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불교신앙] 유쾌한 분위기와 인간능력 개발

직장인의 불교신앙

2008-02-01     김경만

[1]사섭법의 의미

  인간은 유쾌한 분위기에 있을때 그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되는 것이다. 유쾌한 분위기는 자신의 자수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을 때에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려을 최대한으로 발휘케 하기 위하여서는 직장에서 그 조직원 모두에게 자수성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자수성은 상대에게 마련되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의 내면 세계에서 만족하기 아니하면 안돼는 것인 까닭에 직장의 지도자들은 그 주변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주적인 입장에 서서 유쾌한 가온데 근무할 수 있도록 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우리가 불법문중에서 배우는 사섭법은 이러한 의미에서 아주 깊은 시사를 주는 것이라 믿는다. 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사섭법이란 중생들을 섭수하는 방법 네가지를 말하는 것인데 (1) 보시 (2) 애어 (3) 이행 (4) 동사가 그것이다.

[2]보시

  첫째의 덕목인 보시는 배풀어 주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말할때 우리들의 인간관계는 상대방으로 부터 무엇이건 얻어갖기를 원하는 상태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의 입장을 정하여 놓고 그 입장에 알맞는 행동을 남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남들과 만나며 지내는 현상의 전부이다. 그런데 그 입장이라는것은 결국은 자기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설정돼어지는 것이므로 그 입장을 남들이 따를 이치가 없지만 그 입장을 여러가지의 논리를 내세워 합리화 시켜놓고 남들이 납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때의 기업 또는 고용주 측에서는 물질적인 급부를 그 납득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인데 그까닭은 물질적보상이 능히 종업원들로 하여금 기업이 설정한 입장에 추종하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질적급부가 전부라는 전제에서 나온 결론이다. 이러한 급부는 사섭법에서 제일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보시와 매우 비슷한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보시라는 말은 배풀어 주는 것 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므로 보시는 곧 물질적 급부와 동일하다는 등식이 성립됨 직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은 종업원의 대한 물질적 급부야 말로 기업이 그 종업원들에게 지고 있는 유일한 의무인듯 생각하며 또 이 물질적 급부에 대한 반대적 급부로서의 강한 충성심을 종업원들에게 요구하게 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 급부는 우리가 배우는 보시와는 결코 같은 것일 수 없다. 왜냐하면 물질이라는 것은 마음이 그림자로서, 현상화돼어 있는 것일뿐이지 그 자체로서 독자적으로 존재하여 잇는 것이 아니다. 물질본질에 있어서 허망한 것이다.

  보시의 있어서도 물질을 남에게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물질을 준다는 사실, 그자체로보면 기업이 종업원들의 충성심을 요구하여서 지급하여주는 물질적급부와 다른것이 없다. 그러나 주는 사람이 가지고있는 마음의 상태는 전혀 다르다. 보시는 옛 부터 삼륜공적 이 그 근본적 절대조건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주는 사람이 주고있다는 우월적 상념을 가지고 아니하며 받는사람이 받고 있다는 열등의식을 가지지 아니 하고 주고받는 물질의 크기 등의 의한 차별??생각이 없어야 비로서 보시라 할수 있는 것이다. 주는 사람이 잠재의식은 받는 사람의 잠재의식에서 서로 통하여져 있다.

  그러므로 주는사람이 잠재의식에서 우월적생각을 가지고 다시 말하면 상대방을 얕잡아 보면서 물질을 공급할때 그것은 잠재의식의 세계에서 이미 상대방을 짖밟은 것이 되므로 반드시 반격하고자 하는 생각이 일개마련하고 이것은 결국 주는 측과 받는 측의 대립을 뜻하게 되므로 결코 충성심이 나올 여지가 없다.

  기업은 종업원들의 기능을 사는 입장의 있다고 하지만 그의 인격의 대하여서 일을 무시 할 권리가 인정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여러번 지적하였지만 이러한 인격적 대우의 이유는 실은 그 대우를 받게 될 종업원측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사섭법에서 우리가 배우는 보시는 주는 행위 이전의 주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 주는 마음은 우월감이 없이 서로가 한몸인 듯 따뜻한 마음으로 배푸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기업이 종업원들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 그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과 더 나아가서는 종업원 각자의 생명력이 구김없이 발휘되도록 한다는 마음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까닭의 이 보시행은 당연한 논리로서 제2의 덕목인 애어 즉 사랑스런 말씨가 뒷따르지 않을수 없다.

[3]애어

  애어는 서로간의 언어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말씨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얼핏 보면 논리 전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은 정서의 전달인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들을 대 그 논리에만 귀를 기울리는 것이 아니고 서로간의 감정의 교류를 느끼는 것이다.  문법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어던 말이 상대방에게서는 전혀 다른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이것은  문법 이전 정서가 상대방의 느낌에 어떤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그 말하는 태도나 어조등에 의해서 상대방의 감정을좌우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주변의 여러 사람과 함게 지내는데 끓임없이 조심하여야 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말은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 까닭에 사랑스런 말을 하게 될 때에 그에 알맞는 분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인간 능력이 최대로 발휘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랑스런 말이 오가는 분위기에서 발휘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스런 말이란 결코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뿐만 아니라 우리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을 잊을 수 없다. 음성을 통하는 말 아닌 얼굴 표정에서 나오는 의사 도는 정서의 전달이 더욱 깊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이 애어라는 덕목이, 제1덕목인 보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닐 때 그것은 함갖 아양밖에 되지 않음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