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르바나에 도달하는 길은 무엇인가(下)

2008-02-01     관리자

- 첫째, 깊은 믿음으로
[문] 선생님께서 “니르바나에 이르는 구체적인 길은 팔정도이고, 팔정도의 근본 정신은 어떤 형태의 고정 관념이나 독단론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자유정신이다.”라고 말슴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이러한 팔정도의 기본 정신을 이해하면서 팔정도 하나하나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답] 좋습니다. 이제 그때가 되었습니다. 니르바나의 저 언덕으로 가는 사제 팔정도는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간단 명료한 행동지침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꽤 긴 예기를 해 왔지만, 그것은 거룩한 길을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의 준비 과정인 셈이지요. 양약을 먹기 위한 마음가짐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제 봉지를 열어서 양약을 먹을 때가 되었습니다.

[문] 팔정도의 여덟 걸래 길은 각기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것입니까?
[답] 아닙니다. 팔정도의 여덟 갈래는 한 사다리에 잘 끼워져 있는 여덟 개의 튼튼한 발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차례가 분명하면서도 서로 잘 어울려서 니르바나의 저 언덕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고 있습니다.
팔정도는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단계는 믿음의 단계로서, 정견과 정사유가 그 발판입니다.

[문] 정견, 정사유가 무엇입니까?
[답] 정견은 바른 견해, 바른 가치관 이란 뜻이고 정사유는 바른 사고, 바른 판단이란 뜻입니다.
선재에게 묻겠는데 “바르게”란 곧 “자유롭게”라고 하였는데,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바르게”하는 것이며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까?

[문] 너무 막연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아직 저희 스스로 그 기준을 세우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저희들이 믿고 따를만한 어떤 모범이 있었으면 합니다.
[답] 우리가 믿고 따를만한 가치관의 모범, 판단의 모범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문] 사람마다 그 생각이 다르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우리 부처님께서 보여 주신 진리와 행위가 최고 최선의 모범이라고 믿습니다.
[답] 옳습니다. 나도 크게 동감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굳게 믿고 의지해서 부처님의 견해를 우리 자신의 견해로 받아들이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법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판단해 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곧 정견, 정사유입니다.
그런 까닭에 팔정도의 첫 단계는 부처님과 그 진리에 대한 깊은 믿음과 공경심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무한히 새롭게 해 가는 깊은 믿음의 과정인 것입니다.

[문] 니르바나의 저 언덕에 이르는 길은 깊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뜻입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처님과 그 진리에 대한 깊고 굳센 신심으로써 우리들의 방황하는 생각을 바르게 하고, 한발 한발 부처님 나라로 나갑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나무는 언제 넘어져도 반드시 동쪽으로 넘어지듯이, 부처님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신심 두터운 사람은 언제 어떻게 목숨이 끝나도 부처님 나라에 태어나느니라” <파리 상응부>

둘째 계율을 깨끗하게 지켜서
[문] 팔정도의 다음 단계는 무엇입니까?
[답] 그 둘째 단계는 계율의 단계로서, 정어와 정업과 정명이 그 발판입니다.

[문] 정어, 정업, 정명이 무엇입니까?
[답] 정어는 바른 말이란 뜻이고 정업은 바른 행위를 뜻하며 정명은 바른 생활의 방법을 의미합니다.

[문] 왜 이 세 갈래를 계율의 단계라고 하십니까?
[답] 먼저 전재에게 하나 묻겠는데, 우리가 사제법을 공부할 때, 우리들의 크고 작은 고통은 모두 어디서 오는 것이라고 배웠습니까?

[문] 우리 자심의 무지가 혼미한 생각을 낳고, 혼미한 생각이 악한 행위를 낳으며 이 악업이 쌓이고 싸여 끊임없는 고통의 악순환을 가져온다고 배웠습니다.
[답] 선재, 정말 선재의 공부가 훌륭하게 무르익어 가는군요. 팔정도는 이 악순환의 고질을 치유하기 위하여 대의왕이신 부처님께서 처방하신 양약입니다.
우리는 먼저 갚고 굳건한 불법에 대한 신심으로써 혼미한 생각을 바르게 치유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엄격한 계율로써 우리들의 오랜 말과 몸의 악업을 치유하려는 것입니다.

[문]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니르바나에 이르는 필수적인 과정이란 말씀이십니까?
[답] 그렇습니다. 불자는 계율이 생명입니다. 말과 몸과 생활을 바르게,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불자의 근본 오계를 철저히 깨끗하게 지킨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말 하지 아니하고, 남을 헐뜯지 아니하고, 삿된 음행을 아니하고, 산 목숨을 죽이지 아니 하고, 도둑질 하지 아니 하고,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할 때, 나 자신도 새롭게 살아나고, 우리 이웃 형제들과 이 세상도 새롭게 살아납니다.
계율은 필경 적극적으로 자비를 실행하는 사랑의 길입니다. 이 자비의 길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도 니르바나의 저 언덕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셋째, 끊임없이 참선함으로써
[문] 팔정도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입니까?
[답] 그 셋째 단계는 참선의 단계로써, 정념과 정정이 그 발판입니다.

[문] 정념과 정정이 무엇입니까?
[답] 정념은 바로 상념,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한다”는 뜻이고, 정정은 바른 마음의 고요를 뜻합니다.

[문] 어찌하여 정념과 정정이 참선의 단계가 됩니까?
[답] 항상 깨치려는 상념을 갖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길이 곧 참선이기 때문입니다.
정념과 정정, 곧 참선은 팔정도의 최고 단계로서, 찬란한 니르바나의 저 언덕에 도달하는 최후의 관문입니다.

[문] 어떻게 참선이 니르바나에 이르는 최후의 관문이 되는 것입니까?
[문] 다시 선재에게 묻겠는데 고통과 생각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가장 뿌리깊은 원인이 무엇이라고 진단되었습니까?
[답] 무지, 곧 무명이라고 배웠습니다.
[답] 그렇습니다. 이 무지, 무명은 진리를 깨침으로서만 풀리는 캄캄한 장벽입니다. 진리를 깨치는 힘은 곧 지혜의 능력 아닙니까. 참선은 바로 지혜의 능력을 키우는 최상의 길입니다.

[문] 그래서 한국 불교에서는 이 참선을 가장 크게 주장하는 것이로군요.
[답]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참선에 의하여 진리를 크게 깨치셨고 선사들도 이 참선에 의하여 진리를 깨치고 니르바나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꼭 한 가지 명심할 일은 팔정도의 다른 단계, 믿음과 계율의 단계를 열심히 하지 않고 곧 바로 참선에만 매달리는 것은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엄연한 진실입니다. 그것은 마치 차례따라 발판을 거치지 않고 사다리 위로 올라서려 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

[문] “팔정도를 하나하나 열심히 하는 것, 믿음과 계율과 참선의 길을 동시에 열심히 하는 것만이 니르바나의 저 푸른 언덕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제 이렇게 믿어도 좋겠습니까?
[답] 선재, 참으로 훌륭하게 터득하였습니다. 많은 시간 사제 팔정도를 얘기한 보람을 느낍니다. “동시에 끊임없이,열심히” 이것이 곧 정정진의 기본 발판입니다.

[문] 선생님, 막연했던 니르바나의 길이 제게 한 발 가까이 다가온 듯 합니다.
부처님을 굳게 믿으면서 불자의 오계를 내 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틈틈이 쉬지 않고 참선 하겠습니다. 이것은 곧 저희 청소년 생활을 가장 확실하게 지탱해 주는 삶의 빛이라고 확신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