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튼튼, 불교교리 한 토막] 8. 제법무아(諸法無我)

법(法)은 마음 작용으로 드러난 세상

2008-03-07     관리자


달마!
이 말은 일반인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如何是祖師西來意)?’이라는 화두의 주인공인 달마 스님 때문일 것입니다. 한때 달마도가 세상에 회자된 적도 있습니다. 이에 예불문 가운데 ‘달마야중(達摩耶衆)’에서 ‘달마’를 달마 스님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달마, 이는 범어 ‘다르마(dharma)’를 한자로 음역한 것입니다. 팔리어로는 ‘담마(dhamma)’라고 합니다. 의역하면 ‘법(法)’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달마인 법은 무엇을 말할까요?
달마인 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뜻합니다. 예불문의 ‘달마야중’에서 ‘달마’가 이것입니다. 이 ‘달마’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가운데 법보를 말합니다.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자신을 등불로 삼고 가르침을 등불로 삼으라)’에서의 ‘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삼법인 가운데 제법무아(諸法無我)에 해당하는 ‘법(法)’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제법무아’에서 ‘법’은 무엇을 말할까요?
보통 ‘법’을 ‘세상만물’, ‘사물’, ‘존재’로 풀이하여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제법무아’에 대해 예를 들면서, 그 사물에 사물이라고 할 자성(自性)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이 볼펜은 볼펜 뚜껑, 볼펜 대, 볼펜 심, 스프링 등 여러 가지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볼펜이라고 할 것이 없다.” “물도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이라고 할 고정된 자성이 없다. 제법무아에서 ‘아(我)’는 자성(自性)을 말한다.” 등등.
여기서는 ‘법’을 ‘세상만물’, ‘사물’, ‘존재’ 등이라고 할 때, ‘세상만물 그 자체’, ‘사물 그 자체’ 등으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이 역시 ‘무아’의 측면을 강조할 수 있는 예로서는 유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의 개념으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법유식(萬法唯識)’을 이해하는 데 문제점이 생깁니다.
만약 법을 ‘세상만물(그 자체)’ 등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일체유심조’나 ‘만법유식’의 뜻은 ‘마음이 세상만물(그 자체)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실제 산이나 강이나 바다를 만든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이렇게 이해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법’이라는 용어를 ‘세상만물(그 자체)’, ‘사물(그 자체)’ 등으로 이해하면서 ‘마음이 산 그 자체, 강 그 자체를 만든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스스로 사고에 모순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고정된 실체는 없다
그럼 이러한 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필자가 고등학생일 때 일입니다. 더운 여름날 친구 집에 놀러가 세수를 하고 눈에 보이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습니다. 장난꾸러기 친구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물었습니다. “얼굴 다 닦았나?” “응.” “그거 걸레다.” “…”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감이 오십니까.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앞에 찻잔이 있고 그 밑에 찻잔받침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받침대에 과일을 담아 왔습니다. 또 어느 날 보니 그 받침대를 재떨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조그마한 화분받침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물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에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드러난 ‘수건’, ‘걸레’, ‘찻잔받침대’, ‘접시’, ‘재떨이’, ‘화분받침대’ 등이 바로 ‘법’입니다. ‘수건’이라고 하자니, ‘걸레’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찻잔받침대’라고 하자니, ‘접시’, ‘재떨이’ 등으로 사용합니다. 하나의 사물에 그것이라고 할 고정된 이름이 없습니다. 그것이라고 할 고정된 자성이 없습니다.
이렇듯 ‘제법무아’의 이치가 드러납니다. 덧붙여 언급하자면, 공(空)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수건을 수건이라고 할 고정된 자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없다고 한다면 수건이라고 생각하는 그 수건은 없다는 것입니다. 수건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마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즉, 법은 ‘세상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여건 속에 마음 작용을 따라 ‘나에게 드러난 세상’을 말합니다. 물론 그때 마음 작용도 법입니다. 법을 ‘현상’, ‘인식현상’이라는 철학용어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수건’, ‘걸레’, ‘찻잔받침대’, ‘접시’ 등은 그 사물에 고정된 실체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여건에 의해 나와 관계지어 일어난 것입니다. 즉, 마음 작용으로 연기(緣起)된 것이지 그 사물 자체에 ‘수건’, ‘찻잔 받침대’ 등의 고정된 실체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그때 규정되고 이해된 것을 밖에 실재로 고정된 그것으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전도몽상(顚倒夢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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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경찬 _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이다. 저서로 『불교입문』을 공동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