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강물에 마음속 깊은 때를 씻어내다

인도성지순례 2 갠지스

2008-06-01     관리자

여기저기 들려오는 요란한 경적 소리에 쉼표 하나 찍기가 쉽지 않다. 자동차와 버스, 오토바이, 릭샤가 모두 뒤엉켜 가다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답답해 보이는 건 나 하나뿐! 주위의 운전수와 도로 위 사람들은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들이다. 빵빵 울리는 경적 소리는 빨리 가라는 신호라기보다는 ‘내가 여기 있다. 부딪히지 말고 가자.’라는 소리 정도로 들린다. 한 사람이 경적을 울리면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울리기 시작한다.
정치의 수도는 뉴델리, 경제의 수도를 뭄바이라 한다면 종교의 수도는 당연히 이곳 바라나시를 꼽는다.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바라나시를 알고 싶다면 갠지스를 보라고 했다.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도 오래된 도시’라고 부를 만큼 갠지스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 도로는 소음과 교통체증으로 답답하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상할 만큼 느긋함과 여유가 넘친다.
갠지스의 오후 풍경

릭샤의 페달은 갠지스를 향해 부지런히 돌아간다. 소음과 매연, 교통체증으로 가득 찬 도시를 빠져나와 드디어 갠지스와 만났다.
마르지 않고 수세기를 흐르는 강,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가 넘치는 갠지스와 마주하고 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강물뿐이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잠시 호흡을 길게 늘려 본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천천히 주변의 상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앞에는 아이들이 연날리기에 정신이 없다. 제법 하늘 높이 올라간 연도 있고, 자기 머리 위에 간신히 떠 있는 연을 띄우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도 있다. 가트(ghat)라 불리는 계단 주위로는 사람들이 서넛씩 무리를 지어 앉아 강가에 내리는 햇살을 받고 있다. 액세서리를 팔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갠지스로 나온 모습도 보인다. 그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 액세서리를 파는 가족의 모습

강을 따라 걷는다. 흰 연기가 곳곳에 피어오르고 주변엔 땔감으로 보이는 나무토막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화장터다. 힌두교인들은 죽은 뒤 이곳에서 화장돼 강가에 뿌려지면 영원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질긴 윤회의 고리를 끊고 평안한 안식을 얻는 것이다. 연기를 뿜어내는 잿더미 사이로 사람들이 서 있다. 관광객과 순례객들, 그리고 유가족들일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과정을 바라보자니 인생사 무상함이 느껴진다.

▲ 정성스럽게 수염을 다듬어 주는 모습이 정겹다.
▲ 다이라 불리는 초를 강에 띄우며 소원을 빈다.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씻다
가트 아래서 한 남자가 목욕을 하고 있다.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선다. 목욕하는 남자는 상당히 진중한 모습이다. 입으로 만트라를 중얼거리며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정성스레 닦는다. 사람들은 목욕을 하면 죄도 씻겨 나가고 간절한 바람까지도 성취된다고 믿는다. 한참을 지켜본다. 긴 침묵이 이어진다. 하나의 종교 의식을 보는 듯 경건한 기운이 내 마음에 깃든다.
서서히 강에는 노을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트 주위로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강바람을 쐬며 느긋하게 앉아 강가에 젖어드는 노을을 감상한다.
나 역시 가트에 앉아 천천히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빛으로 붉어진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른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갠지스, 그 오래된 강물에 마음속 깊은 때를 씻어 내고 있었다.

▲ 입에서 만트라를 중얼거리며 목욕을 한다. 마치 종교의식을 보는 듯 진지함이 느껴진다.

▲ 가트 주변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진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에 마음속 깊은 때를 흘려보내다.

* 이번 인도성지순례는 인도 정부 관광청과 인도철도관광주식회사(IRCTC)의 마하 파리니르반(Maha Parnirvan)성지순례 전용열차의 협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IRCTC 한국 사무소 : www.irctc.co.kr, 02-730-0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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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권 _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월간 샘이깊은물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는 소중한 문화재를 디지털이미지로 복원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 중 화엄석경은 디지털 복원 작업이 완료되었고, 팔만대장경과 초조대장경 디지털 이미지 복원에 힘썼다. 자유사진가로서 틈틈이 이 땅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