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토끼의신심 信心

수필

2008-02-05     문정희

  언젠가, 소설을 쓰는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은 여러 의미에서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어느날, 토끼와 여우와 원숭이가 부처님 앞에 나타나서 불제자가 되게 해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들 셋을 쾌히 제자가 되도록 승낙하셨고 이어서 이들 짐승에게 지금 내가 몹시 시장하니 공양할 것을 좀 구해 오라고 했다 한다.
  여우와 원숭이는 그의 재주를 다하여 열매를 따고 나물을 뜯으러 갔는데 유독 토끼만은 아무말 없이 부처님 앞에다 모닥불만을 피우고 있더란다.
  모닥불이 한창 이글이글해 지자 토끼는 서슴없이 그 불더미 속으로 몸을 던지면서 「부처님, 제가 익거든 잡수시지요.」라고 하더란다.
  이 짧은 이야기 한 토막은 여러 의미에서 나를 많은 반성과 감동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시대의 우리들은 너무도 적당히 어정쩡하게 살아 가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토끼처럼 온 몸으로 살지 못하고 적당히 꾀를 부리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하여 두들겼을 때 열리지 않는 창이 있겠는가.
  부정 불의와도 쉽게 타협해 가면서, 육체의 안일속에 길들어 가고 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극도의 소비생활이나 누리면서 사는 것을 잘 산다고 표현하고 있는 이 시대의 그릇된 가치관은 많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하고 마음을 병들게 해버렸다. 진정 잘 사는 인생, 잘사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튼 나는 토끼처럼 살고 싶다.
  이글거리는 모닥불 위에 아낌없이 몸을 던지는 토끼의 신심앞에 무슨 군더기가 있겠는가. 나를 소시민으로 낡아가게 하는 월봉(月俸) 얼마의 셀러리맨에서 탈출하여 굶주리고 싶다. 굶주리면서 내 이상의 제단 위에 몸을 던지고 싶다.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싶다. 다 털어버리고 마지막 내 마음 한톨마저 털어 버리고, 그때에 비로소 트여오는 음악소리를 갖고 싶다.
  가난하다는 것은 자랑은 될 수 없어도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조그마한 물질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것이 소멸 되고 있으며 눈멀어 가고 있는가.
  우리를 이 세상에 나가게 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닐진데 좀 더 값진 일에 몸바치고 가야할 것 같다. 내가 나의 생애를 바쳐서 해야 할 필연적인 일에 몸바치고 조용히 저 대지로 돌아갈 때 보람의 땀 씻어야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어쩜 착각속에서 삶을 탕진해 버리는 지도 모르겠다.
  그 착각 한 토막을 위하여 헛된 욕심을 부리고, 용납하지 않아야 될 일도 적당히 용납하고 마는 것이다.
  천박한 명예욕때문에 얼마나 많은 거짓이 남발되는가.
  나는 스님들을 뵐 때 마다 심한 컴플렉스를 느낀다. 저 옷으로 무엇을 못하랴. 저 머리로 무엇을 주저하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잿빛 승복은 참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나같은 속인은 두려워서 못하는 일, 못 본 척 눈감아 버리는 부정. 안일 무사주의. 그 모두를 향해 스님들은 과감하게 <No!>를 외칠수 있겠기에 말이다.
  모든 헛것을 다 덮어버린 저 잿빛 승복을 입고는, 어디엔들 못 가랴. 어디에 간들 두려우랴. 그곳이 설사 불더미 속이라 한들 감옥이라 한들, 지옥이라 한들 말이다. 나는 그 승복을 향해 고개 숙인다.
  토끼처럼 온몸으로 아무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이 달겨들 수 있는 모닥불을 향해 오늘도 우리들은 가고 있을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