서서 우리를 감사와 기쁨으로 꽉 차게 해주는 산.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머니에 넣고 갈 수도 없고 돈으로 사고 팔 수도 없는 무형의 선물. 원하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산의 축복. 우리는 이 소중함을 가슴 깊이 들이마신다.
하루는 남편이 돌아눕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숨이 가쁘다고 한다. 혹시 고산병 증세가 아닌지 걱정이 되어, 피 속에 있는 산소의 양을 측정해 보았다. 남편은 정상이고 나는 좀 낮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멀쩡하던 내가 그 말을 듣고부터는 어딘지 힘이 없고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운 듯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아는 게 병’이란 이런 때 쓰는 말.
주의사항 두 가지를 언급하는 게 좋겠다. 첫째, 배낭에 음식을 두지 말 것. 생쥐들이 밤새 들락거리며 갉아먹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것은 물론 배낭에 구멍이 뻥 뚫린다. 둘째, 스릴 만점을 즐기려는 태도를 반드시 준비할 것.산과 산 사이 계곡을 잇는 공중다리가 7~8개 있는데, 까마득한 밑으로는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가고, 서로 아슬아슬하게 비켜 가노라면 떨어질 것 같고, 쇠줄은 닳아서 끊어질 것 같다.
산행이 후반으로 들어가자 린(영국여자)이 힘들어 하며 배낭을 내던지더니 마지막 날에는 알렌도 드디어 병이 났다. 춥고 떨려서 옷이란 옷은 다 끼어입고 배낭은 셰르파에게 주고 등산지팡이 둘에 의지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따라오느라 총력을 기울인다. 뒤떨어지지 말고 아프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은 탓인지 최고령(?)의 우리는 선두에서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루크라를 떠나는 비행기도 안개 때문에 연발을 했지만 이제 카트만두에 가서는 작별인사를 하는 일만 남았으므로 느긋하게 기다렸다. 침낭을 돌려주고, 한국 음식점에서 불고기, 된장찌개, 미역국, 김치로 다같이 저녁도 먹고, 작별 파티도 했다. 우리 일행은 무대를 독점해서 신나게 놀았다. 어제만 해도 반죽음이 되었던 알렌이 그 큰 체구를 요상하게 흔들며 트위스트를 추기도 했다.
카트만두의 명소 럼 두들(Rum Doodle) 식당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발바닥 본을 떠서 천장에 매달아 놓았는데 우리도 발바닥 모양으로 자른 종이에다가 자랑스럽게 이름들을 쓰고 산행의 소감을 적었다. 이번의 산행으로 우리 각자는 자기 나름의 정상에 오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상이란 저기 에베레스트 산봉우리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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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 _ 1941년 서울에서 출생, 경기여고와 미국 메릴랜드 대학 철학과 졸업. 1972년 미국에 이주, 메릴랜드 주 실버 스프링에 살고 있으며, 1972년 세계은행(World Bank)에 입사했다. 1998년 은퇴 후 자원봉사로 주말 한글학교 한글교사, 매릴란드 주 정부 승인 법정 통역 활동을 하였으며, 월간 미주현대불교, 미주 중앙일보에 비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E-mail: seenaeyoon@ms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