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휴전선 랠리다!

지혜의 향기 - 내가 최고!

2008-05-30     관리자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바람을 가르며 도심을 질주하는 상쾌함은 달려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지금같이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차마저 막히는 시절엔 그저 자전거만큼 좋은 교통수단도 없다. 돈 절약되고, 건강해지고, 게다가 자연환경까지 보존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내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것은 봉은사에 다닐 때부터다. MTB를 좋아하시던 어느 스님과 함께 한강을 달리면서부터 내 자전거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단순한 놀이의 수단이 아니라, 교통수단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스님과 업무가 종료되면 매일같이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삼성동에서 여의도까지 왕복하며 체력을 키웠고, 급기야 그해 여름 제주도로 자전거 투어를 다녀오게 됐다. 벌써 10년이 넘은 일이지만 그해 자전거 여행은 내 가슴 깊은 곳에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후 조계사로 직장을 옮기면서 자전거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집에서 종로까지 출퇴근을 하며 생활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었다. 무릎 십자인대가 손상된 시련의 시기였지만, 운동을 통해 건강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자전거 출퇴근 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자전거 강릉투어’였다. 460km를 1박 2일로 다녀오는 일정이었는데, 하루에 12시간씩 달려 서울과 강릉을 왕복하는 코스다.
강릉에 가기 위해 10여 년간 정들었던 MTB를 아내에게 물려주고 사이클을 장만했다. 매일같이 한강과 남산, 북악스카이웨이를 오가며 기초체력을 다져나갔다. 처음에는 힘들게 올랐던 언덕길도 쉬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체력이 됐고, 결국 강릉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어린 시절 소풍갈 때처럼 들뜬 가슴으로 새벽녘에 동호인들과 함께 출발을 했다. 사이클이 낯선 데다 26명이 나란히 달리는 것을 처음 해본 나로서는 힘든 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에는 팀워크가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맨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바람을 막아주고, 선두 스피드에 맞춰 모든 사람이 함께 달려야만 시간 내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속 35~40km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데, 왜 달리냐고 물으면 그냥 달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달려 태기산을 넘고 평창과 대관령을 지나 종착지인 강릉에 닿았고, 다시 서울로 올 때는 그 대관령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넘을 수가 있었다. 서로 힘들지만 격려하며, 뒤처지는 사람은 뒤에서 밀어주기까지 하는 동료애를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강릉투어는 막을 내리고, 지금은 다시 투어를 준비한다. 사찰에서 일하며 무릎을 심하게 다쳐 지금은 재활 중이지만, 꿈은 커 가기만 한다. 목발을 짚고 한걸음 한걸음 걸음마를 시작했고, 몇 주 만에 목발을 떼고 지팡이를 짚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팡이마저 떼어 버리고 무릎 보호대만 차고 걷고 있다. 비록 더딘 걸음걸이고 불안한 다리지만, 마음만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며 외치고 있다. ‘올해는 기필코 가고 말거다.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휴전선랠리를 꼭 하고 말거다.’

------------------
이우용 _ 동국대를 졸업한 후 봉은사 종무실과 불교생협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조계사에서 포교계장으로 일하며 불국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