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자의 목소리] 성도절, 부다가야에서의 철야정진

2008-05-25     김정희

2008년 1월 15일 성도절 전야, 부다가야의 마하보디대탑 뒤의 보리수 아래 앉았다. 부처님이 대각을 이루신 자리라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깊었다. 이 자리에서 철야 용맹정진으로 깨달음을 얻겠다는 다짐을 거듭해 보았다. 내일 새벽 샛별을 보며 일어설 때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넘치리라. 이런 희망을 품고 자세를 바로잡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밤 9시가 되자 대탑과 성지의 출입문이 닫히면서 통행이 금지되었다. 이튿날 새벽 4시가 되어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는 아무도 출입을 못한다. 뒤쪽으로 약 5미터 떨어져 있는 담장 너머로는 개 짖는 소리가 몹시 크게 들렸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면서 손이 시리고 얼굴이 차가워졌다.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던 모기는 그 수가 점차 늘어나 벌떼처럼 달려들어 쏘아댄다. 그래도 참아내며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이따위 마군에 흔들릴 수 없지” 하고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 애쓰며 모든 집착을 놓아보려고 했지만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이 밤을 위해 2년을 준비했다는 환갑도 지나고 경험이 많아 보이는 비구를 쳐다봤다. 커다란 천으로 얼굴까지 모두 감싸고 편안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매년 성도절에 철야정진을 해오다 출가 60주년 기념으로 오늘 밤 여기 왔다는 비구니를 보니까 담요로 온몸을 포근히 감싸고 머리와 얼굴은 숄로 덮고 있었다. 저렇게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나는 참 준비한 것이 없었다.

그래도 가진 것이 뭐 있나 찾아보다가 점퍼 옆 주머니에 든 손수건 하나를 꺼냈다. 그것으로 얼굴을 가리고 긴 자락으로 머리통을 감싸 뒤통수에 대고 묶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신기할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모기도 쏘지 않을뿐더러 보온 효과까지 탁월했다. 한 꺼풀 천으로 가렸는데도 피부에 한기가 닿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내 옆에는 검둥이 한 마리가 당당히 버티고 서서 나를 보고 짖어 댔다. 아무래도 내가 앉은 자리가 자기 자리니까 비키라는 뜻인 것 같다. 밤 통금시간이 되어 인기척이 끊기고 나면 이 자리는 분명 검둥이 차지였을 것이다. 여태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 갑자기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 자기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니 경계하는 것일 터이다. 이렇게 알아차리고 보니 정말 미안했다. 마음속으로 “미안하다. 오늘 밤만 같이 좀 있게 해다오”라고 하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곁에 오라고 손짓을 해 보았다. 그러나 검둥이는 화가 풀리지 않는 듯 이리저리 다니며 계속 짖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탑을 돌며 행선을 하기로 했다. 대탑 주위에는 이국의 수행자들이 탑돌이하며 오체투지하거나 텐트 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천천히 발을 들고 내밀어 놓았다. 나도 이렇게 행선을 하여 도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원을 세워 봤다.

대탑 우측에는 티베트 스님 세 분이 나란히 서서 대탑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그 스님들 뒤를 조심스럽게 지났다. 다시 한 바퀴 돌아왔을 때도 그 스님들은 열심히 저돌적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또 한 바퀴 돌아왔을 때 세 스님은 절을 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서 있었다. 다가가 보니 중강아지 한 놈이 토끼처럼 뛰어와, 가운데 스님 앞에 깔아 놓은 깔개 가사를 앞발과 입으로 물고 끌어당겨 놓고 있었다. 옆의 두 스님은 미소를 짓고 있고, 가운데 스님은 강아지를 가만히 내버려 두고 합장을 한 채 보기만 하고 있었다. 나도 미소를 짓고 다가가며 스님들을 향해 목례를 했다. 스님들도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목례를 했다.

개들이 모두 잠든 밤은 더욱 깊어지고 모기 소리도 잦아들었다. 공기는 더 차가워졌고 사방은 조용해졌다. 이제 시간은 새벽으로 가는데 샛별을 보려고 해도 앞으로는 까마득히 높은 돌탑이 막고 있고, 위로는 잎이 무성한 보리수 가지가 지붕처럼 늘어져 있어 하늘을 볼 수 있는 빈틈이 없다.

다시 일어섰다. 천천히 걸으니 고요함 속으로 나가는 듯했다.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있는 듯한 상태로 대탑을 돌았다. 이제 이 성지 안에 움직이는 중생은 나 혼자인 것 같다. 텐트 뒤를 지날 때는 코고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났다. 용맹 정진하던 티베트 스님 세 분도 승복을 머리까지 감싸고 뒷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졸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젠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대탑 정면에서 탑을 바라보며 부처님의 수행 당시의 모습을 그려봤다. 그리고 첨탑 위의 별을 보았다. 별들이 좀 작고 빛이 바래 보였다. 대탑 현관으로 올라가 조형물도 만져 보고, 불상들도 유심히 살펴 보았다. 계단 위 높은 곳에 올라서서 대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 옆에 서 있는 보리수의 검은 덩치도 바라보았다. 별과 돌과 나무를 번갈아 보다가 남은 밤을 새우고 말았다.

새벽 네 시. 출입문이 열리자 봇물이 터진 듯 티베트 스님들이 길을 꽉 메우고 올라왔다. 지금이 티베트 스님들의 순례 기간이라고 한다. 말없이 성지로 들어오는 엄청난 수행자들의 도도한 행렬을 보니 놀랍고 가슴 벅찼다. 티베트 수행자들은 나라를 잃고 지구 곳곳을 떠돌게 되었지만 그 인연으로 티베트 불교가 세계의 정신계와 종교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오늘 부다가야의 주인공은 바로 티베트 수행자들임을 분명히 보았다.

-----------------
김정희 _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와 경북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