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현대적 해명] 전생은 있는가

윤회의 현대적 해명 -애드가 케이시의 기록을 중심으로-

2008-02-06     관리자

 (1)머리말

필자는 전공이 경제학인데 그 방면에 무거운 짐을 지고 지내온다. 게다가 二ㅇ년부터 부처님 공부하기를 뜻을 세워 나름대로 불교 청년운동도 손대왔고 수행생활에도 뜻을 두어 온다. 심령에 관하여 필자가 특별한 수련을 했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약간의 연구와 선각자의 지도가 있을 뿐이다. 이번에 전생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서는 나의 연구보다 오히려 세계적인 권위자에 의하여 밝혀진 전생에 관한 이론과 실지를 소개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그것이 독자에게나 나 자신에게도 양심적인 자세이겠기 때문이다. 

(2)업보와 윤회

인생을 살아 간다고 하는 것은 우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자기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의 연속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인간욕망은 진시황제조차도 만족스레 채우지 못한 채 죽어갔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욕망을 보다 깊은 차원에서 충족시켜주고 영원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한 것이 종교가 아닌 가 생각한다.

종교가 필경 인생고에서 해방될 것을 목표로 하는 이상 거기에는 당연히 인생고의 정체가 무엇이냐를 규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인생을 다만 一회적인 현상으로 생각햐여 인간이 금생에 살고 있는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가 있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생활 태도나 신앙 내용에 따라서 죽은 후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느니 또는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니 하는 종교도 있는 것을 본다.

 현재가 바로 미래의 원인이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면 현재를 가져온 과거세의 존재도 당연히 인정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세상에는 우스꽝스러운 종교도 있는 것이며, 논리 밖의 고집을 집착하는  지성인도 있어 보인다. 오늘날 혹 전생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무지한 사람으로 돌리려 하거나 ,전근대적인 미신 신봉자로 돌리려 한다. 혹 전생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자리를 함께하는 것을 부끄러이 생각하는 지성인이 적지 않으니, 이것도 오늘의 다수가 그런 것이니 전생이야기를 하는 필자가 혹시 지탄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얼마전 불교인들의 신앙태도를 조사한 것이 대한 불교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그에 의하면 과반수 이상의 불교청년들이 불교교리가 좋아서 믿지만 전생은 믿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종교를 부정하는 사상과 교육이 활보하는 오늘의 조류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니 그럴 법도 한일이라 생각도 된다.
그러나 불교를 믿는다 하면 다음 두가지의 전제는 일단 해 두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첫째는 업보와 윤회다. 다들 아는 바와같이 사람은 자기 행위에 의해여서 결정되고그런 행위가 쌓이고 쌓여 업이 형성되고 이 업에 따라 천상이나, 인간이나, 또는 고통스러운 중생계를 윤회한다는 것은 불교인의 상식이다. 자기가 지은 행위가 자기의 현재를 가져오게하고 현재행위가 바로 자기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인과업보의 원리는 우리에게 주체적인 자기책임의 원리를 먼저 일깨워 주는 것이다. 나를 구속한 자는 남이 아니고 자기의 행위이다. 또 그리고 불교에는 또 하나의 기본 신앙이 있다.

그것은 구속적이며 고통스러운 현실세계에서 해방되는 자유와 권능을 각자가 지니고 있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행을 통해서 부자유스러운 현실에서 완전자유인 해탈을 얻는 것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완전한 인격을 이루며 이상적 국토를 성취하는 것이 불교인의 믿음이며 수행인 것이다. 이야말로 인류에게 안겨진 절대의 희망이며 권능이다. 오늘날 지성인들 간에 불교에 대한 매력이 늘어나는 것도 아마도 이런 데 있을 것이다.

하여튼 불교는 현실을 설명하는 법칙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일관하는 인과로 설명한다. 이인과법으로 구속도 있으며, 해탈도 있어진다. 만약 윤회와 전생을 믿지만 수행하여 해탈을얻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하든지, 이와 반대로 수행과 해탈은 믿지만 윤회와 전생은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필자는 이러한 사람을 불교를 믿는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윤회와 전생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대하여 어떤뜻을 가지는 지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수행해서 해탈을 얻을 이유를 알리 없고 부정직한 일을하거나 나쁜 짓을 하더라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과보가 있을 리 없다는 논리가 나오게된다.이런 사람은 불교는 고사하고 사회 윤리로 보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 수행을 통한 해탈은 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가치를 바르게 일으켜세우고 사회윤리와 도덕관념을 확고히 하는 의미에서도 일반 사회 대중에게  「윤회와 전생은 엄연한 사실이다.」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안 믿고는 관계없이 인간이 단순한 육체의 존속 기간만이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인생은 긴 시간을 두고 윤회 전생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라는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기의 행위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자기가 전 책임을 져야 하며 현재의 자기 환경과신체조건 까지도 부모나 그밖에 다른 사람의 책임이 아닌 순수한 자기 책임이라는 사실에눈을 떠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행복의 길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명백한 이해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 바이다.

(3)전생론과 수행

윤회 전생의 사실을 전하는 사건들은 우리 동양에 종래 적지 아니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불행히도 그것들을 정리한 자료는 얻기 힘들다. 그런데 전생을 믿지 아니하는 미국사회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것들을 과학적으로 정리 종합 분류하는 작업을 전개하여 전생의 법칙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학자가 여럿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나 써미나라(Gina Cerminara)박사가 위대한 영능자였던 에드가 케이시의 전생영독에서 그 중 二천五백  건을 정리 종합하여 두권의 책자를 만들었는데 이 저술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주고 있는 것이다. 지나 써미나라박사는 「many mansions」과 「world within」의 두권의저서를 통하여 서구인 들에게 윤회 전생의 증거를 구체적으로 제시 하면서 그러한 엄연한사실에 비추어 본 인생의 가치와 그 의의를 생생하게 밝혀 주고 있다 전생을 전제로 하여신앙과 수행을 함께하는 우리 불교도들이나 전생 운운하는 말을 흔히 쓰고 있는 우리 한국사람들이 미국 사람이 밝혀 준 전생의 사실 기록을 통하여 이를 확인 한다는 것은 어쩐지어색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방면의 연구에 관하여 우리보다 앞서 있는저들의 성과를 배움으로써 우리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사실들의 의미를 파악하고 정리하며 나아가 우리들 수행에 도움을 얻는것은 또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하에서 박사가 저술한앞서 말한 두권의 저서를 소재로 삼아 인간 생명의 내용과 인간 현실의 배후에 대하여 보다정확한 이해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4)전생영독(前生靈讀)

박사에 의하면 「토마스. H.헉슬리」는 「진화의 윤리」라는 책에서 문제 그 자체가 명백하지 못하다는 이유 만으로 전생을 부인하는 것은 경박한 사고 방식이라고 갈파 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유명한 전생론자들 중에 플라톤.피타고라스.웨리기리우스.부루너,쉘링.라이프니쯔.쇼펜하우어.레싱,피휘테.에머슨.칼라일.에디슨 헨드포드 등을 들고 있다. 이분들이 전생을 믿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도 과학으로 확정지을 수없는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직업이나 전문분야로 봐서는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서로 또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전생에 증거가 될 자료를 만나는 것이다.

위대한 영능자 였던 미국의 에드가.케이씨는 아마도 금세기에 있어서 전생의 자료를 갖게된사람들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분일 것이다. 그는 二一 세 대에 우연한 기회에 자기가 최면상태에 들어가면 「투시(透視)」할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 했다 즉 최면에 들어보면 다른 사람의 병을 진단할 수도 있고, 그 치료법도 일러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그의 조언에 의하여 수천명이라는 사람들이 실지로 병고에서부터 벗어났다. 이와같이 사람의 신체를심령적으로 관찰 하는 것을 「신체영독(身體靈讀)Body Reading」이라고 불렀는데 에드가케이시는 이방법을 四o년 동안 실시한 결과를 주의깊게 정리하고 보관하여 놓았다. 지금도자격을 갖춘 연구원이면 언제라도 그 기록을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北美合衆國버어지니아주 버어지니아비치에 있는 Association for Research and Enlightment)그런데 一九二五년부터 케이씨의 영독은 새로운 경지에 들어갔다. 그것은 「전생영독(全生靈讀)Life reading」이다.

그것은 현재의 인생의 신체조건과 상황등을 영적으로 관찰한 결과는 그 원인이 금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부분이 전생일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케이시는 현재 약 二천五백 여명의 전생을 투시하여 영독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 내용들은  심리학적으로도 정확하고 치료면에서도 효과가 탁월하다. 그리고 전생에 관한 여러 사실들을 조사한 결과도 실증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그가 남긴 방대한 영독자료를 정리 하여 하나의 전생의 법칙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에드가 케이시의 영독자료에 의한 전생의 법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면 전생에서 아내나 남편을 괴롭혔던 사람은 금생에 있어서 꼭같은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되고 전생에 타민족이나 타인종을 짓밟고 학대한 사람은 금생에 또한 똑같은 위치에 서게 되어 그가 다른 사람에게 가한 거와 같은 박해를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동양에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고 하는 불교의 인과설이 상식화 되어 잇지만 꼭 이와 같은 이론이다.

그리고 도 케이시의 영독에서는 인생의 장구한 영속성을 밝혀주고 있다. 그리하여 자기가 뿌린 씨는 자기가 곡 거두어 드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서 육체적 죽음은 결코종말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다른 생애의 새로운 탄생을 뜻한다는 것이다.

지나 써미나라 박사에 의하면 전생을 지지하는 증거는 대개 다음 세가지로 나타난다고 하고있다.

(一)과거생의 기억이 자발적으로 회상 되는 것
(二)최면술이나 자유연상법(自由聯想法)기타 심리학적 기술에 의하여 시행되는 연령역행(年齡逆行)
(三)현세상태의 원인을 규명하여 그 전생에 있었던 원인을 명백히 밝히는 투시또는 영매현상(靈媒現像) 〈이 경우에는 주관적 객관적 방증(傍證)이 수반 된다.〉

(5)「샨티」의 前生이야기

인간이 자기의 전생기억을 자발적으로 회상한 예는 우리 동양에 많이 듣는 일리다. 불광 七월호 인천보감에도 그런 사례 하나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근래 가장 문제가 되었던 유명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 하겠다. 그것은 인도의 샨티 데비 부인의 경우다. 샨티는 一九二六년 인도의 델리시에서 탄생하였는데 七 살 때부터 말하기를 전에 자기가 「마투라」라는 고장 산 일이 있었다고 기묘한 말을 하기 시작 하였다 그는 분명 그 부모와 함께 델리에서 태어나서 델리에서 성장 한 것이다.

결국 九살 되어서는 양친 에게 말하기를 자기는마투라에서 살았었고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고 말하면서 그 자녀들의 특징을 자세하게늘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전생 이름은 「루지」라 하였다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부모는 샨티를 학자들에게 데리고 가서 상의 하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인도정부는 이 문제를 조사하는 과학자들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되니 거국적인 사건으로 발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