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사는 닭

2001-07-01     관리자

[진리를 사는 닭]

지금은 닭고기를 사려면 냉동된 닭이 대부분이지만, 불과 20 여 년 전만 해도 살아 있는 닭을 닭장에서 한 마리 꺼집어 내어 그 자리에서 목을 따고 털을 벗겨 주었습니다. 닭장에서 자기 죽는 줄은 모르고 평상 시엔 모이만 열심히 먹고 옆의 닭들과 싸움이나 하던 닭이지만, 주인이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눈치를 채고 비명을 지르고 숨는다고 야단들 합니다.

그러나 그 좁은 닭장에서 도망 가 봤자 도망갈 데가 어딨겠습니까? 결국 한 마리는 주인 손에 잡혀 비명 속에 가 버리고 말지요... 그리고 그 뿐, 나머지 남은 닭들은 주인이 사라지자 말자 우루루 몰려 나와 다시 예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먹고 싸우고 재잘거리고 합니다. 또 주인이 나타나면 다시 우루루 도망가고... 그러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옵니다.

그런 와중에 이상한 닭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 녀석은 닭 치고는 자못 철학적이라, 버릇처럼 먹고 우루루 도망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왜 저 닭은 죽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주인만 오면 도망 다니기 바쁜가? 그리고 주인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똑같은 어리석은 삶을 되풀이 하는가? 이 날부터 닭은 먹고 도망 다니기는 하되 이전보다는 덜 덤벙대며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생각 떠 오르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삶을 살지 못해 그렇구나! 내가 왜 닭이 되었는지, 닭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을 모르고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사는 데만 정신이 팔려 그랬구나! 아! 나도 이제부턴 '진리의 삶을 사는 닭'이 되어야겠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닭은 그 후부터 나름대로 진리의 삶을 살아 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이웃들에게 설(?)합니다. 이웃들은 그런 그를 보고 반은 놀리는 마음으로, 반은 존경의 마음으로 '진리를 사는 닭'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리를 사는 닭이라고 하나 주인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할 수는 없는 법! 어느 날 '진리를 사는 닭'도 주인의 손에 걸려 여느 닭과 다름없이 끌려 나가고 맙니다. 끌려 가는 모습도 다른 닭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닭 주제에 진리를 산다고 해 봐야 주인이 크게 달리 대우해 주겠습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하나! 웃으며 끌려 가는 것이었죠.
그리고 남은 닭들 앞에 나름대로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 보던 다른 닭들은 무언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았으나 그 뿐, 주인이 사라지자 다시 우루루 몰려 나와 예전처럼 다시 먹고 싸우기 바쁩니다.

우리의 사는 모습도 이런 닭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맑았던 적은 어릴 때 잠시뿐, 사춘기와 함께 삶의 고달픔을 배워 나가는 우리는 평생을 돈이나 권력, 명예, 또는 자식 행복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삽니다. 그러다 돌연 뜻하지 않게 죽음이 찾아 오면, 우리는 그야말로 혼비백산 하다 주인에게 끌려가는 닭장 속의 닭처럼 비명만 남기고 가는 곳 모르는 곳으로 가 버리고 맙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인생의 무상을 느끼는 것도 잠깐, 남은 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침이 오면 다 잊어 버리고 욕망을 쫓아 똑같은 삶을 살아 가지요... 마치 닭장 속의 닭들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진리의 닭이 진정 진리를 깨달았는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또 무엇을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가더라도 우리는 저렇게 당당히 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녕 진리를 알고 진리의 삶을 실지로 지금부터 살아 갈 때, 우리도 가는 날 아무 미련없이 웃으며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