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청산靑山에 숨은 고경古鏡

2008-01-30     관리자

  이 글은 통도사 극락암 호국 선원 월례법회의 설법 중에서 요점 일부를 초한 것이다. 설법전문을 싣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文責記者)

참선이 제일이다.

  법문을 듣기 전에 定에 들어서 가만히 있는 거기에 법문이 다 되고 종사가 좌에 앉아서 아무소리도 안하고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탁 치는 거기에 법문이 다 되었다.


풀빛은 푸르며

버들빛은 누렇고

도화는 요란히 피었는데

이화는 향기가 남이로다.

草色靑靑柳色黃 桃花歷亂李花香


  여러분이 불교를 하면 참선하는 것. 경 읽는 것. 염불. 주문하는 것...이 네가지 중에 참선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래서 달마스님도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 닦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섭하고 있다 하였다. 그러니 마음 하나 닦는 것이 제일인데 개구리도 가다가 멀리 뛸려고 하면 몸을 주춤 해가지고 펄쩍 뛴다. 또 예술 철학 종교가 전부 정신통일하는 거기에 묘(妙)가 있는 것이다.

  만물에서 배우자.

  내가 늘 얘기하지만 금강경에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빛을 가지고 나를 보려고 하거나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는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있는 마음 부처를 바로 가르쳐 준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자꾸 밖으로만 구하고 헤맨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 데에는 인생이 만물과 더불어 화해를 해야하는데 만물과 더불어 화해를 한다는 것은 만물을 남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물도 쓰고 나무도 쓰고 불도 쓰고 금 목 수 화 토를 모두 사용하고 있지만 쓸데없이 물을 남용하고 나무도 쓸데 없이 가지를 꺾고 꽃을 따고 한다. 나무나 불, 물, 지수화풍(地水火風)에 무엇이든지 내가 수용하는데 남용하지 말아야만 물과 더불어 화해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듣고 글만 배우고 책만 볼 것이 아니라 산에 오를때에는 산이 이렇게 높으니 내 도덕과 지식도 이 산과 같이 높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배우고 또 흐르는 물도 그냥 볼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냇물이 저렇게 맑으니 내 마음도 저물과 같이 맑고 깨끗해야 되겠다. 또 크고 넓은 바다를 볼때 저 바다가 넓고 깊고 끝이 없으니 내 마음도 저 바다와 같이 넓고 깊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 산에 올라가서 바위를 볼때, 이와 같이 견고해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산에서 배우고 물에서 배우고 바다에서 배우고 이렇게 만물에서 다 배우게 되는 것이다. 꽃을 볼 때에도 장미나 작약꽃이 좋은 향기를 토하니 나도 저꽃과 같이 향기가 있어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써야지 사람이 정조가 없고 못된 것을 하면 자기 인생을 향기를 잃어버리고 만다.

  화두 잡두리 하는 법

  우리가 극락암에 걸어오다가 숲속에서 꿩이 퍼드득하면 그만 깜짝 놀란다. 항상 죽은 마음 흩어진 마음 냄새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놀라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정신을 통일하면 꿩이 퍼드득 할 때 꿩은 보지 못해도 퍼드득 하는 소리만 들어도 저것이 꿩이구나 하여 놀래지 않게 된다. 정신수양이 그렇게 필요한 것인 줄 알아야 된다.
  참선을 하려고 앉아 있으면 한 생각이 일어나고 백천만가지 망상이 다 일어난다. 과거일이 자꾸 생각나고 십년전 이십년전 일이 자꾸 생각나서 아이고, 아무 때는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그 아들이 살아 있으면 손자를 몇이나 보았을텐데...... 이런 생각이 나서 그 아들 생각나는거로 인해서 공연히 눈물이 나니 남 보기 흉해서 저 산에 올라가 한참울고 들어오기도 하니라. 그러다가 또 망상이 나서 내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는가 하고 돌아 앉아서 돈을 세기도 한다. 그렇게 망상을 가지고서야 무슨 정신 통일이 되겠는가
  이 한시간 동안에 내가 정신을 통일해야 되겠다고 하면 다른 망상이 안들어와야 될 것인데 그저 온갖 별별 망상을 자꾸 끌어들인다. 몸이 났다가 죽는 것만이 생사가 아니라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없어지는 그것이 생사심이다. 생사심이 자꾸 일어날 때 공안(公案) 화두(話頭)를 들어가지고 그것이 물 흘러가듯이 가야되는데 자꾸 간단(間斷)이 생기니 우리가 공부할 때도 물, 흘러가듯이 간단 없이 끌고나가야 하는 것이다. 살림살이나 사업하는 사람도 자나깨나 일이 머리에서 안떨어져야 지혜가 생겨서 성공을 하게 된다. 공부하는 사람도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일여(一如)해서 간단이 없어야 한다. 화두를 밥먹을 때도 놓지 말고 대소변 볼 때도 놓지 말고 항상 상속되어야 되며 내가 공부하는 것이 자기 생명과 같이 알아야 성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두가 순일하면 한생각 일어나고 한생각 없어지는 것이 곧 없어진다. 한생각 일어나고 한 생각 없어지는 것이 곧 고요한 적(寂)에 들어간다. 우리가 공부를 해서 지극히 고요한 데 들어가야 되지 만약 화두가 어디로 가버리면 참선도 안되고 아무 생각없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무기(無記)가 되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에 화두를 잃지 말아야 하니 꿈에도 화두를 들고 간단이 없어야 된다.
  여러분이 전문적 참선인은 못 되더라도 하루 이십사시간 중 아홉시간 일하고 다섯시간 놀고 여섯시간 잠자도 네시간이 남아 있으니 저녁에 한 두시간, 새벽에 한 두 시간 참선공부를 해야 된다.

  (무자)화두의 내력

 조주스님의

 개에 불성이 없다는 것은

 만첩 청산에

 옛 거울을 감춰 놓은 것과 같다.

 趙州拘子無佛性 萬疊靑山藏古鏡

  화두는 1700이 있는데 그 중에 조주(趙州)무자(無字)화두가 무엇인고 하니, 조주스님은 이름이 종심(從 )이다. 달정(達淨)이라는 스님과 같이 집을 나와서 중국 예주(曳州)땅 산중에 들어가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공부하다 도중에서 달정스님은 도를 깨치지 못하고 불행히 죽었고 조주스님은 그 뒤에 도를 얻었는데 (아이고, 이 사람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내가 법을 가르쳐 깨치도록 할 것인데 이거 안됐다)하고 그래서 조주스님은 120살까지 살면서 달정이 다시 사람이 되어 오기를 기다렸다.
  한번 그렇게 인연을 맺어놓으면 인과라는 것이 있어서 같이 공부한 인연으로 달정이 다시 환생하여 문언(文彦)이라는 스님이 되어서 조주스님을 찾아왔다. 마침 그 때 개가 지나가길래 조주스님에게 (저 개에게도 불성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이 그만 [없다(無)]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고함소리에 문언선사가 활연히 도를 깨졌다.
  그래서 요즈음도 선방에서는 일체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님은 무엇으로 인해서 개는 불성이 없다고 했는가 하는 무자 화두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고 자꾸 생각하면 앞뒤가 뚝 끊어지고 전후가 끊어져서 구경에 가서 어떤 경계를 보든지 어떤 소리를 듣든지 해서 활연히 마음자리를 깨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자리는 지극히 고요한데 들어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그러니 여러분도 내가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겠는가? 또 무슨 애로와 난관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이것을 돌파하겠는가 하고 골돌히 생각하면 지혜가 터져나오는데 나쁜 생각을 버리고 좋은 생각을 가져야 자기에게 있는 본래 마음의 지혜광명이 터져 나와서 애로와 난관을 타개할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도리사와 부처님 사리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지 1600여년이 되는데 아도(阿度) 화상이 처음 불교를 펴려고 하니 사도라고 죽이려 했다. 그러니 남의 집 머슴을 살며 피해다니다가 결국은 불교를 펴게 되었고 도리사를 창건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절을 세웠다. 이 도리사에 요새 부처님 사리 일과(一顆)가 나타났는데 콩낱보다 크고 색이 투명하며 광채가 난다. 원래 석종(石鍾)형의 탑을 세워 그 속에 이중으로 깊이 사리함을 모셨었는데 도적이 들어 석총을 굴려보니 아무 것도 안보여서 석종은 굴려버리고 탑바닥에 사리가 있는 줄 알고 두들겨 깨어보니 아무 것도 없어서 도적들은 가버렸다. 지금의 주지스님이 사리탑을 다시 잘 모시려고 석종을 자세히 살펴보니 석종 안 깊은 속에서 사리장치를 발견하였다. 사천왕상을 그려놓은 사리함에 부처님 사리를 발견하였는데 그 사리가 방광을 하여 아랫마을 사람들이 절에 불이났다고 몰려왔다고 한다.
  시절인연이 되어 사리가 나타난 것인데 근일 부산, 서울 등지에서 매일 수천명이 몰려와 친견한다고 하니 여러분도 부처님 사리 한번 친견하면 업장이 녹아버리게 된다. 사리는 계(戒) 정(定) 혜(慧) 三학이 훈습되어 이룬 것이다.
  도리사 사리에 대하여 게송 하나를 지었다.

  우주법계사 원래 사리요

  일월만상이 다 이 광명이로다.

  이 속에 이르러서

  구리쇠 눈동자와

   쇠눈으로 보아라.

 三三 五五로다. (미소)
  宇宙法界原來舍利 日月萬像眞實光明

 到這裏 銅睛鐵眼看 三三五五

  문을 열어 물소리를 듣고

  멀리 바라보니

 사월 남쪽 바람에

 보리가 익었도다.                                         

  開門廳水遼望看 四月南風大麥黃 (할 一할 하좌)