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바위 부처님이 뿜어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테마가 있는 사찰기행 -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는, 경산 팔공산 선본사(禪本寺) 갓바위

2008-02-26     관리자


간간히 선본사 갓바위 소식이 전해져왔다. ‘갓바위 부처님’으로 알려진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의 국보 승격 추진과 수능 시험을 앞두고 발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어느덧 마음 속에 갓바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었다.
살다 보면 뜻대로 순조롭게 풀리는 일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립하고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나고 보니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가득한 한 해였다. 새해를 맞으며 또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된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많다. 환희에 찬 활력이 간절해진다. 더 늦기 전에 팔공산으로 향했다.

본절 선본사, 윗절 갓바위
도립공원 팔공산(1,193m, 중악)은 경북의 영산(靈山)으로, 예로부터 토함산(동악)·계룡산(서악)·지리산(남악)·태백산(북악) 등과 함께 신라 5악으로 불리며 경배의 대상이 되어 왔다. 수려한 산세와 풍광을 자랑하며 대구, 경산, 영천, 군위, 칠곡 등 경북 내륙을 두루 아우르는 산이다. 또한 불교문화의 성지로서 산기슭 곳곳에 동화사를 비롯해 은해사, 파계사, 불굴사 등 수많은 크고 작은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해발 850m 지점에 위치한 관봉(冠峯)의 갓바위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조계사, 보문사와 함께 조계종 직영사찰인 선본사(禪本寺)는 팔공산 지맥의 아늑한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선본사는 한국불교 약사(藥師)신앙의 대표적 성지이자, 윗절 갓바위를 관리하고 있는 본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491년 극달 화상에 의한 창건설 외에는 연혁에 관한 내용은 거의 전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갓바위 부처님’의 유명세에 밀려, 경내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흐른다. 선본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맞은편 위로 올려다 보이는 관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갓바위까지는 20여 분 걸리는데, 산세가 상당히 가파르다. 그런데도 힘들다고 투정하거나 숨을 헐떡거릴 분위기가 아니다. 한눈에도 허리가 확연하게 구부러진 노보살님들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그 험준한 길을 고집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안쓰러움과 숙연함이 교차한다. 난간을 붙잡고 힘겹게 오르시는 노보살님 한 분을 부축하며 물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왜 안 힘들어.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왜 굳이 이렇게 힘든 곳까지 오르세요?” “갓바위 부처님께 기도드리러 왔지. 늙은이가 더 이상 바랄 게 있나. 자식들 잘 되면 그만이지.”

중생의 병고를 치료하는 약사여래불
수능도 끝난 데다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갓바위 앞 80여 평의 널찍한 공간엔 기도객들로 가득하다. 일년 중 가장 한가한(?) 때라 이 정도이고, 사람이 가장 많이 오는 새해맞이기도 때는 한두 시간을 줄서서 기다려야 갓바위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땀범벅이 되도록 연신 절을 하는 이도 있고, 그저 묵묵히 앉아 염주를 돌리는 이도 있다. 촛불을 켜고 향 하나를 사루는 데도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정성스럽다. 이 모든 이들을 갓바위 부처님은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높이 4m에 이르는 웅장한 갓바위 부처님의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팔공산 관봉 정상에 돌로 조성한, 앉아 있는 모습의 불상’이라는 뜻이다. 속명 ‘갓바위 부처님’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머리에 갓 모양의 판석(두께 15cm, 지름 1.8m)이 올려져 있는 데다 관봉이 우리말로 갓바위이기 때문이다. 판석 모양이 마치 학사모와 흡사하다는 이유로 수능 시험 등 각종 시험 기도에 영험이 많다는 입소문이 났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는 하루에 수만 명씩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갓바위 부처님은 원광 법사의 수제자인 의현 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638년에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얼굴 모습은 중후하고 근엄한 표정이다. 또한 이마 한 가운데는 ‘광명을 무량세계(無量世界)에 비친다’는 백호(白豪)가 둥글게 솟아 있다. 왼 손엔 약합(藥盒)을 올려놓은 흔적이 역력해, 예로부터 약사여래불로 부르고 있다. 약사여래불은 동방의 정유리세계(淨琉璃世界)에 머물며, 중생의 질병고를 치료하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을 일컫는다.

기대고 싶은 남성적인 매력
갓바위 부처님이 현세 사람들에게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군위에서 ‘제2 석굴암’이 발견되면서 팔공산을 본격적으로 조사하던 중, 1962년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게 되었고, 갓바위 부처님의 영험이 입을 타고 퍼져나가면서 ‘지성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속설이 굳어졌다.
갓바위에는 기도객들이 켜놓은 촛불이 365일 24시간 내내 빛을 발하고 있다. 가파른 산세는 물론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연간 200만 명이 갓바위에 오른다고 하니 그 위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갓바위 부처님은 보면 볼수록 남성적인 매력이 넘친다. 당당한 위용과 엄숙하면서도 살그머니 미소를 머금은 표정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그 누구라도 외면하고 기대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갓바위 옆, 작은 유리함에 넣어놓은 소원성취발원문을 들여다보았다. 특별히 대단한 것은 없다. 가족 건강, 시험 합격, 취업, 승진, 결혼 등 누구나 살면서 소박하게 바라는 것들이다. 간절히 기도하는 정성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설사 기대가 어긋나더라도, 기도하며 위안과 평온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기도를 끝내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이미 소원을 성취한 듯한 환희로움을 읽을 수 있다. 새해에는 갓바위 부처님의 가피력을 입어, 지성으로 기도하는 모든 소원이 성취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소원 성취를 이루었다면, 이제 어떻게 이웃과 사회에 회향할 것인지 즐거운 고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경산 선본사 갓바위 053-851-1868, www.seonbon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