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다실] 26 호 불광다실

2008-02-02     관리자

 ♣ 그림자가 ㅡ 저녁 해에 비쳐진 어설픈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동쪽 언덕에 걸친다. 하루, 또 하루 지나가니 이젠 한 해가 저문다고 한다. 꽃바람 날리고, 비바람 치고, 눈보라 날리고 지표가 싸늘하게 식었는데 외로운 그림자가 올해도 이렇게 이 산야에 걸치고 저녁노을과 함께 사라지누나. 어둠은 그 모두를 묻어 버리는가 하면 과거의 장으로 기록해 둔다. 그러나 언 땅 아래서 새봄은 준비되고 어둔 지평성 너머에서 햇빛은 찾아 오듯이 새해는 만상이 잠든이 고요 속에서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 달이 해를 보내는 달이라기 보다 새 희망의 성취를 준비하는 달이 되어야 하겠다.

 ♣ 해가 흘러가고 세월이 흘러 가고 흰구름처럼 인생이 흘러가듯 흘러가지 않는 것이 무얼까? 바다가 졸아들고 산이 마멸되고 인정이 메말라 가도 굳고 풍성하고 따스하게 익어가고 커가는 것은 무엇일까? 이 몸이 한살 더 하고 고통을 더하고 기쁨을 맛보고 그리고 고달픈 생애는 거듭하면서 거기에는 죽음과 적막과 황폐가 익어가는 것은 아니다. 푸른 생명을 움직이는 우리의 푸른 생명은 이와 같은 인생이라는 일들을 겪으면서 옹골차게 여물어가는 것이다. 하늘과 땅과 온 세상과 이 몸이 허물어져도 허물어지지 않은 공덕의 열매는 나의 생명 깊이에서 옹골차게 여물어가느니, 이 한해는 이래서기쁨으로 안녕이다.

 ♣ 올해는 예수재(豫修濟) 풍년의 해인가 한다. 불교신문 지상을 보아도 도처에서 예수재다. 그런데 예수재만큼 중요한 요법이면서 그 참뜻이 바로 알려지지 않은 법식도 없어 보인다. 고작해야 전생 빚을 갚는 것이 예수재라고 하니 나는 금생 빚에 걸려서 전생 빚 못갚는다는 말도 나옴직하다. 원래 예수재는 이것이 인생의 생의 의미를 비춰 주고 삶의 목적을 완수하여 때묻지 않은 청정 본성의 생애로 출발시켜 주는 신묘한 작법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알려지지 않으면서 법요는 퍼져 가니 인상한 일이다.

 불광자는 예수재에 대하여 세가지 큰 의미를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첫째는 인생이 사람으로서 생애를 보내매 복덕을 지을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며, 둘째는 지혜를 닦을 사명을 지고 태어났으며, 셋째는 삼보를 위시하여 우리가 알고 모르는 많은 성현들의 은혜를 입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위 삼대 책무를 완수할 의무를 지고 있다 할것이다. 예수재는 인간에게 이와 같은 천부의 책임이 있을을 알려주고 그에 따른 수행을 촉구하며 나아가 위 삼대 책무를 반야묘법의 전개를 통하여 완전 성숙시키는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재를 닦은 사람은 인생에게 지어진 모든 짐과 그에 따른 불안과 어둠과 부자유의 원인을 끊어버린 자이다. 따라서 그는 때묻을 수 없고 속박 받을 수 없는 청정본성이 올연히 드러난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재를 닦은 사람은 청정하며 해탈자며 광명신이다. 그의 자리에는 연화보좌가 받쳐있고, 그가 걷는 발밑에는 연꽃이 피는 것이다. 마땅히 이와 같은 자성본분에 즉한 청정행 · 광명행 · 환희행을 행동으로 나투는 것이 예수재 닦은 자의 행위형식이다. 저들이 연꽃가마를 타는 것도 여기에 유인한다.

 혹자는 이 뜻을 바로 알지 못하는 데서 예수재에 대하여 비난을 하게 한다. 마땅히 이 거룩한 법요의 진의가 바로 행해 지도록 힘써야한다.

 ♣ 근일 우리사회 주변에는 여러 면에서 근심스러운 사태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소년들이 되어 가는 상황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우리소년들은 건실하고 청순하다. 그렇지만 근일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건들, 범죄들은 놀라울 만치 소년들의 사건으로 꽉찼다. 수적으로 성인의 범죄를 앞지르고 질적으로 놀랍게 행위의 질이 말이 아니다. 근일 신문에서는 일제히 청소년 범죄를 논난하고 있고 그 책임에 대하여도 학교의 책임이니 사회전체의 책임이니 하고 의논이 많다. 광실자의 관견으로는 사회전체가 책임이 있다 하겠다.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가정이 책임이 있고, 제 1차적으로 부모에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광실자는 여기서 학교에서 지도와 감독을 소홀히 했느니, 사회의 교육적 시설이 돼먹지 않았느니, 부모의 세심한 관심이 부족하였느니 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감독이니 지도니 환경이니 하는 외부로부터의 관여가 부실해서 청소년이 파괴적으로 나온다는 견해는 이것이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원래 인간은 정신적으로 정서적인 존재다. 정신이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정서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마음 속에 채우지 못한 공허가 깔려 있는 한, 그들에게 외부에서 아무리 엄격한 규제를 가하고 감독하고 사리분별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대단한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키우기를 동물적 우량아로 키우고 때맞춰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똑똑하도록 지식을 연마하고 주입하는 방법으로 사람을 다루어 가지고는 그 사람의 가슴 속에 번져가는 사랑의 궁핍과 뜨거운 인간애의 감정이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뜨거운 어머니의 체온을 모르고 큰 청소년들이 크면서 물질가치나 추구하고 합리적 효용가치나 찾아 헤매며 부모에게 불효하고 스승에게 불공하며 인간관계가 이익교환의 장이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커서는 방탕한 이성 편렵이 끊어지지 않고 어쩌면 술이나 자극적인 환락으로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청소년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관의 붕괴에 있다고 하겠으나 동시에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은 가정에 있어서의 조화된 평화와 부모의 태도다. 가정이 단란하지 못하거나 아기를 안아서 젖먹여 키울 줄 모르고 기계적 처방급식으로 동물적 우량아를 지향하는, 이른바 개명된 육아법으로는 우리의 청소년이 정신의 공허, 사랑의 결핍에서 헤어날 길 없고 저들이 성장하면서 인간적인 조화를 구하여 처절하도록 몸부림치는 오늘날의 무도덕적 퇴폐현상을 막지는 못하는 것이다.

 ♣ 지난 10월 16일은 불광창간 2주년이며 불광창립 한돐이다. 이 날은 불광동지가족 5백 명이 대각사에 모여 기념법회를 가졌다. 얼굴들이 너무나 닮았는가 한다. 모두가 밝고 시원스런 얼굴과 눈매들이 더욱 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