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운하와 불교계의 대응

연중특별기획-이 시대를 진단한다 한반도 대운하! 희망인가, 재앙인가

2008-05-23     관리자

대규모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불교계는 이미 지난 대선과정에서 중요한 경험을 한 바 있다. 북한산 관통공사 반대운동, 경부고속철도 금정산과 천성산 관통공사 반대운동, 그리고 새만금 사업 반대운동이 그러한 것들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반대운동들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불교계가 우리나라 중요 사회현안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 그리고 수경 스님과 지율 스님 등 스님들이 환경운동을 선도하였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경 스님과 지율 스님과 같이 선방에서 수행하시던 중진 스님들이 중심점이 되어 비폭력적이면서도 불교적 방법으로 환경운동을 이끌어 갔다는 사실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러한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생명과 자연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수경 스님의 삼보일배와 지율 스님의 단식은 무자비하게 파괴되어 가는 이 시대의 자연과 뭇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이미 착공된 사업에 대한 사후반대운동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다. 결국 사업은 원래대로 추진되었고, 그로 인한 불교계 내부의 좌절과 반향도 컸다.

필요성·경제성·타당성의 철저한 검증 ●
이번에 추진되는 한반도 대운하도 국가의 비전과 관련하여 진정으로 필요한 일인가, 그리고 사업을 추진한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교계의 전반적인 평가가 있어야 한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도와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운하에 관한 찬반토론회의 좌장을 맡아 관련 자료들을 찬찬히 검토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결론은 운하를 건설하는 편보다는 건설하지 않는 편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파괴·수질오염·문화재훼손 등과 같은 부작용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운하사업을 추진하는 측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의 추진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시화호와 새만금사업에서 보듯이 사업의 목적, 내용, 소요비용이 애당초 계획했던 것과는 달라지고 그 부작용 또한 심각했던 국책사업이 많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이 단지 국책사업이고, 이미 착공된 사업이라는 이유로 강행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해 왔다. 그것은 대부분의 국책사업이 사업 자체의 합리성과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결정에 따라 추진되어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운하는 물 흐름을 정체시킴으로써 수질을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상수원의 대부분이 하천수인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그렇잖아도 문제가 있는 하천의 수질을 악화시켜 새로운 환경재앙을 초래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한강과 낙동강은 수도권과 영남지역 삼천만 국민의 젖줄이다. 낙동강 페놀사고와 중금속파동 등과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강과 낙동강은 수질오염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개발로 인한 경제효과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실정에서는 전 국민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수질오염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물론 이와 같은 여러 부작용들을 고려하더라도 운하를 건설하는 편이 더 큰 효과가 있다면 충분한 검증을 거친 다음에 추진하지 못할 것도 없다. 운하 사업은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획 중에 있기 때문이다.

▲ 대운하 반대 종교인 100일 도보 순례 - 종교인 16명이 주축이 되어 대운하 건설 예상 구간을 걷고 있다.
한반도 운하에 대한 바람직한 방안 ●
운하 자체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이 시대와 미래시대를 위하여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검토가 있어야 한다. 영혼 없는 사람처럼, 가치 없는 사업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문제로서, 제시한 공약의 내용대로 확실하게 검증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한반도 운하 계획 자체의 무모함은 차치하고라도, 그 공약의 추진과정과 방법은 옳기 때문이다. 공약대로 철저한 검증작업을 거치고, 순수한 민자사업으로 추진한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철저한 검증작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백지상태에서 구체적인 사업내용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검토에는 찬성 측 및 반대 측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하여 예상되는 문제점과 효과를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사업추진의 타당성이 확보되면 사전예방적 관점에서 철저한 환경영향평가 등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한 후에 사업을 착공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 자체의 타당성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별법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는 곧 철저한 검증 없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민자사업 또한 사후에 수익을 보전해 주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만을 놓고 본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들의 결정이고 부담이지만, 미래를 본다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세금부담을 넘겨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민자사업은 정부가 선정한 분야에서 민간사업자가 시설을 건설한 뒤, 정부에 소유권을 넘겨 20~30년간 정부로부터 임대료와 부대사업으로 수익을 보전 받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결국 말은 민자사업이지만, 실질적인 비용은 국가로부터 보전 받고 있는 것이다. 순수한 민간투자만으로 사업이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터미널지역의 개발이익 및 권리와 같은 실질적인 수익을 보장해 주는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된다. 이 경우에는 부동산투기가 조장되어 전 국토가 투기장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순수하지 못한 민자사업의 부작용도 해결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라면 그것은 곧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의 미래를 희생시키는 일에 다름 아니다. 계획단계에서 철저한 사전 검증을 한 후에 전 국민의 힘으로 제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정말 타당성 있는 사업이라면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순수한 민자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오랫동안 우리는 존경할 만한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자신의 임기 내의 치적에만 얽매여 국가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초석(礎石)을 마련하는 것을 등한시했다. 특히 과거의 독재시대에는 어떤 국가적인 사업이든 일방적으로 추진되기 일쑤였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존경할 만한 대통령을 바라고 있다.
오늘의 새로운 대통령이 대운하사업에 대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느냐의 여부는 그가 존경할 만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게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것은 물론,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을 인정하는 것 또한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훌륭한 일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지금의 대통령이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승적(大乘的) 차원의 긴 호흡으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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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인 _ 부산대학교 지역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조계종 환경위원회 위원으로서 사찰환경과 불교문화재 보존에 힘쓰고 있다. 또한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위원, 건설교통부 전략환경평가위원회 위원, 경상남도 전통사찰보존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