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넘어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는 이스탄불

오아시스 실크로드를 가다 2 - 터키 이스탄불

2008-03-05     관리자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이어지는 역사유적_____
이스탄불은 1600년간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그리스 문화와 이슬람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궁전과 모스크(이슬람사원)와 교회 등의 건축물을 보면서 이스탄불은 시공간을 넘어 다양한 문명이 공존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이스탄불이라고 하면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멋진 낭만과 화려함을 떠올리곤 했었는데, 그런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위로 전차가 달리는 풍경 또한 이스탄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이스탄불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구시가지인 ‘술탄 아흐멧’에 이스탄불의 역사 유적들이 몰려 있으며, 이 지역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아야소피아 광장’에는 ‘블루(Blue) 자미’와 ‘아야소피아 성당’ 그리고 ‘톱카프 궁전’이 있어 이스탄불의 역사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야소피아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360년에 교회 건물로 지어졌지만,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되고 나서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었다. 이때 모자이크로 된 기독교 성화는 회칠로 덮여지게 되었다. 그 후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면서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회칠로 덮여진 모자이크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였다. 북쪽의 통로를 이용해 2층 갤러리로 올라가서 잘 복원된 서너 점의 모자이크를 보았다.
비잔틴시대에 비상시를 대비해서 만들어졌다는 지하 물 저장고는 조금은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336개의 대리석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서 지하궁전이라고도 하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어두컴컴한 공간에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지하궁전을 더욱더 음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한다는 무서운 괴물인 메두사(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의 머리를 받침대로 사용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은 지하궁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메두사의 머리는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거리는 뱀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메두사의 머리는 부적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모자이크화
오스만제국의 중심, 톱카프 궁전_____

톱카프 궁전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지만, 오스만 제국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의 기나긴 영욕의 시간들을 지켜보았던 톱카프 궁전은 눈발이 날리는데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회랑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주방건물이 나온다. 그 주방에서는 궁전에서 일하던 5,000명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였으며, 하루에 200마리의 양을 소비하였다고 한다. 주방 옆에는 10,000점도 넘는 도자기를 보유하고 있는 도자기 전시관이 있다. 용무늬가 그려진 넓은 접시를 비롯하여 청자빛 도자기들은 저 멀리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것들이 틀림없다.
세 번째 정원에 들어서자 금남의 구역인 하렘(이슬람 사회의 부인들이 거처하는 곳)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하렘입구에는 흑인 환관들의 방이 있다. 하렘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술탄이 연회를 즐겼던 방이 있고 애첩들이 기거하던 방이 있다. 대리석으로 된 목욕탕은 금도금으로 장식되어 있어 참으로 화려하다. 하렘은 술탄(이슬람 군주의 칭호)의 어머니부터 해서 궁전의 모든 여인네들이 기거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술탄이 여인네들과 어울려 한바탕 질탕하게 노는 공간이었기에 사람들의 상상력을 끝없는 관능의 세계로 몰아가는지도 모른다.

▲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한 블루 자미의 내부
톱카프 궁전에는 세밀화를 전시하고 있는 공간도 있다. 세밀화를 그리는 궁정화가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을 읽었기에 세밀화에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술탄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전쟁터에서 싸우는 장면까지 다양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바늘귀 안에도 별들이 도는 밤이 있다_____
‘베야짓 광장’에서는 ‘이스탄불 대학’과 ‘슐레이마니예 모스크’와 ‘그랜드 바자르(시장)’를 볼 수 있다.
오스만 최고의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이 술탄 ‘슐레이만’의 지시로 슐레이마니예 모스크를 지었다. 슐레이만은 오스만 제국을 전성기로 이끈 최고의 술탄이었는데, 그는 한 평생 오직 러시아 여인 ‘록셀라나’만을 사랑하였다. 록셀라나는 톱카프 궁전에 노예로 팔려 왔지만 슐레이만의 눈에 띄게 되었다. 슐레이만에게는 장남 ‘무스타파’를 낳은 ‘마히데브란’이 있었지만, 록셀라나는 슐레이만을 졸라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나중에 록셀라나는 피의 숙청을 단행하여 장남 무스타파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래도 슐레이만은 록셀라나가 죽으면 자신의 무덤 옆에 안치해 줄 것을 유언하였다고 하니 그의 일편단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탁심 광장에서 만난 보컬그룹
슐레이마니예 자미의 뒤뜰에 위치한 록셀라나의 튜르베(무덤)에 가 보았다. 녹색 천으로 덮여진 록셀라나의 관을 보았다. 술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도 항상 빼앗길 것을 염려하였던 한 여인의 지독한 소유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랜드 바자르는 슐레이마니예 모스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랜드 바자르는 없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대형시장으로서 실크로드의 종착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동서양 문물을 교환하는 장소가 되었기에 실크로드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보석, 카페트, 가죽, 도자기, 악기, 의류, 수공예품 등등 모든 종류의 상품이 거래되고 있어 볼거리도 넘쳐났다. 그랜드 바자르의 상인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대상들의 후예들인 만큼 장사에 능하다고 한다.
평소에 루미의 시를 좋아하였기에 메블리나 공연이 있다는 ‘시르케지 역’으로 갔다. ‘세마’라는 춤인데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인 ‘메블리나 제랄레딘 루미’가 창시한 메블리나 종파의 종교의식이다. 원통형 모자를 쓰고 검은 망토를 입은 데르비쉬[메블리나 춤을 추는 사람, 수피(이슬람교의 신비주의 종파) 종단의 탁발 수도승]들이 들어왔다. 원통형 모자는 자신의 묘비를, 그리고 검은 망토는 무덤을 상징한다. 이들은 메카(이슬람교 성지)를 향해서 예를 올리고 나서 검은 망토를 벗어던지고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은 하얀색의 옷은 에고의 죽음을 상징한다. 수피들은 춤을 통해서 신과의 합일을 구하는 것이다. 명상에 잠긴 듯한 데르비쉬들의 얼굴 표정과 흰옷이 자아내는 정갈함, 야단스럽지 않게 빙그르 도는 춤사위가 어우러진 공연장은 경건함으로 가득 찼다. 루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한 알의 밀알 속에 수천 개의 밀 다발이 쌓여있다/바늘귀 안에도 별들이 도는 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