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의 고전] 자기 제문을 짓다

禪의 고전/人天寶籃

2008-02-03     석주

 1. 법운수선사

 법운수선사는 진주 사람이다. 그의 전생에 노화상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 하루는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대밭 언덕 아랫집으로 나를 찾아 주시요.」하였는데 그집에 태어난다는 말이다. 과연 그 집에 아이를 낳았다. 노화상이 가서 보니  아기가 한번 보매 빙긋 웃는다. 세살이  되어 노화상을 따라가겠다고 한다. 결국 이래서 출가하게 되었다. 인물이 뛰어 났고 모든 대중 가운데 우뚝 솟아 보였다. 뒤에 대중을 거느리고 법을 가르치는 마당에서는 항상 거치른 말을 마구 하였다. 그때에 사마온(司馬溫)공이 집권하게 되어 불법이 성한 것을 보고 이를 억압하고자 하였다. 법운수 선사가 말하였다.

「상공(相公)은 총명하여 모든 사람 가운데 영걸이라. 불법 인연 속에서 오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오늘이 있으리까. 그런데도 오늘날 하루 아침에 불법의 부족을 저버리고자 하시오?」이에 상공도 마음을 돌렸다.

 또 이백시가 그림을 잘 그렸고 그 중에 말그림을 아주 잘했다. 그런데 그 값이 대단했다. 수선사가 이를 꾸짖어 말하기를 「그대가 명색이 사대부인데 게다가 그림을 잘 하기로 소문이 났고 말그림을 잘 한다 하는데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내놓고 묘를 얻었다고 자랑을 삼으니 딱한 노릇이다. 뒷날에 그대 그 묘한 재주가 말 뱃속에 들어가게 되리라.」하였다. 이백시는 이 말을 들은 이후 붓을 꺾어 던지고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또 노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즐겨 저속한 시를 지었고 사람들은 다투어 그 시를 전해 가며 즐겼다. 선사는 노직을 만나 말하였다. 「문장의 묘를 얻었다 하던데 하는 것이 이런 것인가?」노직이 웃으며 말하였다. 「스님, 또 나마저 말 뱃속에 집어 넣으려 하십니까?」수선사가 말하였다. 「그대가 구질구질한 말로 천하 사람의 마음을 더럽히니 어찌 말 뱃속 뿐이랴? 아마도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지리라.」하였다.

 2. 고산원 법사

 원 법사는 재주가 뛰어나고 또한 학문이 깊어 경론을 주술하고 강설한 저술이 퍽 많았다. 서호 물가에 암자를 맺고 머물으니 권세라도 그를 굽힐 수 없었고 부귀로도 이길 수 없어 세속과는 섞일 수 없었다. 그때에 문목 왕공이 전당 땅에 왔다. 군내의 모든 사람들이 관 밖으로 마중갔다. 자운법사도 원 법사를 청하여 함께 가자고 하였으나 원 법사는 몸의 병을 칭탁하여 사양하면서 사자로 온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를 대신해서 자운 법사에게 말해 주시요. 전당 땅에 중이 한 사람 있다고.」이 말을 들은 사람 모두가 그를 찬탄했다.

 원법사는 매양 병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침상 위에 벼루를 갖다놓고 혹은 눕고 혹은 일어나서 저술을 게을르지 않았다. 하루는 대중에게 말하였다.

「내 나이 49세인데 이미 세상에 살 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다. 만약 내가 죽거든 잘 장사를 지내서 나에게 허물이 더 해지지 않게 하여다오. 마땅히 도기를 합해서 나를 그 속에 장사지내 주오.」죽음에 임하여 스스로 제문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삼가 호산(湖山)과 운월(雲月)을 차려놓고 중용자(中庸子 ㅡ 원 법사의 호)의 영을 제사 지내노라. 그대의 본래는 법계의 원상(元常)으로서 보배롭고 뚜렷한 묘한 성품이다. 움직이고 고요하매 자취가 없으니 어찌 가고 오는 자죽이 있으랴. 일곱 구멍을 뚫으니 혼돈(混沌)이 죽었고 육근(六根)이 갈라져 정미롭고 밝은 기운이 흩어짐에 이르러 이제 그대의 자심(自心)을 보건대 바깥 경계와 다름 바가 있도다.
생존과 사멸의 두쪽을 집착해서 항상 흔들려 머물을 줄 모르고 혼혼 어둑하여 비출 줄을 모르더라.
내 본래의 혼돈을 회복하여 정미롭고 밝음에 돌아 가고자 하노라. 이것은 환(幻)이 아닌 법 중에서 거짓 환인 말을 하는 것이다. 대게 환이 아닌 것조차 오히려 없거늘 환인 법이 어찌 있으랴. 그대 중용자도 또한 자세히 이 뜻을 살필지어다.
그대가 이미 환인 생을 받았으니 반드시 환인 죽음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므로 내가 환인 몸을 의탁하여 환인 병이 있고 환인 말을 빌어서 환인 제자로 하여금 환인 붓을 잡아 환인 글을 지어서 써 미리 그대 환인 중용자를  제사 지내어 끝없는 미래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법이 환과 같음을 알게 하고저 하노라. 이와 같으면 여환삼매(如幻三昧)가 여기 있다고 할 것인가. 오호, 삼매도 또한 환이로다. 바라건데 잘 받으라」하였다. 그리고 가부좌하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