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警文

지상강단[4]

2008-02-27     관리자
  머리말

  아무리 서울의 지리를 잘 알고 또 훌륭한 자동차가 있더라도 차를 모는 운전수의 참된 각성이 없이는 가고자 하는 곳에 이를 수가 없다. 각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며, 법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늘 점검하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불교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계율과 선정에 대해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도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올바른 지혜가 없으면 윤회를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 이른다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항상 슬기로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경책을 가함으로써 수도정진의 반연을 삼는 것이다.
  야운스님이 스스로를 꾸짖고 경책하고 참회하고 반성하며, 그 스스로의 삶을 계획한 이 자경문은 중국이나 일본의 어느 수도인의 자경문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이 자경문을 택하여 치문의 교재로 삼았는지 모른다. 그러면 야운스님은 어떤 분이며 이 자경문의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저자에 관하여

  저자 야운스님의 생애는 그 생몰년대가 분명치 않으며 따라서 이렇다 할 자료가 없다. 그런데다 신라시대의 야운스님과 고려시대의 야운스님의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대개는 후자의 설이 더욱 유력하다고 보는 것이 정평이다.
  신라의 야운스님에 대한 설을 살펴보면, 스님은 본래 금강산의 신선이었는데 원효스님의 법문을 도청(盜聽)한 것이 발각되어 천하의 제일이라고 자부하던 자기의 도력을 원효스님과 겨루게 되었고, 원효스님에게 패하게 되자 원효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경문 내용에서 조사관(祖師關)에 관한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신라의 야운스님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왜냐하면 신라시대에는 선(禪), 특히 조사선(祖師禪)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의 야운스님의 설을 들 수가 있는 것이다.
  고려 야운스님은 휘가 각우(覺牛)이며 야운(野雲)은 그의 호다. 그 전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해지는 것이 없고 다만 나옹(懶翁)스님의 제자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옹스님은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王師)로서 선(禪)의 오묘한 심지(心地)를 깨달은 아주 큰 스님이었다. 또 함허득통(涵虛得通)스님과 야운스님과의 주고 받은 서신이 있는데 함허득통스님이 야운스님에게 준 편지 가운데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강월헌 난간 앞에 강 달은 밝고
  야운당 뒤에는 들 구름 한가하다.
  구름과 달빛이 어울려 빛난 곳에
  한 집안이 고요하여 평안을 얻었다.
  江月軒前江月白 野雲堂上野雲閑
  雲光月色交煇處 一室含處體自安

  강월헌은 나옹스님의 당호(堂號)이며, 야운당은 야운스님의 당호다. 따라서 위의 시는 야운스님의 성격을 잘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중생을 섭인하는 점에서는 매우 자비롭고 평화스러운 모습이며, 진리를 구하고 사기(邪氣)를 제어하는 점에서는 굽힐 줄 모르는 굳건한 의지와 준엄한 표상이 야운스님의 성격이라 하겠다. 관세음보살의 혹자혹위(或慈或威)와 같다고나 할까?

  [2] 내용의 개요

  이 자경문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스스로 자기의 자신을 반성하고 경책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제 이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면 서론 격으로 총설(総説)이 있고, 본론 격으로 열 가지 항목을 두어 10문(門)을 세웠으며, 결론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마무리가 있다.
  총설에 다시 몇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주인공이여, 나의 말을 들으라.
  2.  출가를 하게 된 다행스러움.
  3.  말세라고 하여 걱정하지 말라.
  4.  깨달음으로 궁극적으로 법칙을 삼으라.
  5.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고 수행하라.
  6.  총설에 대한 거듭시송(重頌).

  다음에 본론에 열 가지 항목이 있는데 그 낱낱 항목마다 거듭시송이 따라 붙는다. 거듭시송이란 위의 산문형식을 다시 운율형식을 따라 간단하게 표현한 것을 뜻한다.

  1.  좋은 옷 맛있는 음식을 받아쓰지 말라.
  2.  내 것 아끼고 남의 것 탐하지 말라.
  3.  말은 적게 행동은 신중하게 하라.
  4.  착한 벗을 가까이 악한 벗을 멀리하라.
  5.  삼경(三更)을 제외하고는 잠자지 말라.
  6.  나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7.  재물과 이성에 대하여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8.  세속인과 어울려 남에게 미움을 사지 말라.
  9.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10. 대중처소에서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라.

  그리고 본론이 끝나고 나서 최종의 마무리로써 다시 몇 가지로 구분되는데 자세히 구분하여 보면 다음과 같이 열거된다.

  1.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하라.
  2 . 육도(六道)중생을 고루 사랑하도록 하라.
  3.  지혜와 신통변화를 갖추어 중생을 제도하라.
  4.  누구나 자아의 본연을 깨달으면 부처.
  5 . 부단히 정진하라. 인과응보가 두려운 것이다.
  6.  마무리에 대한 거듭시송(重頌).

  위의 구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론 · 총설에서는 주인공인 자기 자신의 마음을 상대로 하여「무엇 때문에 이처럼 온갖 대상에 끄달려 진정한 자아를 등지고 모든 악한 갈래에 빠질 짓만 하고 있는가」하고 자탄한다. 이 모든 것은 진여의 올바른 법을 어기고 어리석게 인연에만 따라가는 데에서 비롯됨을 뜻한다. 그러나 다행히 인간으로 태어났고 또 출가를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하게 되었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여 자아의 본연을 깨달으면 비록 부처님의 재세시(在世時)는 아니더라도 부처님 곁에 상주하는 것과 같고, 비록 부처님이 계시는 세계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만약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또 바깥 대상에 따라가기만 한다면 말세와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불법의 공부는 항상 자기의 마음만을 대상으로 닦아나가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척도로써 마음을 깨닫는 것을 최고의 이상적 법칙으로 삼는다고 한다. 현실의 세계는 대개가 진실을 등지고 삿된 세계로 흐르기 쉽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현실을 직시하고 부단히 정진할 것을 거듭거듭 간곡히 경고하고 있다.
  다음 본론의 열 가지 항목에서도 사치를 버리고 인색하지 말며 항상 베풀어 주어야 한다고 함을 역설하고 있다. 언어는 부드럽게 하고 행동은 신중히 하되 항상 안온하게 할 것을 강조한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기에 프랑소와 그레고와르는「인간은 환경의 소산물」이라 한 것이다. 선한 친구를 가까이하므로 선해지고 악한 친구를 사귀면 비뚤어짐을 알아야 한다. 가능한 대로 잠을 적게 자고 항상 겸손하여야 한다. 재색(財色)에 빠지지 말고, 출가인의 할 일이 분명히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며 남의 허물을 논하지 말고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기를 간곡히 얘기하고 있다.
  결론의 마무리에서도 야운스님은 앞의 서론, 본론의 내용을 이어받아, 게으르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되 언제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온갖 생명들을 사랑하고 그 목적은 그들 생명을 제도하는 데 두도록 하고 있다.
  서론에서도 밝혔지만 이 마무리 부분에서도 누구나 자아의 본연을 깨달으면 그대로가 부처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만약 이와 같은 경책을 소홀히 생각하여 정진하지 않으면 갈 곳은 분명히 지옥임을 자신에게 경고하고 있다. 결론의 거듭시송을 보더라도 스님의 간절함이 얼마나 간곡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세상은 무상한 것, 명예와 돈과 영화 온갖 욕망은 다 허망한 것이므로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3] 결론을 내리며

  본론에서도 밝히고 있듯이「마음 속에 온갖 욕망을 떠난 자가 사문(沙門)이요,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는 자를 출가(出家)라고 한다」고 함을 분명히 명심하여야 하리라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매일매일 일기를 쓰며 그날 그날의 삶을 반성하고 자기 내면의 세계를 성찰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그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누구인가, 그리고 부처는 누구인가, 부처는 누구이며 그 세계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