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수필] 새로운 시작

2008-05-23     류지호

지난 주까지만 해도 무척 추웠던 날씨가 거짓말같이 풀어졌습니다. 석촌호수 가를 천천히 걷다 보니 근처 놀이공원을 찾은 이들의 즐거운 함성 소리가 들려옵니다. 양지바른 산책로를 따라 걷는 이들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합니다. 꽃소식이 들려오려면 좀더 기다려야 겠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벌써 하나둘 꽃송이가 피어나고 있나 봅니다.

지령 400호! 매월 한 번씩이니 400개월, 33년 4개월, 12,165일이 지났습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기쁜 일, 슬픈 일, 놀라운 일, 황당한 일, 보람찬 날, 후회스런 날….

어제도 12시 넘어까지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계속되는 야근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자신들의 소명을 완수하고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일꾼들입니다. 우리 불광출판사의 가족으로는 2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온 허성국, 윤애경, 남동화가 있고, 김명환, 사기순, 김소현, 양동민은 짧게는 8년 길게는 15년이 넘게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권순범, 이영순, 하지권은 작년에, 정선경은 올해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지금은 없지만 많은 이들이 이곳을 일터로 삶터로 여기다 갔을 것입니다.

400호가 발간되어 독자에게 전달되고,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사무실은 부쩍 늘어난 격려 문의 전화 때문에 더욱 부산해졌지만 직원들은 마냥 즐거워합니다. 생각해 보면, 월간 「불광」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창간하신 광덕 큰스님을 비롯해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훌륭한 스님들과 많은 청신자 청신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스님의 원력과 정진, 그동안 글을 써 주신 필자들, 꾸준히 지켜봐 주고 격려해 주신 독자와 후원자들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의 월간 「불광」이 있게 된 것입니다. 만드는 이, 보는 이, 후원 하는 이 등등 많은 분들의 땀과 눈물과 원력과 기원의 소산입니다.

불교계 잡지가 하강 곡선을 그린 지 오래 됐지만 반등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법륜」, 「법시」, 「불교사상」 등 적지 않은 유수의 불교잡지가 명멸을 거듭하는 속에서도 우리 월간 「불광」이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꾸준함을 유지해온 데 대해서는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역사만큼의 위상과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되는 대목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순수불교의 기치 아래 불교의 현대화·대중화·생활화에 기여해 온 우리 「불광」은 빛나는 전통은 계승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도 적극 대처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더욱 알찬 내용으로 독자들과 함께 삶의 기쁨과 희망을 느끼고자 합니다. 또한 바쁜 현대 생활인에게 쉼과 불교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잡지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불교계를 대표하고, 한국 더 나아가 세계에까지 월간 「불광」이 널리 읽혀지도록 최선을 다해 정진하고자 합니다.

그 매섭던 칼바람이 따스한 봄바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따사로운 햇볕 속을 걷다보면 찬란한 꿈길을 걷는 듯합니다. 거리의 사람들 표정도 주변의 환경도 새봄맞이의 환희에 차 있습니다. 우리 월간 「불광」 식구들도 400백호를 배포하고 401호를 만들면서, ‘아, 이제 새로 시작이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오늘 만들고 있는 한 호 한 호가 쌓여 앞으로의 월간 「불광」 ‘5백호, 6백호, 7백호, 8백호…’가 될 것입니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마음과 자세로 한 호 한 호를 만들어 나갈 것을 서원하고 또 다짐합니다. 대중들의 경책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