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부처님을 좋아하는가

청소년 강좌

2008-02-12     관리자

■선재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다음은 선재와 선생님과의 문답을 정리한 기록이다.

■내 속에 흐르는 부처님의 피

선 재/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어서 오세요. 선재와의 만남을 기뻐합니다.

선 재/선생님께서는 왜 불교를 믿으십니까?

선생님/ 그건 내가 부처님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선 재/ 왜 선생님께서는 부처님을 좋아하십니까?

선생님/ 첫째로, 나는 한국인인 까닭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인 까닭입니다.

선 재/ 부처님과 한국인은 그렇게도 깊은 관계 속에 있습니까?

선생님/ 그렇습니다. 천 칠백여년, 부처님은 미족의 혼이 되어왔고, 불교는 한국사의 뿌리가 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자유를 성취하고, 예술을 창조 해 왔습니다. 불교의 광명 속에서 나라를 통일하고 고난을 극복해 왔습니다.

선 재 /그것은 과거의 일이 아닙니까?

선생님/ 선재, 뿌리 없는 나무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선 재 /뿌리 없는 나무가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선생님/ 뿌리를 옛 것이라고 해서, 낡았다고 해서 버릴 수 있습니까? 뿌리 없는 나무의 꽃 처럼, 불교를 떠난 한국사, 부처님을 떠난 한국인은 본래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 때 피어도, 그것은 가화(假花), 종이꽃에 불과합니다. 우리 아버지와 그 아버지, 어 머니와 그 어머니같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부처님의 피가, 따뜻한 체온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 고동치고 있습니다. 김 수환 추기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로마 박물관 성상 앞에서는 5분을 서 있지 못했다. 그러나 석굴암 불상 앞 에서는 한 시간이 넘어도 떠날 수가 없었다. 그건 아마 내 속에 부처님의 피가 흐 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샘터 1977년 5월호 별책 부록〉

선 재 /그러시다면, 지금도 부처님은 한국인의 뿌리이시군요.

선생님/ 물론입니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영원한 내일에 있어서도, 불교는 한국인의 혼이 요 뿌리이며, 구원한 신앙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부처님을 좋아하고, 불교를 나의 종교로 선택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일 아닙니까.

  ■부처님은 나와 당신의 영원한 친구

선 재/ 신앙의 선택에는 개인적인 동기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선생님/ 그렇습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정서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종교집단을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위협적이고 위압적인 구원관(救援觀)에 결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너희는 죄인이다. 말세가 가까왔다. 나를 섬기지 않으면 불의 심판을 받으리라.」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이렇게 공포를 선전하고, 그들 신 (神)은 너무 횡포의 권능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나는 결코 이러한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선 재/ 그럼 부처님은 누구십니까?

선생님 「아난다야, 그대들은 나를 좋은 벗으로 하여, 늙고 병들고 죽지 않으면 안 될 몸 이면서, 늙음과 병듬과 죽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느니라.」〈아함경〉

부처님은 우리들의 다정하고 평등한 벗입니다. 「나를 주(主)로 섬기지 말라. 주인 은 그대 자신이니라.」이렇게 나와 당신이 존엄한 저 생명의 주인임을 깨우쳐 보이 는, 인류사상 오직 그분뿐인 나와 당신의 겸허한 친구입니다. 그는 진실로 인류 앞 에 대자유〔解說〕의문을 크게 여신 「장의 벗」, 「자유의 인도자」이십니다.

선 재/ 부처님 세계 속에는 지옥과 심판이 없습니까?

선생님 그것은 너무도 자명(自明)한 이치지요. 부처님은 곧 대자대비(大慈大悲), 무한한 사 랑이신데<열반경>, 이 무한한 자비 속에 지옥과 심판의 그림자가 어찌 깃들 수 있 겠습니까.

지옥은 부처님의 뜻이 아니라, 누에가 스스로 제 고치 속에 갇혀 죽듯이, 우리 자 신의 허물로 엉클어진 죽음의 덫입니다.

선 재/ 이 때 부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선생님/ 이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여 살리시기 위하여 무한히 수고하십니다. 캄캄한 어둠 속 에 등불을 밝혀, 우리에게로 다가오십니다. 「오라 친구여, 여기에 길은 잘 설(設 ) 해져 있다. 어서 나와 함께 이 진리의 길을 가자.」

지옥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부처님은 지옥 속에서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십니 다.

■ 풀 한 포기도 차마 뽑지 못하는

선 재/ 불교는 이 세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선생님/ 피 흘리는 세계의 역사 속에서, 「불살생(不殺生)」의 고독한 깃발을 들고, 인류의 양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선 재/ 불살생의 깃발이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 세계의 역사는 피의 역사라고 합니다. 끊임없는 살육과 숙청과 증오의 악순환으로 인류는 미래에의 희망을 잃고 있으며, 종교마저 살벌한 이단전쟁(二段戰爭)으로 이 비극을 합리화하고 도리어 가세(加勢)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은 자연의 생물은 인 간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착각 때문에, 바다와 육지와 하늘의 생명들을 무한히 약 탈해왔습니다. 근대화와 번영과 풍요의 꿈에 취하여, 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산 풀을 밟으려 조차 하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손으로 뽑을 것인가」

<수능엄경>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외치고 계십니다. 이것이 불살생 아힘사(Ahimsa)의 계율 입니 다.

선 재/ 그것은 너무 무력(無力)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교가 떨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선생님/ 그래요, 이것은 확실히 무력(無力)한 길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제 영역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력(無力)한 힘 아니고는, 풀 한 포기도 차마 뽑지 못하는 이 연약한 자비 아니고서는, 이제 나와 당신과, 꽃과 나무와, 새와 물고기와, 하늘과 땅이 함 께 살아남을 길이 없지 않습니까. 힘으로 이기는 승리는 참 승리일 수 없다는 생명 의 진실을 이제 그만하면 깨칠 때도 되지 않았읍니까?

부처님은 결코 승리를 가르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도리어 크나큰 버림을, 크 나큰 포기를 간절히 가르치고 계십니다. 왜? 이 버림을 통하여서만 나와 당신은 진 실로 함께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은 채찍을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무서워한다. 내 생명에 이 일을 견주어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법구경>

부처님은 우리의 승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선 재/ 모든 것에서 이기기만을 신들리듯 가르치는 오늘의 사회, 오늘의 교육을 다시 생각 해 보지 않을 수 없군요.

선생님/ 세계사 가운데에서, 피 흘리지 아니 한 종교는 다만 불교 밖에 없읍니다.

선 재 /선생님, 감사합니다. 진지하게 생각하겠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