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 노스님

보리수그늘

2008-02-12     관리자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절에는 나이 지긋한 노스님이 계셔야 제격이다」라는 말을 들어 왔다. 본시 나의 출가는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고독을 즐기기 위해서 집을 떠났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간혹 눈물 섞어 빛은 밥을 먹으면서 그래도 이것만은 아닌데 하고는 소스라쳐 놀라는 때가 있다. 그것은, 앞에서 파리가 앉으면 금방 미끄러질 것 같은 박박 민 머리를 하고 공양을 드시는 노장스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의식이 샛길로 들어서서 이 삶을 답답해하는 사이에 하마 노스님은 공양을 다 마치고 숭늉을 들고 계신다. 이가 없어서 음식물을 잇몸으로만 우물우물 넘기기 때문에 속도가 빠른가 보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누가 뭐라고 하건 부처님 동산은 저 스님들이 지켜왔다. 아름드리 곧은 나무에 비길 수 있는 큰 스님이 못되었다 하더라도 불법(佛法) 동산을 지키는 수목의 소임을 다 한 것이 아닌가.」

산에는 곧은 나무만 있을 것이 아니다. 굽은 나무들과 그 밑을 받치고 있는 가지가지의 풀들이 있는 것이다. 승단도 마찬 가지다. 도가 높은 큰스님이 계신가 하면 그 스님의 뒤를 잇기 위해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여러 연배의 수도자들이 있다. 각처의 사람이 모인 곳인 만큼 바람이 불 때는 본의 아니게 시끄러울 때가 있다. 그러다가 바람만 자면 언제 그랬는가 싶게 잠잠해지는 것이다.

하여간 노장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없이 외경스러운 느낌이 든다.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기품이 서려 있는 것이다. 산전수전의 풍상을 다 겪은 훌륭한 가르침이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에 그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수도의 과정을 다 겪고 지금까지 청정하게 살아온 노장스님의 선연한 눈빛 그늘에 애수가 깃든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눈병 탓일까. 젊은 날의 회한을 떠올리면서 다 떠나고 없는 썰렁한 공간을 홀로 지키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아픔을 삭히는 때문일까?

골 깊은 산일수록 고목이 있으므로 해서 더욱 빛이 나듯 확실히 절에는 노장스님이 계시므로 수도장의 냄새가 짙게 풍겨나는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중 암자와 대부분의 절에는 노장스님들이 드물다. 그나마 몇 분 안 되는 노장스님들은 관광지 사암의 법당 촛불 지기의 소임 정도로 겨우 그 여생을 유지시키고 있는 슬픈 현실을 어찌하랴.

우리도 머잖은 날에 노장스님이 될 것이다. 그때 우리의 설 자리는 어느 곳이 될 것인가 생각하면 가슴이 하 썰렁할 뿐이다. *(스님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