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최고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지혜의 향기 - 내가 최고!

2008-05-30     관리자

어쩌다가 방송에서 떡장수 할머니가 덕산 스님에게 던졌다는 ‘과거심(過去心), 현재심(現在心), 미래심(未來心) 불가득(不可得)’의 질문 이야기를 할 때면, 이거야말로 현재 진행형의 작업에 목을 매는 ‘방송장이’들을 위한 화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분초를 다투며 일이 초에 파랗게 질리고, 십 몇 초면 시말서를 써야 하는 방송장이들은 그야말로 순간순간 점을 잘 찍어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업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디지털 뉴미디어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여전히 찰나의 매체이다. 한번 입 밖으로 내놓은 과거의 말은 현재에 주워 담을 수 없고, 순식간에 밀려오는 미래에 정신없이 대처하다보면 현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싶어진다. 그 순간의 날짜, 계절, 시간, 날씨, 사회적 이슈 등 모든 것의 영향을 받는 것이 방송에서의 말이고 감정이다. 어제는 공감대를 형성했던 말이 오늘은 전혀 다른 싸늘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십년 전엔 신선했던 단어가 오늘은 낡고 구태의연할 수 있다. 반면에 고색창연한 일화가 오히려 새롭다는 찬사를 받기도 하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거창하게 풀어놨지만 결국 한 줄로 요약하자면 방송에서 말한다는 게 하면 할수록 참 쉽지 않더라는 이야기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던 신입시절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세상은 나 아니어도 된다’라는 엄청난 사실이었다. 세상에 똑똑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면서, 눈 먼 경주마와도 같은 질주를 멈추고 한걸음 물러서게 되었다. 세 치 혀를 순발력 있게 잘 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고, 내가 아는 것을 마냥 늘어놓는다고 청취자가 즐거워하는 방송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아름 팔을 벌려 껴안을 수 있는 세계에서는 늘 충분하던 나의 상식과 지식이 한량없는 바다에 던져지면서 풀이파리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큰 충격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선배들에게 받아 쌓아놓기만 했던 다양한 불교서적이며, 여러 스님들께서 쓰신 책들을 찾아 읽게 되고, 두껍고 어렵다며 치워두었던 경전해설서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경전을 읽다보니 신심이 생기고, 스님들의 수행담을 읽다보니 환희심이 생겼다. 나도 한번 정진하여 기도 성취를 이루어 보고 싶다는 원력도 생겼다.
새벽 근무를 하던 시절 업무시작 전에 10분 정도 시간을 내어 독경하고 하루의 발원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방송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은 그 이상의 것을 갖추려고 애썼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개인적인 공부를 해 나가다보니 방송에서 말 하는 것이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조금 더 상냥해지고, 조금 더 심사숙고하고, 조금 더 진심으로 청취자를 대하게 되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모든 일은 자기를 돌아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절감하는 경험이었다.
몇 년 전부터 책상에 써놓고 매일 들여다보는 말이 있다. ‘행복한 방송, 긍정적인 방송, 종교방송다운 방송을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방송이 존재하는 의의이고 그 안에 내가 존재하는 의의가 아닐까? 방송에서 청취자분들께 자주 드리는 ‘제 방송을 듣기 전보다 듣고 난 후 1퍼센트라도 더 행복해시길’이라는 말에 진심을 담아본다. 그렇게 흘러가는 순간순간에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어디에서나 최고가 되는 가장 좋은 방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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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연 _ 1994년 불교방송 공채 4기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며, 1998년 조계종 산하 국제포교사를 품수했다. 불교방송에서 ‘퀴즈 대장경’, ‘영화음악실’, ‘음악의 마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거쳐서 현재 매일 낮 방송되는 ‘뮤직펀치’ 진행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