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스케치] 시자경 - 부처님 시자가 된 내력

경전 스케치

2008-02-04     교학부

ㅡ侍 者 經ㅡ

  1  부처님의 시자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는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다 아는 바와 같이 부처님의 시자였던 아난존자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경전을 결집할 때에 한 첫말이다.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시던 전후의 경위와 법을 설하시는 상황과 법문의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오늘날 녹음기를 사용하여서도 기록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상황까지도 그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난존자는 어떤 수승한 위덕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보다도 아난존자는 어떠한 경위로써 부처님의 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이를 말해주는 경전이 있다. 그것은 중아함경(中阿含經)중의 시자경(侍者經)이다. 아난은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十五년 간을 모시면서 부처님이 설하신 바 법문을 모조리 들어 기억하고 또 그 이전에 전승되어 오던 법문을 모두 기억했다. 그리고 열반 드실 때까지 부처님을 모셨던 것이다. 아난존자는 그 출신이 부처님의 사촌이 된다.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고향을 방문하였을 때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였다. 이하에 시자경의 요점을 살펴 보기로 한다.

  2 시자를 자원하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일이다. 그 때에 지혜와 덕이 뛰어난 많은 장로 비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덕이 높고 뛰어난 장로들과 함께 왕사성에 돌아와 세존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였다.

『나는 이제 늙어서 몸이 쇠약하다. 이제 시자를 두고자 한다. 그대들이 누군가 한 사람의 시자를 골라서 나를 돌봐 주기도 하고 또한 나의 설한 바를 들어서 그 뜻을 기억하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때에 장로 교진여(僑陣如)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데 제가 시자가 되어 세존을 시중들고 또한 말씀하신 그 뜻을 잊지 않고자 하옵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진여여, 그대 자신이 이미 나이가 많아서 몸도 쇠약하고 수명도 다 해 죽을 날도 멀지 않았다. 그런데 그대 자신도 누군가가 돌보아 주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교진여여, 그만 두고 자리에 가서 앉거라.』

 이에 장로 교진여는 세존의 발에 예배드리고 제 자리에 돌아 갔다.

 이어 장로 아설시(阿說示) 그 밖에 지혜와 덕이 넓은 뛰어난 장로, 비구들이 차례 차례로 부처님 시자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들 모두에게도

『그대들 자신이 이미 몸이 늙어서 쇠약하니 그대 자신도 누군가가 돌봐주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3 아나존자, 시자가 되다

 그 때 장로 목건련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도대체 누구를 시자로 생각하시는 것인가? 누구에게 뜻이 있으신 것일까? 내가 깊은 정(定)에 들어서 여러 비구들의 마음을 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목건련은 그 자리에서 정에 들어 모든 비구의 마음을 관하였다. 그래서 목건련은, 세존께서는 아난을 시자로 삼고자 하시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장로 목건련은 곧 정에서 나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시여, 아십니까? 세존께서는 아난장로를 시자로 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마땅히 다 함께 아난장로에게 가서 세존의 시자가 되기를 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마하 목건련과 여러 비구들은 아난존자의 처소로 갔다. 그리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그대는 아십니까? 세존께서는 그대를 시자로 삼고자 하십니다. 부처님의 뜻은 그대에게 있고, 그대가 세존을 보살펴 드리고 설하신 바 법문을 잘 받아서 뜻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아난이여, 그것은 마치 어떤 누각의 동쪽 창문이 열려 있는 바와 같습니다. 해가 뜨면 빛은 서쪽 벽에 비칠 것입니다. 세존의 뜻도 그와 같습니다. 그대를 시자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니 그대는 곧 세존의 시자가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이에 아난이 대답하였다.

『목건련 장로시여. 저는 세존의 시자를 해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에게서 행하기 어렵고 받들기 어려운 것이 시자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큰 상왕(象王)은 그 나이 육십이 되어도 힘이 왕성하고 어금니와 팔의 힘도 세고 몸도 건강하여 가까이 하기 어렵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래께서는 집착하신 바가 없고 정등각자(正等覺者) 이어서 하기 어려운 것은 시자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니 저는 그 임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목건련이 말하였다.

『아난이여 나의 비유를 들어 보시오. 이것은 마치 우담화(優曇華)가 때때로 이 세상에 나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여래는 집착하시는 바가 없고 정등각자이십니다. 여래께서는 좀체 세간에 나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대는 속히 세존의 시자가 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틀림없이 대과(大果)를 얻을 것입니다.』

 그 때 아난이 말하였다.

『목건련 장로여, 만약 세존께서 제게 다음 세가지 원을 허락하여 주신다면 저는 세존의 시자가 되겠습니다. 그 첫째 원이라 하는 것은 저는 부처님의 새 옷이나 헌 옷을 물려받아 입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둘째 원은 부처님을 위하여 특별히 올린 공양을 받아먹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원은 때가 아닐 때(非時)부처님을 뵙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세존께서 이 세 가지 원을 들어주신다면 시자가 되어 모시겠습니다.』

 드디어 목건련은 아난에게 승낙을 받아내고,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아난장로에게 권하여 세존의 시자가 되기를 승낙받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나장로는 시자가 되는데 세 가지 원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새 옷이나 헌옷을 물려받아 입지 않는 것과 둘째, 부처님의 별청의 공양을 받지 않는 것과 셋째, 부처님을 때 아닌 때에 뵙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를 허락해 주신다면 시자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목건련이여, 아난비구는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미리 다른 사람의 비난을 막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청정행을 수행하는 많은 사람 가운데에도 아난비구는 옷 때문에 세존의 시자가 되었다고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한 비난을 미리 막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비구는 말하기를 아난은 먹는 것 때문에 세존의 시자가 되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아난비구는 이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 이것은 아난 비구의 미증유(未曾有)의 법이다. 또 아난 비구는 때를 잘 알고 있다. 그 때를 잘 알아서「내가 지금 여래를 뵈올 때인가」를 알고, 혹은「내가 가서 여래를 뵈올 때가 아닌가」도 알고 또는 비구나 비구니들이 여래를 뵈올 때인가 아닌가를 알고, 또는 우바새나 우바이가 세존께 가뵐 때인가 아닌가도 알고, 또는 다른 교를 믿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여래를 가뵈올 때인가 아닌가를 알며, 또는 그러한 외도의 학자들이 여래를 뵈워 토론을 할 때인가 아닌가를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아난 비구의 미증유 법이다.』

  4 시자의 표본

 이렇게 하여 목건련의 주선으로 마침내 아난존자가 세존의 시자가 되었다. 아난은 과연 총명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기억하고 부처님의 설법의 경황을 자세히 기억하고 경전에 기록하였다. 부처님은 三十二상이 구족하셨다는데 열반경에 의하면 아난존자는 三十상(相)이 구족하였다고 하였다. 시자로서 참으로 최상의 적격자였다. 후에 경전을 결집할 때에 그의 덕이 유감없이 나타났지만 그 밖에 아난의 시자로서의 적성을 나타내는 말이 장로게경(長老偈經)에 보인다. 우리는 이 게송을 읽으면서 시자로서의 아난의 마음을 보는 것이며, 그 모습을 또한 뚜렷이 연상한다. 그리고 부처님을 모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자세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알게 한다. 그리고 믿음의 생활을 사는 우리 일상의 생활도 반성하게 한다.

 

 二十五년동안 몸에는 자상한 것을 지니고
 
나는 세존을 따라 모셨느니
 
마치 그림자가 몸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二十五년동안 입에서 자상함을 말하고
 
나는 세존을 따라 모셨느니
 
마치 그림자가 몸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二十五년동안 뜻에서 자상함을 품고서
 
나는 세존을 따라 모셨느니
 
마치 그림자가 몸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세존께서 걸으실 때에는 나는 뒤를 따라 걸었느니
 
세존께서 법을 설하실 때
 
나는 법문을 듣고 지혜가 났네

  이 얼마나 시자의 표상이 될 마음가짐이며 행실인가. 얼마나 성자를 모시는 시자의 자세를 잘 행하여 보임인가. 아난의 덕상으로 우리는 오늘도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것이다. 아나존자가 결집한 부처님 경전을 읽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