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께 여쭙다(完)

신앙실록

2008-01-31     관리자

     9 의심을 모두 풀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그동안 제가 염불하고 지내온 일들을 보시며 어쩌면 웃음을 많이 참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지금 저 역시 우습고 부끄럽기 한량 없습니다. 부처님께 기도하여 법문을 배워 크게 깨달을 공부는 하지않고 항상 생활주변 일로 부처님께 질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불자였습니다. 그것도 혼란 속에서 생활에 매여사는 순 속인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자비하시고 다 아시는 성인이라는 생각뿐이요, 어려운일 당하면 여쭈어보는 것이라는 관념이 아주 굳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그 당시 부처님께 여쭈어보아 의심을 풀었던 몇 가지 일을 더 적어보겠습니다. 제가 아직 군에 있었던 1956년의 일입니다. 그 해는 선거의 해여서 대통령에 이승만 박사와 신익희 선생이 각축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자유당 전성시기이기도 하였지만 야당 후보인 신익희 선생의 세력도 만만치 않아 백중세라기보다는 오히려 야당 우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나라 일이 어떻게 될까, 신익희 선생이 대통령이 될 것인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일상대로 염불하면서 한번은 궁금한 그 일을 두고 기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신익희선생이 아파서 드러누운 형상이 나타나 보였습니다. 그때 선거양상은 격렬했고 야당세는 가일층 기세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들어 누운 형세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드디어 그해 5월 5일 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신 익희선생은 선거유세중 호남선 열차안에서 홀연히 돌아오지 않는 손이 되고만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다시 4년이 지난 1960년 봄의 일입니다. 그 때가 바로 누구나 잊지 못하는 저 3.15선거의 막이 올랐습니다. 대통령에 이승만 박사, 부통령에 이기붕씨를 세워놓고 당시 여당인 자유당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기억에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부정선거를 항의하고 자유당에 항거하여 천하가 물 끓듯이 소연했습니다. 저는 이선거 결론이 어떻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수일만에 다시응답을 얻었습니다. 꿈에 이박사가 모자를 벗어던지더니 훨훨 서쪽 길로 떠나가는데 이기붕씨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었습니다. 결국 이박사는 하야했고 이기붕씨는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처님께 대한 저의 기도는 여러 경험을 갖게 하였습니다. 한번은 안정땅 고향에 있을 때 일입니다. 한마을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병들어 오랫동안 일을 못하고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도와 줄 수 없을까 생각하고 염불하고 있었더니 홀연히 마음에서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어졌습니다. 준다는 것은 돈이나  약이라기보다도 어떻게 보면 내 마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생각키는 대로 훌쩍 일어나 어두운 밤길을 걸어 그 사람 집 부엌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부뚜막에 있던 소금을 그 집 밥솥에 뿌리고는 소리없이 돌아왔습니다. 이 것은 제가 생각해서 한 것이 아니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그후 이틀이 지나서 그 집을 찾아갔더니 환자는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병에서 나은 이유를 저는 지금껏 알지 못하고 제가 한 행위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고 그때의 기억만이 생생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의 장모님이 알 수 없는 병에 오래 시달렸습니다. 약을 써도 낳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생각나기를 내가 저 어른의 사위인데 어떻게든지 병을 고쳐드려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무슨 병이기에 낫지 안는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한 끝에 저는 어느듯 합장하고 앉아 염불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염불했는지 모릅니다. 밤은 깊었고 그러는 중에 저는 잠이 들었습니다. 몽중에서 저는 장모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깊은 , 물이 없는 샘같은 구렁에 빠져 계셨습니다. 캄캄하고 이를데 없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 장모님을 찾아가 염불하고 부처님 앞에 참회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장모님 생각에 마음에 거리끼는 일이 있으면 순직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참회하십시오. 그리고 염불하십시오. 약은 제가 지어드리겠습니다.』 저는 곧바로 꿈에서 했던 것처럼 백보 앞으로 걸어가 논뚝에 있는 풀을 캐어 약에 함께 달여 잡수시게 하였습니다. 그 풀이라 하는 것은 그때는 아직 2월이어서 푸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제가 꿈에 발견하고 실지 캔 것은 몇년을 묵었는지 매우 큰 고돌바위 뿌리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안가서 장모님은 회복되었습니다. 그후 30년이 지나도록 모 아프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지나온 동안에 부처님께 기도하여 얻은 은혜는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으로 그만 줄입니다.

     10 맑은 정신으로 산다

 저는 부처님을 항상 눈 앞에 대하듯이 생각하고 물으면 곧 응답해 주시는 자비하신 부처님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생활이나 사업상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부처님께 여쭈어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므로 생각조차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그때그때 생각난 대로 행하면 곧잘 풀려나갔습니다. 태풍에 다른 집 지붕이 다 날라갈 때도 나는 홀연히 지붕에 올라가 버티어 기와 한장 손상을 입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부처님께서는 나의 맑은 마음 속에서 저를 항상 두호하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기 때문에 저의 잘못을 항상 참회할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떠한 사람과 처음 만나서 이야기 할 때는 언제나 먼저 부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도 하고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여 고민하지 아니하고 모든 일은 부처님께 내어맡기고 나의 진실과 최선을 다 할것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저의 나이 지금 60, 3남 3녀의 아이들도 순조롭게 크고 공부하고 있으며 오늘도 글씨도 쓰고 그림 그리는 일에 몰두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자비하신 부처님의 은덕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부처님 은덕을 어떻게 보답할까 이 한 생각 잊지 않고 살고자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서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것으로써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 쓰고자 합니다. 붓글씨를 써줄 때는 부처님 법문을 써 주고 해석을 해줍니다. 저는 앞으로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려 거기에 법문을 실어 본격적인 성화를 완성하겠다는 것이 꿈입니다. 그동안 하찮은 저의 신앙기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