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튼튼, 불교교리 한 토막] 7.제행무상(諸行無常)

.행(行)은 사물의 운동이 아니라 분별하는 마음 작용이다

2008-02-26     관리자


인생무상(人生無常)! 이 말에는 많은 의미와 감정들이 중첩됩니다. 보통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에서 이야기합니다. 허무감이 많이 묻어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불교를 접한 사람에게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떠올립니다. 제행무상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삼법인(三法印) 가운데 하나입니다. 보통 삼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또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말합니다. 따라서 불자들은 이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제행무상이란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인생무상’에서 오는 허무감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불자들은 말합니다. “제행무상은 인생무상처럼 허무감을 던져주는 말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습을 말한다. 변화하는 이 세상의 모습을!”
보통 제행무상을 이해시키고자 쉽게 설명합니다. “자, 봐라.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해가 뜨면 해가 진다. 어린이가 청년이 되고, 곧 노년이 된다. 어느 것 하나 항상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다 변화한다. 무상이다. 이 무상을 가장 잘 가리키는 말이 행(行)이다. 그래서 제행무상이다.”
여기서는 행(行)의 의미를 사물의 변화, 운동, 움직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화·운동한다는 측면에서 ‘세상 모든 것’을 ‘제행’이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세상 모든 것은 그렇게 변화·운동하는 것이니, 항상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변에는 “세상은 이처럼 변화하는 것이니, 무엇을 붙잡아 두려고 하지 말라. 붙잡아 두려고 하니, 괴롭지 않은가!” 참으로 쉽게 와 닿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결국 우리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제행무상의 의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승)대반열반경』 권13의 게송에서 ‘제행무상’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는 설산동자와 관련된 게송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행은 항상함이 없으니
시생멸법(是生滅法) 이는 났다가는 사라지는 법이라.

생멸멸이(生滅滅已) 나고 사라짐이 사라지면
적멸위락(寂滅爲樂) 고요함을 즐거움으로 삼네.

앞서 제행무상을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으로, ‘행’을 세상 모든 것의 ‘운동·변화’로 쉽게 설명하였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한 것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은 모두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행은 바로 생멸(生滅)의 뜻을 가집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뒤 게송 ‘생멸멸이(生滅滅已)’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사라지면’은 무슨 뜻일까? 앞에서 ‘행’을 세상 모든 것의 ‘운동·변화’를 뜻하는 ‘생멸’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생멸이 멸한다는 말은 운동·변화가 사라지는 것이니, 지금 겨울이 그냥 멈춰버린다는 말인가? 아니면 아침에 뜬 해가 그냥 중천에 멈춘다는 말인가? 아니면, 지금 이 청년의 나이로 쭉 간다는 말인가? 계절이 멈추고 해가 중천에 있고 청년의 모습을 쭉 가게 되면, 고요함(열반)을 즐거움으로 삼게 되는가?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열쇠는 행에 있습니다. 행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입니다. 여기서 행을 세상 사물의 운동·변화가 아니라 분별하는 마음 작용으로 풀이해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분별하여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며 살아갑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분별로 인해 나에게 드러난 것입니다. 원효 스님의 해골바가지물을 떠올려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생(生)이라 하고, 한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멸(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분별하는 마음 작용을 행이라 하고, 마음 작용에 의해 드러난 세상을 법(法)이라고 합니다. 드러난 세상인 법의 무상함을 마음 작용인 행으로 나타낸 것이 제행무상입니다. 즉, 제행에서 행은 마음 작용입니다. 따라서 ‘마음 작용으로 드러난 이 세상은 항상함이 없는 것이니[諸行無常], 이는 마음에 의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며 나에게 드러난 세상이라[是生滅法]. 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는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生滅滅已], 고요함(열반)을 즐거움으로 삼게 되는 것[寂滅爲樂]’입니다.
‘제행무상’ 가르침은 세상 자체가 무상하다는 것에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앞에 드러난 세상은 내 마음 작용으로 이해된 세상이기에 분별하는 내 마음 작용 따라 흘러간다는 뜻입니다. 배고플 때 맛있게 먹었던 자장면이 배부를 때는 고통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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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경찬 _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수료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이다. 저서로 『불교입문』을 공동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