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시심] 거울 속에서 산다

선심시심(禪心詩心)

2008-05-24     이종찬

   거울 속의 사물은 거울 밖의 사물과 구별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비춰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참과 거짓이라는 두 극단의 차이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거울 속의 것을 거짓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하건만 우리는 이 거짓에서 사실을 이해하거나 참의 사실을 알고 있음은 웬일일까? 내 몸은 내가 소유한 것으로서 나의 실체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거울 속의 나를 봄으로써 비로소 내 얼굴의 윤곽을 파악하게 되니, 이는 분명히 허상에서 오히려 실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월식이 있었다. 둥그렇던 달이 점점 가리어지고 말았다. 이때 가리는 물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달과 닮았다는 것을 안다. 이때 달은 거울이요, 가리운 그림자는 지구의 허상이다. 우리는 이 허상으로 해서 내가 사는 지구의 실상을 본 것이다. 거울에 비춰 진 내 모습에서 비로소 내 모습을 찾는 것 같다. 천경대사의 시는 어쩌면 이런 면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큰 들은 동해 바다에서 끝났고,
     층층 봉우리는 북극까지 아슬하다.
     성 아래 물 굽어보니
     사람은 거울 속 다리를 지나네. 

     大野東溟盡    層峯北極遙 
     俯看城下水    人渡鏡中橋 
     <樂民樓>

   들이 넓고 크다는 것은 바다가 앞에 가로 놓였기 때문이고, 봉우리가 높고 아슬히 먼 것도 북극성이 위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다는 들의 거울이요, 북극성은 봉우리의 거울이다. 이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저 물 밑에는 사람이 거꾸로 서서 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내 몸 자체가 이 지구에서 하나의 허상으로 있다 가는 것인데 그 허상이 물속에 또 비치어 그 허상으로 하여 내 몸이 실상처럼 착각되게 하는 것이다.  
   이발소에는 거울이 앞뒤로 놓여져 있다. 앞거울에는 내 몸이 비치고 뒷거울의 내 모습이 또 앞거울에 비친다. 이렇게 하여 여러 개의 내가 비쳐 나타난다. 과연 실체의 나는 어떤 것일까? 수많은 나의 허깨비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실체가 이런 허깨비일 것인데, 그래도 이 몸을 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천경 대사의 다음 시는 이러한 면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 너를 따르고 너는 나를 따라
     70여 년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내 온 뿌리로 가고
     너 이 세상에 남아 있더라도
     이 허깨비를 가지고서
     후세 사람 속이지 말라. 

     我隨渠也渠隨我    七十餘年不暫離 
     我若歸根渠在世    莫將僞幻後人欺 
     <影自讚>

   자신의 초상화에 찬한 시다. 초상화는 이 몸의 허상이다. 허깨비인 것이다. 시 전편의 문맥으로 봐서 그 결귀가 뜻하는 것은 70여 년 동안 이 허깨비를 따라다닌 허깨비로 남아서 다시는 더 이상 사람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 되겠다.
우리는 허깨비인 이 몸에 집착하지 말고 그 본체 진여의 여여한 실상을 찾아야 이 허깨비의 너울을 벗을 것이다.

동국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