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의 통치를 설하다

경전의 바다 - 전륜성왕수행경(轉輪聖王修行經)

2008-05-23     관리자

불교에서는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함께 이야기한다. 세간법은 중생의 현실세계를 가리키며, 출세간은 세간을 초월한 이상세계를 가리킨다. 중생을 상대로 한 설법에서는 어디에서나 출세간을 목표로 삼아 발심하고 수행하며 증득하고 교화할 것을 말한다.
그래서 세간법을 언급할 경우에는 반드시 방편과 진실을 분별한다. 비유와 상징으로 어우러진 설법을 통해 중생으로 하여금 현실의 집착과 번뇌를 벗어나도록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마치 부모를 잃고 길을 헤매면서 울고 있는 어린이에게 과자나 장난감을 주어 울음을 그치게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어 부모를 찾도록 해주는 것과 같다.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방편으로써 정법의 통치를 실현하여 중생의 세간을 잘 다스리는 전형적인 인물로서 전륜성왕(轉輪聖王: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전륜성왕이라는 개념은 불법의 가르침을 세간의 모든 중생들에게 직접 실현시키려는 불교의 이상적인 세계관의 발로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장아함경』가운데 등장하는 『전륜성왕수행경』이다. 부처님께서는 1,250명의 대비구와 함께 마라루국에 머물고 계셨을 때 ‘자기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라. 자기에게 귀의하고 진리에 귀의하여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고 설법하셨다. 그리고는 그 의미와 방법에 대하여 ‘안팎으로 자기의 몸을 관찰하고, 부지런히 수행에 힘쓰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여 세간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자기의 감각과 마음과 법을 잘 관찰하여 탐욕과 걱정을 다스려야 한다.’고 설법하셨다. 이것이 소위 사념처(四念處: 몸을 관찰하는 身念處·감각을 관찰하는 受念處·마음을 관찰하는 心念處·진리를 관찰하는 法念處)의 수행으로서, 부처님께서 일찍이 모든 수행자들에게 제시한 가르침이었다. 이로써 어떤 악마도 침범하지 못하고 그로 인한 공덕은 날로 증장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오래전 과거 세상에 살았던 견고념(堅固念)이라는 찰제리 종족의 왕을 예로 들었다. 견고념왕은 정법으로 사천하(四天下 :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방의 승신주, 남방의 섬부주, 서방의 우화주, 북방의 구로주의 네 가지 중생세간)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으로, 금륜보(金輪寶)·백상보(白象寶)·감마보(紺馬寶)·신주보(神珠寶)·옥녀보(玉女寶)·거사보(居士寶)·주병보(主兵寶) 등 7보를 구족하고 있었다. 견고념왕은 때가 되어 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부탁하였다.
“정법에 의하여 다스리고 정법을 공경하라. 정법을 관찰하고 정법을 으뜸으로 내세워라. 정법으로 관리와 바라문과 사문과 백성을 보살피고, 금수에 이르기까지 널리 자비로써 다스리거라. 교만을 버리고 인욕하라. 모든 사람들을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고요한 숲에서 홀로 수행하며 홀로 번뇌를 그치고 홀로 열반에 이르며, 탐욕을 버리고, 남을 교화하며, 성내지 말고, 어리석음을 버리며, 악에 물들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 몸과 입과 마음을 순수하고 곱게 지니며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고, 의식주에 만족으로 느끼며, 중생을 복되게 하는 사람을 자주 찾아가 정법을 묻고 그 가르침을 따라 행하거라. 그리고 마음으로 깊이 백성을 잘 관찰하여 어렵고 외로우며 고독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가난한 자를 거절하지 말라. 국가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전륜성왕이 수행해야 할 덕목이다. 그러니 잘 받들어 지녀야 한다.”
그리고 견고념왕은 몸소 수염과 머리를 깎고 수행자의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나 수행의 길에 나섰다. 이후로 여섯 번째 왕에 이르기까지 전륜성왕의 전통은 동방과 남방과 서방과 북방으로 사천하에서 널리 잘 유지되어 갔다.
그러나 일곱 번째 왕에 이르러 전륜성왕의 전통이 잘 지켜지지 못했다. 정치는 공평하지 못하고, 천하가 원망으로 가득 찼으며, 국토가 줄어들고, 백성들은 지쳤다. 이에 현자를 불러서 자문을 구하여 선정을 베풀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빈곤해지자 도둑질이 성행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둑이 붙잡혀 왕에게 끌려왔다. 왕은 가난 때문에 도둑질을 한 것을 알고는 많은 재물을 주어 방면하였다. 이로써 점차 소문이 나자 일부러 도둑질을 하여 왕으로부터 재물을 챙기는 자들이 늘어났다. 그러자 마침내 왕은 도둑질을 한 백성에게 재물을 주지 않고 차꼬와 수갑을 채워 거리에 돌린 뒤에 벌판에서 처형하였다. 그러자 민심이 흉흉해졌고 백성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칼과 창을 준비하면서 살생이 빈번해졌다. 이러한 인연으로 10악(十惡: 살생·도둑질·사음·거짓말·욕설·이간질하는 말·사탕발림 말·탐욕·성냄·어리석음)이 성행하여 점차 인간의 평균수명이 10세까지 줄어들었다.
그때 지혜로운 자가 나타나 숲에서 수행을 하여 10악업을 반성하고 10선(十善: 방생·보시·청정범행·진실한 말·화합하는 말·칭찬하는 말·곧은 말·계를 지킴·선정을 닦음·지혜를 발생함)을 닦자 인간의 평균수명도 점차 늘어나 8만 세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하여 널리 설법하고 많은 제자를 거느리며 중생을 제도하자 세상은 다시 예전의 전륜성왕 시절처럼 태평스럽게 되었다. 이로써 일곱 번째의 전륜성왕도 마침내 바라문과 사문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체를 보시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출가하여 현생에 진리를 깨쳤다는 것이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선행을 닦으면 수명이 늘어나고 재보가 풍성해지며 법력을 구족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선(四禪: 색계에서 닦는 네 단계의 선정. 초선·제2선·제3선·제4선)을 닦아야 한다. 초선에서는 세간의 번거로움을 벗어나서 기쁨과 즐거움을 터득하는 이생희락(離生喜樂)을 얻고, 제2선에서는 선정으로부터 기쁨과 즐거움을 터득하는 정생희락(定生喜樂)을 얻으며, 제3선에서는 기쁨조차 벗어나 마음의 고요한 경지를 터득하는 이희묘락(離喜妙樂)을 얻고, 제4선에서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벗어나 마음에 평등을 터득하는 사념청정(捨念淸淨)을 얻는다.
나아가서 4무량심(四無量心: 즐거움을 주는 慈無量心·괴로움을 덜어주는 悲無量心·남과 더불어 기뻐하는 喜無量心·마음에 차별심이 없이 평등한 捨無量心)과 사성제(四聖諦: 현실의 고에 대한 자각인 苦聖諦·고의 원인에 대한 자각인 集聖諦·고를 벗어난 상태에 대한 자각인 滅聖諦·고를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자각인 道聖諦)를 닦아야 한다고 설하였다. 이것은 전륜성왕뿐만 아니라 모든 불자들이 닦아야 할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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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귀 _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서, 『조동선요』, 『묵조선』, 『묵조선의 이론과 실제』, 『선문답의 세계』, 『금강경 찬술』 등을 저술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